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 특단의 용기를 내어 방송대 문을 두드렸다. 방대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2021년까지 억겁의 인연이란 탈을 쓰고 아직도 방송대 가족으로 있다. 국문학과, 법학과에 이어 청소년교육과 재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20년 동안 한 학기도 휴학하지 않았다. 휴학을 하면 다시 재등록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사실 그동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 들었다. 그러나 방송대 학보와 위클리에 실린 학우들의 극복기를 읽으면서 ‘나도 할 수 있다’라는 마음으로 각오를 다진 게 부지기수다. 이 과정에서 말 못할 어려움도 많았다. 시험 한 달 전부터 위경련을 일으키거나 각종 신경질환에 걸릴 정도였다.
지난해에는 컴퓨터 조작 실수로 중간고사 6과목 모두가 0점 처리되는 아픔을 겪어야했다. 학교에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담당 교수와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사생활보호 차원에서 담당교수를 연결시킬 수 없다”고 했다. 순간의 실수로 또 한 학기를 반복해야만 하는 학생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면 ‘이렇게 할 수는 없다’라는 생각에 포기할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이번 1학기에도 한 과목이 전산 오류로 또 0점 처리됐다. 중간고사 성적은 29점이다. 학기말 성적이 전산 오류로 0점 처리가 되면서 F가 됐다. 평점이 4.0점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장학금마저 탈 수 없었다. 사정상 스터디에도 참여하기 어려웠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모든 것을 혼자 하려니 안타까울 때가 너무 많다. 전산 오류로 0점 처리가 된 이후 아직도 트라우마로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일반대학과 달리 방송대는 비대면 학습이기에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당연히 고난과 역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이를 공부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나 역시 이 순간이 오기까지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이 과정에서의 고통과 번민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나브로 졸업이라는 성공은 소리 없이 내게 다가왔다. 3번째 편입한 청소년교육과. 강인한 도전 정신에서 새로운 각오로 2학기를 맞이하고자 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공부해서 남주냐’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 배운 만큼 남 주자! 그래서 밝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방송대는 평생교육의 장(場)이라는 말을 늘상 되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