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인 스님은 환경오염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들꽃, 산나물, 약초의 씨앗을
보관하고 주위 농가에
나누어 주는 일도 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식물이 주는
깨우침의 씨앗을 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막장 같은 곳이 대웅전으로 바뀌었네요. 천지개벽이 이런 건가요?”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망경대산(望景臺山, 해발 1,087m) 기슭에 망경산사가 생기기 전, 망경대산 토굴에서 수행하던 스님이 10여 년 만에 방문해서 한 말이라고 한다.
기자는 천지개벽 이전의 이곳이 어땠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멀미를 참아가며 굽이굽이 해발 800미터를 올라갔을 때 보게 된 망경산사의 광경! 이곳은 사찰이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정원이었다. 이름 모르는 들꽃이 형형색색 피어 있는 정원을 거닐다가 다시 놀랐다. 그것들은 바로 약초와 산나물 꽃이었던 것! 이렇게 높은 산 위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꽃밭을 만들게 됐을까? 방송대 동문이자 이곳을 일군 등인 스님을 찾았다.
땅을 살리라고요?
등인, 청하, 정우 세 분 스님들의 농사는 번번이 실패했다. 씨를 뿌리면 곧 새싹이 돋았다. 정성과 희망으로 물을 줬지만, 어느 정도 크면 어김없이 누리끼리하게 변한 후 죽어버리기 일쑤였다. 등인 스님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때. 마을 주민들에게 귀동냥해 열심히 가꿨지만 작물들은 또 죽어 나갔다. 신도 중 한 명이 방송대를 추천해 등인 스님이 대표로 2003년 농학과에 편입했다.
"농사를 업으로 삼았던 주민들이 알려준 대로 했는데고 성과가 없었죠. 그래서 저는 그들이 잘못 알려줬다고 생각했어요. 방송대에서 공부를 시작한 후부터는 그 과목이 설령 축산과 관련된 것일지라도 초집중해서 수업을 들었죠. 두 학기가 지나자 그동안 동네 어른들이 지나가면서 무심히 던졌던 말의 의미를 알게 됐어요. 그분들이 전문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강조했던 그 말을 제가 못 알아들었다는 것을요.”
가장 큰 성과는 ‘땅을 살려야 돼’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됐다는 것. ‘관세음보살’ 만큼이나 자주 들은 말이지만, 그 깊은 의미를 모른 채 흘려들었다. 고랭지 배추를 상품으로 키워 내느라 오랫동안 농약에 시달려 땅은 죽어가고 있었다. 독기가 빠지지 않은 땅인데 무엇인들 잘 자라날 수 있었을까. 등인 스님은 땅을 살리기 위해 3년간 수피(나무껍질)로 퇴비를 만들어 뿌려서 독소를 빼내고 땅에 휴식의 시간을 주었다.
“스님, 저희 땅을 좀 사주세요”
강원도 영월군은 석탄 광산으로 유명했다. 1980년대까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이겨내며 국가경제 발전의 동력 역할을 했던 석탄산업. 수백 미터 지하 막장에서 석탄을 캐던 광부들과 석탄산업 종사자들이 없었더라면 지금 경제 발전의 성과를 누리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망경대산에 위치한 옥동탄광은 한때 종업원 수가 6천여 명에 이를 정도로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그러나 환경의식 변화와 가스 사용 보급으로 해마다 채굴량을 줄이다가 1989년 4월 폐광했다.
“청하, 정우 스님과 함께 포교보다는 수행을 위해 1995년에 망경대산에 들어왔어요. 하지만 도착했을 때 저희도 놀랐습니다. 이렇게 깊은 산골에 수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작은 도시를 이루고 살다 나갔다는 것도 그랬지만, 사람이 떠난 버려진 집들과 탄광에서 나온 석탄 찌꺼기들이 온 마을을 마치 폐허처럼 뒤덮은 상태였기 때문이죠. 아직 남아있는 주민들은 고랭지 배추 농사를 지으며 근근이 살고 있었고요.”
산비탈을 개간해 만든 밭에는 날마다 푸른 잎을 풍성하게 뽐내는 배추가 무럭무럭 커나갔다. 이와는 반대로 농민들의 삶은 자꾸 시들어갔다. 이제 막 법당을 짓고 사찰 형태를 만들고 있던 스님들에게 농민들이 찾아와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 땅을 좀 사달라고. 땅을 팔아 만든 목돈을 가지고 이곳을 떠나 새로운 터전으로 가고 싶다며 찾아왔다. 스님은 이러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다.
“절에는 그 땅들을 거둘 수 있는 재원이 없었어요. 서울로 올라가 탁발을 해서 농민들의 땅을 조금씩 매입하게 됐죠. 사들인 농지를 어떻게 활용할까 하고 스님들과 상의를 하다 자급자족을 위한 농장으로 가꾸기로 했죠. 산촌의 특색을 살려 산채나물, 약초, 버섯 등을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씨앗 뿌리는 것, 망경산사의 역할이죠”
죽은 땅을 살리기부터 각 작물의 특성을 파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등인 스님과 청하, 정우 스님이 정성과 노력으로 키운 가시오가피, 눈개승마, 산마늘 등은 유기농인 데다가 맛도 좋아 근방에서는 유명하다. 소문을 듣고 채소와 약초를 사러 사람들이 종종 온다. 하지만 망경산사에서는 절대 이것들을 팔지 않는다. 농민들과 경쟁이 될 수 있어서다. 등인 스님이 바라는 것은 공생이지 그들과 각축을 벌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가 해야 할 것은 씨앗을 뿌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절은 다양한 농민활동의 ‘종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산채나물 작목반, 농산물 홍보반, 유기농법 등을 망경대산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함께하죠. 이 부근에는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들이 많아요. 또 불자님들과 그들의 지인들 가운데는 믿고 먹을 만한 유기농산물을 구입하기를 바라는 분들이 꽤 있어요. 이들이 서로 소개하고 홍보하도록 활동을 돕고 있습니다.”
등인 스님은 환경오염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한 들꽃, 산나물, 약초의 씨앗을 보관하고 주위 농가에 나누어 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또 사찰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다보니 이들을 위해 탄광소장 사택을 리모델링해서 산채나물 전시관도 만들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망경산사의 농장이 방송대 농학과의 현장 실습 장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곳을 직접 가꾼 등인 스님은 그간의 경험에서 얻은 지식과 방송대 공부를 통해 체계화한 이론을 농학과 후배들에게 가르치는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20여 년 전 교수와 학생으로 만난 류수노 총장님과의 인연에서 비롯됐어요. 처음에는 사양하다가 나서게 된 이유는 사람들에게도 식물이 주는 깨우침의 씨앗을 뿌리고 싶었기 때문이죠. 제가 다녔던 방송대 학우들에게 씨를 뿌리는 것도 더욱 의미 있는 일이죠. 망경대산은 영월로 유배된 단종을 섬기던 선비 추익한이 비운의 임금을 그리며 한양을 바라보던 산이죠. 그러나 저는 이곳에서 자비의 씨앗을 뿌리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