언택트 바람과 기술적 진보에 힘입어 메타버스(metaverse)가 우리의 삶 속으로 성큼 들어왔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혁명’이라면 메타버스는 ‘빅뱅’이라는 말도 있다. 조금 성급해 보이는 얘기일 수도 있겠으나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손바닥만 한 휴대용 기기가 블랙홀처럼 우리의 생활과 세상의 콘텐츠를 모두 삼켜버리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세계를 만들어가는 ‘메타버스’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 과연 메타버스가 포스트 인터넷 시대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커버스토리 1면에서는 메타버스의 개념과 역사, 적용 사례 등을 알아보고 그 가능성을 짚어본다. 2면은 교육·출판 분야로 한정해 메타버스 생태계가 어떻게 재편될지에 대한 전문가의 진단을 들었다. 3면은 학내 전문가 3인의 목소리를 통해 교육적 활용 가능성을 따져봤다.
메타버스가 뭐야? 타는 거야?
메타버스는 가공·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세계를 의미한다. 1992년 미국 소설가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SF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서 아바타가 활동하는 인터넷 기반의 가상세계를 표현하는 말로 처음 등장했다. 자주 쓰이는 ‘아바타’ 개념도 이 작품에서 비롯됐다. 이후 1999년 싸이월드 서비스가 개시된 이래 도토리를 가상자산으로 삼아 개인 아바타 미니미를 꾸미던 시절이 있었다. 메타버스 세계의 1세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2003년 등장한 미국의 가상현실 서비스 ‘세컨드 라이프’, 2016년 출시된 증강현실 모바일 게임 ‘포켓몬고’,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한 2018년 개봉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등도 메타버스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사실 메타버스 자체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전문가들 가운데는 메타버스는 새로운 기술적 성과로 생긴 개념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을 포괄하는 용어로, 어디까지가 메타버스인지 범위 규정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미 있던 기술이 융합되고, 신기술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면서 차세대 산업을 이끌어 나갈 새로운 키워드로 급부상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이 디지털화를 촉발했고, 비대면 시대를 가속화하는 데 불을 댕겼다. 언택트 환경으로 급속하게 바뀌면서 디지털 공간 활용이 커지고 이를 통해 메타버스가 주목받게 된 것이다. 
MZ세대가 이끄는 새로운 세계
메타버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디지털에 익숙한 MZ세대가 메타버스 세계를 주도해나가고 있어서다. 이들은 2030~2040년대에 소비의 주력이 될 것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10대들은 메타버스를 게임·미디어 플랫폼으로 인식하며, 온라인 놀이터이자 소통 창구로 적극 활용한다. 이들이 메타버스에 열광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 다중적 자아)’다. 일명 ‘부캐(부캐란 게임에서 사용하던 용어로 ‘본캐릭터’ 외에 새롭게 만든 ‘부캐릭터’의 줄임말) 놀이’라고 하는데 MZ세대의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메타버스 생태계 확장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메타버스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로블록스(Roblox)’다. 로블록스는 블록으로 구성된 3D 가상세계에서 아바타로 구현된 개인들이 직접 게임을 프로그래밍하고, 다른 사용자가 만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메타버스의 사례다. 미국에서 16세 미만의 청소년 가운데 절반 이상이 가입했을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1억5천만 명에 달한다. 국내 기업인 네이버의 자회사 네이버제트에서 만든 토종 메타버스 플랫폼인 ‘제페토’ 역시 전 세계 가입자가 2억 명을 넘어섰다. 특히 누적가입자의 80%가 10대다.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메타버스 세계의 MZ세대는 다른 이들과 어울리고 놀거나, 작업하거나 쇼핑하면서 현실세계와 똑같은 삶을 살아간다. 로블록스·제페토 이용자 누구나 아이템과 가상세계 경험을 생산해 판매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비즈니스 인사이트도 눈여겨 봐야 한다. 메타버스 이용자들이 가상세계 안에서 쌓아놓은 흔적들(언제, 어떻게, 무엇을 즐기는지)은 데이터로서의 가치가 높다. 이러한 데이터들은 효율적인 마케팅과 광고 솔루션으로 쓰이는데 활용폭이 매우 넓다. 최신 기술의 시험대로서도 주목된다. 초고사양 그래픽 카드, 가상현실, 증강현실 기술은 물론 반도체, 클라우드, 블록체인, 가상화폐 등 모든 분야의 최신 기술이 메타버스에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자체가 모든 혁신 기술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신대륙을 선점하라
향후 메타버스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할 것이라는 관측은 시장 관련 지표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가 2025년 전 세계 메타버스 시장규모를 2천8백억 달러(315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 것처럼, ‘디지털 신대륙’을 선점하기 위해 기업들은 메타버스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사내회의뿐만 아니라 신입사원 연수, 신제품 홍보 및 가상체험 서비스, 팬미팅, 사이버 지점 개설 및 운영, 취업설명회에 이르기까지 메타버스가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명품 브랜드 구찌는 지난 2월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제페토 내에 이탈리아 본사가 위치한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가상 매장 ‘구찌 빌라’를 짓고 신상품을 선보였다. 며칠 만에 완판될 정도로 이용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국내에서도 현대자동차가 제페토와 협업을 통해 각각 아바타를 이용한 간접 시승 기회를 제공하는 등 메타버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선을 앞둔 정치계에서도 메타버스를 중요한 소통 창구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더불어민주당 경선기획단은 지난달 26일 메타버스 회의 시연회를 열고 본경선 일정을 발표했다. 후보대리인설명회·기자간담회 등을 진행했고 대선 주자들도 잇따라 가상공간을 활용한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다.
대학에도 메타버스 세계가 열리고 있다. 올해 초 SKT가 순천향대와 협력해 신입생 입학식을 개최했고, 건국대와 숭실대도 메타버스를 활용해 대학축제를 펼쳤다. 서울대 의과대학에서는 이번 학기에 해부학 관련 실습에 메타버스를 활용했다.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은 지난달 16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메타버스 충격에 대비한 교육 체계 수립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메타버스 활용이 초기 단계인 만큼 성급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메타버스를 통해 새롭게 펼쳐지는 교육의 신대륙이 단순히 정보통신기술(ICT)의 향연으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은 “최근 메타버스 관련 종목들의 주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특히 증권사가 주가 띄우기에 나서고 있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며 “게임 외에 비즈니스 모델이 아직 검증된 게 없다. 메타버스 1.0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가상현실 게임 ‘세컨드 라이프’가 왜 소멸했는지를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현실을 가상으로 옮기는 것 이상의 정교한 장치와 기획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가 불 지핀 메타버스의 확장성과 성장성은 여전히 주목할 만하다. 이임복 금융연수원 겸임교수의 저서 『메타버스, 이미 시작된 미래』에는 사이버 공간이란 말을 대중에게 알린 SF작가 윌리엄 깁슨이 했던 인상적인 말이 실려 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미국의 과학사학자 토마스 쿤이 언급한 대로 우리는 지금 ‘패러다임 전환’의 변환기적 시대를 살고 있다. 메타버스가 거대한 대변혁을 이어갈지, 소문난 잔치로만 사그라질지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