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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75학번이니까 꽤 오래 전 일이다. 지금부터 46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송대가 개교하고 몇 년 안 지났을 때, 1973년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 때문에 정규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채 직장생활을 2년 정도 한 후 방송대에 진학할 생각이었다.

당시 한겨울에 눈이 어찌나 많이 왔던지, 옆집에 살던 고등학교 1년 선배와 같이 무릎까지 쌓인 눈길을 헤치고 방송대 입학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시내로 나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교통 상황도 좋지 않은 터라 십리가 넘는 거리를 갔던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렇게 방송대에 입학해 춘천 강원대에서 여름과 겨울 출석수업을 받으며 3학기(2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특히 겨울이 오면 춘천에서 출석수업을 하는 동안 잠깐의 아침 세면 시간이지만 머리카락에 고드름이 열리는 추위를 난생 처음 겪어보기도 했다.

군에서 3년을 복역한 후 전역해 교정공무원 신규발령을 받아 근무를 시작하면서 남은 1학기(2학년 2학기) 과정을 모두 마쳤다. 당시 초급대학을 마쳤다는 자신감으로 부풀어 지금의 모교 터에 있는 서울대 자리에서 초급대학과정 졸업장을 받았다. 그리고 한두 해가 지난 후 5년제 학사과정이 개설돼 그 즉시 편입했다.

이후 3년여 동안 그야말로 주경야독으로 노력했고, 1985년에는 학사과정으로 첫 번째 졸업을 하게 됐다. 특히 이 기간 동안 한 과목도 낙제하지 않고 마무리한 자신감과 보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함께 공부한 학우들과의 끈끈한 우정, 손글씨로 학기말 과제물을 직접 작성해 제출하면서 얻은 문장력과 기획력은 나중에 석·박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참으로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 더욱 값진 것은 방송대 학업 과정에서 얻은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었다. 훗날 내 삶의 값진 버팀목이자 이정표가 됐다.

학문적 성과가 이 같은 말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1986년에는 지금의 서울 경희대 야간대학원에 진학했고, 3년 남짓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한국 청소년 범죄의 발생 요인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직장에서 진급 등으로 전보 발령을 받아 원주·춘천 등에서 근무하면서도 꾸준히 공부할 수 있었다. 1997년에는 강원대 박사과정에 당당하게 합격했다. 다시 4년여 과정을 마치고 2002년 2월 22일 오후 2시(잊을 수 없는 시간의 조합이라서)에는「지역사회 교정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전자감시제도 도입방안」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거머쥐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꼬박 24년간의 배움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가정사정이 넉넉지 못해 정규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고, 방송대 학업 과정을 거쳐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그 출발점에는 방송대가 있었다. 너무도 소중하고,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거듭 가고 싶은 대학이 바로 ‘방송대’다. 젊은 시절 밤이 깊도록 심혈을 기울여 공부하던 아련한 기억은 천만금의 보석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자산으로 남아 있다. 다시 돌이켜 보아도 방송대는 둘도 없는 희망이었고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첫걸음이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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