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코로나 이전엔 연구실에 나오면 밖에서 점심을 사먹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식당을 고르는 나름의 기준이 생겼다. 음식이나 셰프가 나를 설득하지 못하는 식당엔 가지 않는 거다.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음식을 소화시켜 내 머리로 가게 할 순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음식에 설득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맛이고 그 맛은 셰프의 정직성에서 나온다. 식재료와 조리과정의 정직성이 요리의 질을 결정짓는다. 정직은 설득을 위해 어디서나 통용되는 유일한 화폐다.


지식공동체를 대상으로 과학적인 지식이나 이론을 설득하긴 너무 어렵다. 오죽하면 막스 프랑크는 “과학은 장례식만큼 진보한다”라고 말했을까 싶다. 이 말은 한 세대가 사라질 때 비로소 새 이론이 옛 이론을 대체할 기회가 생긴다는 뜻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세인에게 수용될 때까지는 그가 죽고 1세기 이상 걸렸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도 발표된 후 반세기 지나서야 인정을 받았다.


설득 대상이 한둘이 아니고 수천 명을 넘어 수천만 명일 때 정교한 설득 전략이 요구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 전략에서 설득을 설계하는 일이 핵심이다. 정부가 정책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선후보의 유권자 설득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정책당국에서 Covid-19 대응팀에
사회과학자와 행동과학자 팀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설득의 설계도를 갖고는 있나?
이게 정말 궁금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는 설득의 세 가지 요소가 나온다. 첫째, 로고스(logos)다. 이성적 과학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COVID-19에 대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데는 정책 내용이 논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기 때문이다. 둘째, 파토스(pathos)다. 감성적, 예술적으로 사람에게 감동을 주어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정책 추진과정에서 감성에 호소하는 일은 보기 드물다. 감성 행정을 하는 게 정책의 흠이 있는 것처럼 보일까 봐 감성적인 전략에서 거리를 두고자 하는 게 관료들의 심산이다. 셋째, 에토스(ethos)다. 윤리나 도덕적으로 상대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일지라도 규범적인 정당성을 상실하면 그 정책은 실패한다. 정책 평판이 정책 성패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건 불문가지다.


‘설득 분야의 선구자’로 부르는 로버트 치알디니(Robert B. Cialdini)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사회적 증거의 법칙’을 내세운 설득의 요령을 알려준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영국 국세청은 세금 체납자에게 보낸 독촉장에서 ‘영국인 90%가 세금을 냈습니다’란 문장을 덧붙였더니 전년도보다 연체 세금 9조3천억 원을 더 걷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믿거나,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할 때, 주로 다른 사람을 살펴보고 따라 하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모방 효과’다.


사회적 증거의 원칙은 공동체 의식이 강한 동양 사회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 베이징 식당에서는 종업원이 손님에게 메뉴를 추천할 때 ‘이 음식이 제일 인기 있는 요리입니다’라고 유도했더니 음식별로 선택률이 20%나 높아졌다고 한다. 공해저감정책에서도 기업의 공해 유발 정도를 평가해서 발표했더니 오염 배출이 줄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선 무려 32%까지 줄었다. 규제정책은 벌금만으로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의미다. 정책 설득에 파토스를 고려해야 한다.


정책 설계자는 정책 접근법에 아주 작은 변화만 줘도 성공에서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넛지(nudge)는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전략이다. 선택의 설계자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설득과 설명이 부족하면 ‘이해 적자(understanding deficit)’는 커진다. 설득 당하는 것 중에서 맨 나중에 설득 당하는 것이 ‘이해(理解)’이기 때문이다.


병원 외래환자에게 다음 진료 예약 시간을 직접 쓰도록 해서 예약 시간에 병원에 나타날 확률을 18% 높였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능동적으로 행동할 때 뇌의 특정 부분이 강력하게 활성화한다. 허리케인 이름을 지을 때도 그 지역 주민 이름 중 가장 흔한 이름에서 고르면, 피해가 발생할 때 이재민에게 기부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디스커버리 계획’의 일환으로 미국항공우주국이 1997년 첫발을 디딘 소저너부터 최근 터치다운에 성공한 퍼서비어런스(Perseverance)까지, 이들 탐사선의 이름은 모두 미국 초중고교생이 지었다. 미국은 미래세대가 우주에 호기심과 관심을 갖도록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름을 공모해왔다. 아주 작은 부분이 감성적 스위치를 켠다.


영국 정부가 행동과학에서 발견된 통찰을 정책 수립과 집행에 활용하기 위해 ‘행동 통찰팀’을 둔 거라든지, 미국 백악관에 ‘사회과학자와 행동과학자 팀’을 구성한 것도 선택 설계자의 발상이 반영된 것이다. 우리나라 정책당국에서 COVID-19 대응팀에 사회과학자와 행동과학자 팀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설득의 설계도를 갖고는 있나? 이게 정말 궁금하다.


덧글: 식당에선 ‘이 식당에서 잘하는 메뉴가 뭔가요?’라고 묻지 말고, ‘단골손님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이 뭔가요?’라고 물으라는 것이다. 낯선 식당에서 음식을 고를 때 덜 실패하는 방법이다. 여기선 로고스적인 접근이다.

 

방송대 교수·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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