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란 우리에게 중요한 날인가? 어떤 의미가 있기에 정부는 명절을 연휴로 지정했는가? 우리는 왜 명절에 고향에 가기 위해 ‘교통 대란’도 감수하는가? 아마도 그것은 전통 명절을 통해 조상을 기리는 것뿐만 아니라, 연휴를 맞아 그간 보지 못했던 부모님과 일가 친지들을 만나 안부를 묻고 정을 나누기 위함이 아닐까? 그런데 법원행정처의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 수 년 간 명절 직후 평균 이혼 신청률은 왜 평소의 2배 이상으로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는가? 도대체 명절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과거의 명절은 공동체 의식의 고취로 사회를 ‘계승’하는 기능을 했다면,
미래의 명절은 새 시도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림자 노동으로 만든 ‘당신들의 명절’
‘명절 이혼’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법조계와 여성계에서는 공통적인 분석을 내 놓았다. 그 이유는 평소 배우자에게 쌓인 불만이 명절 갈등으로 폭발해 이혼을 고려한다는 것이다. 명절 갈등 중 한 가지는 바로 한쪽에게만 부과된 노동이다. 과거에 비해 많이 약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기혼 여성들은 명절에 시댁에서 온갖 음식 장만을 하는 중노동에 시달리지만, 기혼 남성들은 친지나 부모님과 차례를 지내는 비교적 단순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명절 노동은 그림자 노동이다. 며칠 전부터 마련한 명절 음식과 손님맞이 준비는 가사노동 가치에 포함 되지 않기 때문이다. 2018년에 발표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가사노동시간 측정 및 행동 평가 기준의 젠더불평등성 개선방안」에 의하면, 현재 통계청에서 사용하고 있는 ‘생활시간조사’는 하루를 단위로 작성되는 방식으로 월별·분기별·연간 가사노동은 측정되지 않는다. 때문에 1년이나 6개월 정도 장기적 주기로 반복되는 명절이나 김장과 이사 준비, 계절별 옷 정리ㆍ정돈과 같은 비정기적인 가사노동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명절 노동은 경제적 가치를 매기지 못하는 그림자 노동에 머물러 있다.
가사노동 분담에는 남성들도 공감하고 있다. 2018년 통계청의 조사 결과를 보면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9.1%였다. 10년 전(32.4%)과 비교하면 약 2배 정도 증가했다. 그러나 ‘실제로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고 대답한 남편은 20.2%, 부인은 19.5%였다. 우리 대학을 졸업한 40대 후반의 A동문은 “결혼 초에 비해 시어머니 눈치를 보지 않고 명절 노동을 분담하는 남편 덕에 몸이 조금 편해졌지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닌 ‘돕는’다는 인식은 그대로여서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명절을 준비하는 것은 나인데 명절을 즐기는 것은 여전히 남편”이라고 말한다.
추석이라는 축제의 본래적 의미
명절은 축제다. 축제는 고대의 제의(祭儀)에서 출발한다. 인류가 시작되면서 인간은 봄과 가을 등 계절의 변화가 확연할 때 하늘과 땅에 지내는 제사를 중시 여겼다. 봄에는 초월적 절대자게 정성스러운 제사를 드림으로써 생명과 활력이 자기들의 삶의 터전에 가득하기를 기원했다. 가을에는 수확한 곡물 그리고 채집과 사냥을 통해 먹을 거리를 마련해 신에게 바치는 행위로 공동체의 믿음과 확신을 다졌다. 결과적으로 제의는 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잔치로 여겨졌다.
농경사회에 살았던 우리 민족에게, 봄부터 시작된 고된 농사일이 결실을 맺는 시기인 가을은 중요한 축제의 시기였다. 공동체의 협력으로 이루어 낸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가을의 추석은 조상들께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감사하며,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친족과 이웃 간 정을 나누는 축제였다. 그동안 바쁜 농사일 때문에 만나지 못했던 일가친척을 오랜만에 만나 즐기는 풍성하고 따뜻한 활력 충전의 날이 바로 추석이었다.
‘우리들의 축제’를 위하여
명절이 끝나면 기혼 여성들은 몸져눕기도 한다. 평소보다 많은 양의 가사노동과 장시간 계속된 귀성ㆍ귀경길로 인한 피로감 때문이다. 해마다 ‘명절 증후군’에 시달려왔던 60대 재학생 B학우는 2년 전 90대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남편을 설득해 명절을 간소하게 보낸다. 그는 “이제 여성들이 중노동을 하는 명절 문화를 끝내야 할 시기가 왔다”면서 “내가 살아왔던 사회의 문화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지만 우리 대에서 그 문화를 끊어내지 않으면, 내 딸뿐만 아니라 내 딸과 결혼한 남의 아들도 건강하게 살지 못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런 노력들 때문인지 명절을 보내는 새로운 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자녀들이 사는 도시로 부모들이 역귀성 한 지는 오래 전이고, 차례를 아예 지내지 않거나, 간단하게 과일과 떡만으로 차례를 지내는 가정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또 각자 한 가지 음식을 맡아서 해오는 방식으로 합의한 가족도 많다. 추석 명절을 제2의 휴가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가족과 함께 연휴 기간에 해외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국내를 여행하는 가족들은 숙박지인 콘도에 붙박이로 차려진 제사상을 빌려다가 제사를 지내고 연휴를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50대 남성인 C학우는 “다들 바쁘게 사는 와중에 명절이라는 이유로 일가가 모이게 되는데, 만약 이런 명절 문화조차 없어진다면 이제 한데 모일 수 있는 ‘구실’이 점차 사라질 것 같다”며 “명절에 대한 준비 부담은 줄었지만 내 손자 대에는 우리가 느꼈던 추석의 정서와 추억이 무엇인지 조차 모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밝혔다.
여전히 한 쪽에서는 명절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들도 존재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과 달리 소통을 통해 가족 구성원들은 명절의 기능과 역할을 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명절의 본래적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새로운 ‘시도’ 또한 ‘명절에는 가족 공동체가 모두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라는 의식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명절은 공동체 의식의 고취로 사회를 ‘계승’하는 기능을 했다면, 미래의 명절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럴 때 명절은 온전히 ‘우리들의 축제’가 된다.
과거의 명절은 공동체 의식의 고취로 사회를 ‘계승’하는 기능을 했다면,
미래의 명절은 새 시도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림자 노동으로 만든 ‘당신들의 명절’
‘명절 이혼’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법조계와 여성계에서는 공통적인 분석을 내 놓았다. 그 이유는 평소 배우자에게 쌓인 불만이 명절 갈등으로 폭발해 이혼을 고려한다는 것이다. 명절 갈등 중 한 가지는 바로 한쪽에게만 부과된 노동이다. 과거에 비해 많이 약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기혼 여성들은 명절에 시댁에서 온갖 음식 장만을 하는 중노동에 시달리지만, 기혼 남성들은 친지나 부모님과 차례를 지내는 비교적 단순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명절 노동은 그림자 노동이다. 며칠 전부터 마련한 명절 음식과 손님맞이 준비는 가사노동 가치에 포함 되지 않기 때문이다. 2018년에 발표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가사노동시간 측정 및 행동 평가 기준의 젠더불평등성 개선방안」에 의하면, 현재 통계청에서 사용하고 있는 ‘생활시간조사’는 하루를 단위로 작성되는 방식으로 월별·분기별·연간 가사노동은 측정되지 않는다. 때문에 1년이나 6개월 정도 장기적 주기로 반복되는 명절이나 김장과 이사 준비, 계절별 옷 정리ㆍ정돈과 같은 비정기적인 가사노동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명절 노동은 경제적 가치를 매기지 못하는 그림자 노동에 머물러 있다.
가사노동 분담에는 남성들도 공감하고 있다. 2018년 통계청의 조사 결과를 보면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9.1%였다. 10년 전(32.4%)과 비교하면 약 2배 정도 증가했다. 그러나 ‘실제로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고 대답한 남편은 20.2%, 부인은 19.5%였다. 우리 대학을 졸업한 40대 후반의 A동문은 “결혼 초에 비해 시어머니 눈치를 보지 않고 명절 노동을 분담하는 남편 덕에 몸이 조금 편해졌지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닌 ‘돕는’다는 인식은 그대로여서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명절을 준비하는 것은 나인데 명절을 즐기는 것은 여전히 남편”이라고 말한다.
추석이라는 축제의 본래적 의미
명절은 축제다. 축제는 고대의 제의(祭儀)에서 출발한다. 인류가 시작되면서 인간은 봄과 가을 등 계절의 변화가 확연할 때 하늘과 땅에 지내는 제사를 중시 여겼다. 봄에는 초월적 절대자게 정성스러운 제사를 드림으로써 생명과 활력이 자기들의 삶의 터전에 가득하기를 기원했다. 가을에는 수확한 곡물 그리고 채집과 사냥을 통해 먹을 거리를 마련해 신에게 바치는 행위로 공동체의 믿음과 확신을 다졌다. 결과적으로 제의는 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잔치로 여겨졌다.
농경사회에 살았던 우리 민족에게, 봄부터 시작된 고된 농사일이 결실을 맺는 시기인 가을은 중요한 축제의 시기였다. 공동체의 협력으로 이루어 낸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가을의 추석은 조상들께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감사하며,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친족과 이웃 간 정을 나누는 축제였다. 그동안 바쁜 농사일 때문에 만나지 못했던 일가친척을 오랜만에 만나 즐기는 풍성하고 따뜻한 활력 충전의 날이 바로 추석이었다.
‘우리들의 축제’를 위하여
명절이 끝나면 기혼 여성들은 몸져눕기도 한다. 평소보다 많은 양의 가사노동과 장시간 계속된 귀성ㆍ귀경길로 인한 피로감 때문이다. 해마다 ‘명절 증후군’에 시달려왔던 60대 재학생 B학우는 2년 전 90대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남편을 설득해 명절을 간소하게 보낸다. 그는 “이제 여성들이 중노동을 하는 명절 문화를 끝내야 할 시기가 왔다”면서 “내가 살아왔던 사회의 문화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지만 우리 대에서 그 문화를 끊어내지 않으면, 내 딸뿐만 아니라 내 딸과 결혼한 남의 아들도 건강하게 살지 못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런 노력들 때문인지 명절을 보내는 새로운 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자녀들이 사는 도시로 부모들이 역귀성 한 지는 오래 전이고, 차례를 아예 지내지 않거나, 간단하게 과일과 떡만으로 차례를 지내는 가정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또 각자 한 가지 음식을 맡아서 해오는 방식으로 합의한 가족도 많다. 추석 명절을 제2의 휴가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가족과 함께 연휴 기간에 해외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국내를 여행하는 가족들은 숙박지인 콘도에 붙박이로 차려진 제사상을 빌려다가 제사를 지내고 연휴를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50대 남성인 C학우는 “다들 바쁘게 사는 와중에 명절이라는 이유로 일가가 모이게 되는데, 만약 이런 명절 문화조차 없어진다면 이제 한데 모일 수 있는 ‘구실’이 점차 사라질 것 같다”며 “명절에 대한 준비 부담은 줄었지만 내 손자 대에는 우리가 느꼈던 추석의 정서와 추억이 무엇인지 조차 모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밝혔다.
여전히 한 쪽에서는 명절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들도 존재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과 달리 소통을 통해 가족 구성원들은 명절의 기능과 역할을 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명절의 본래적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새로운 ‘시도’ 또한 ‘명절에는 가족 공동체가 모두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라는 의식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명절은 공동체 의식의 고취로 사회를 ‘계승’하는 기능을 했다면, 미래의 명절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럴 때 명절은 온전히 ‘우리들의 축제’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