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구 방송대 강사
비교문학을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방송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문학이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몇 권의 책을 번역했다. 방송대에서 강의 의뢰가 오면 어디든 기쁜 마음으로 달려간다.
학우님, 제 게으름 탓에 편지가 많이 늦어 죄송합니다. 종일 일하시면서 틈틈이 휴대전화를 확인하며 제 연락을 기다리셨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매일 강의 나가는 것도 아닌 비정규직 강사가 편지 한 통 후딱 써서 보내드리는 일조차 버거워하니 그저 부끄럽기만 합니다.
학우님, 그래도 조금은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대학원에 가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나요?”라는 물음에 무언가 도움이 되는 답을 선뜻 드리기가 쉽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요.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일터로 되돌아가셔야 했던 학우님과 오래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학우님의 고민이 갖는 절박함만큼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섯 시간짜리 출석수업에서 만난 게 인연의 전부였던 저 같은 일개 시간강사를 복도에서 우연히 발견하고는 과연 그렇게까지 반가워하셨을까요. 정작 저는 학우님의 얼굴조차 전혀 기억해 내지 못해 당황하며 우물쭈물하다가 나중에 편지로 답을 드리겠다고만 간신히 말할 뿐이었는데요.
학우님, 대학원 진학을 고민한다는 이야기에 주변의 많은 분들이 부정적인 뜻을 내비쳤다면서 조금은 서운해 하셨죠. 그것은 사람들이 학우님의 열의와 태도를 가벼이 여겨서가 아닐 거예요. 대학원, 특히 학우님의 전공이 속한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의 척박한 현실과 불투명한 전망을 향한 세간의 우려는 꽤 오래전부터 차고 넘치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진부하고 상투적으로 들릴 만큼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해졌어요. 학위 취득 후 어떠한 안정된 직업도 보장되지 않고, 학문적 성과로써 유의미한 수익을 올리는 것도 불가능하며, 오늘날의 대학은 거대 기업과 자본의 이해관계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기에 이른바 ‘순수 학문’에 결코 호의적일 수 없다는 등의 내용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대학원 진학을 자신 있게 권하기란 어쩌면 무책임한 일일 것입니다.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난관들 앞에서 속절없이 고통 받고 절망하며 인생의 중요한 시절들을 허비하는 모습은 누구도 보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학우님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많은 분들도 학우님의 삶을 더없이 존중하는 뜻에서 대학원 진학을 만류했을 거예요.
학우님,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대학원 진학에 관해 저 역시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드릴 자신이 없답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편지를 마무리하지 않는 까닭은, 학우님께서 제 편지를 읽고 난 다음에도 대학원에 가도 될까라는 물음을 접으실 것 같지 않다는, 딱히 근거는 없지만 섣불리 부정할 수도 없는 확신이 들어서입니다. 학우님께서는 이미 방송대 출신 대학원 진학자들뿐 아니라, 저보다 훨씬 경험 많고 역량도 풍부한 교수들도 만나 상담해 보셨다고 하셨어요. 그럼에도 “대학원에 가고 싶은데 어떡하죠?”라는 질문을 멈출 수 없었다면, 그것은 학우님께서 단순히 대학원에 ‘가세요’ ‘가지 마세요’라는 해답 이상의 무언가를 듣고 싶은, 쉽사리 해소되거나 충족되지 않는 어떤 갈증 또는 열망을 지니고 계셔서일지도 몰라요.
학우님,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강연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습니다. “어느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옳게 판독해 내는 것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침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학문을 단념하십시오”라고요. 자신보다 수천 년 앞서 쓰였고, 자신이 판독하지 못하면 또 다른 수천 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경의와 열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학문에 대한 ‘소명’이 없다는 실로 무시무시한 말이었지요. 베버의 이 말이 마치 제가 학우님께 학문에는 일종의 종교적 헌신이 요구된다며 대학원 진학 포기를 종용하는 것처럼 들릴까 봐 잠깐 걱정도 되네요.
그런데 학우님, 서양어에서 ‘소명(vocation)’이란 ‘사명감’을 뜻하기도 하고 ‘직업’ 나아가 ‘천직’을 뜻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수천 년간 해독되지 못한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판독해 내면 누군가의 소명은 완수되는 것일까요? 소명이란 계약 만료나 임무 완료 같은 것으로 떨쳐낼 수 있는 게 아닐 것입니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어떤 질문이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것,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하더라도 물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물음을 자신에게 주어진 업으로 삼고 이에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것. 소명이란 것은 이렇게 우리가 끝끝내 안고 가야 할 무언가가 아닐까요?
학우님, 그래도 조금은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대학원에 가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나요?”라는 물음에 무언가 도움이 되는 답을 선뜻 드리기가 쉽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요.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일터로 되돌아가셔야 했던 학우님과 오래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학우님의 고민이 갖는 절박함만큼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섯 시간짜리 출석수업에서 만난 게 인연의 전부였던 저 같은 일개 시간강사를 복도에서 우연히 발견하고는 과연 그렇게까지 반가워하셨을까요. 정작 저는 학우님의 얼굴조차 전혀 기억해 내지 못해 당황하며 우물쭈물하다가 나중에 편지로 답을 드리겠다고만 간신히 말할 뿐이었는데요.
학우님, 대학원 진학을 고민한다는 이야기에 주변의 많은 분들이 부정적인 뜻을 내비쳤다면서 조금은 서운해 하셨죠. 그것은 사람들이 학우님의 열의와 태도를 가벼이 여겨서가 아닐 거예요. 대학원, 특히 학우님의 전공이 속한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의 척박한 현실과 불투명한 전망을 향한 세간의 우려는 꽤 오래전부터 차고 넘치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진부하고 상투적으로 들릴 만큼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해졌어요. 학위 취득 후 어떠한 안정된 직업도 보장되지 않고, 학문적 성과로써 유의미한 수익을 올리는 것도 불가능하며, 오늘날의 대학은 거대 기업과 자본의 이해관계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기에 이른바 ‘순수 학문’에 결코 호의적일 수 없다는 등의 내용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대학원 진학을 자신 있게 권하기란 어쩌면 무책임한 일일 것입니다.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난관들 앞에서 속절없이 고통 받고 절망하며 인생의 중요한 시절들을 허비하는 모습은 누구도 보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학우님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많은 분들도 학우님의 삶을 더없이 존중하는 뜻에서 대학원 진학을 만류했을 거예요.
학우님,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대학원 진학에 관해 저 역시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드릴 자신이 없답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편지를 마무리하지 않는 까닭은, 학우님께서 제 편지를 읽고 난 다음에도 대학원에 가도 될까라는 물음을 접으실 것 같지 않다는, 딱히 근거는 없지만 섣불리 부정할 수도 없는 확신이 들어서입니다. 학우님께서는 이미 방송대 출신 대학원 진학자들뿐 아니라, 저보다 훨씬 경험 많고 역량도 풍부한 교수들도 만나 상담해 보셨다고 하셨어요. 그럼에도 “대학원에 가고 싶은데 어떡하죠?”라는 질문을 멈출 수 없었다면, 그것은 학우님께서 단순히 대학원에 ‘가세요’ ‘가지 마세요’라는 해답 이상의 무언가를 듣고 싶은, 쉽사리 해소되거나 충족되지 않는 어떤 갈증 또는 열망을 지니고 계셔서일지도 몰라요.
학우님,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강연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습니다. “어느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옳게 판독해 내는 것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침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학문을 단념하십시오”라고요. 자신보다 수천 년 앞서 쓰였고, 자신이 판독하지 못하면 또 다른 수천 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경의와 열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학문에 대한 ‘소명’이 없다는 실로 무시무시한 말이었지요. 베버의 이 말이 마치 제가 학우님께 학문에는 일종의 종교적 헌신이 요구된다며 대학원 진학 포기를 종용하는 것처럼 들릴까 봐 잠깐 걱정도 되네요.
그런데 학우님, 서양어에서 ‘소명(vocation)’이란 ‘사명감’을 뜻하기도 하고 ‘직업’ 나아가 ‘천직’을 뜻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수천 년간 해독되지 못한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판독해 내면 누군가의 소명은 완수되는 것일까요? 소명이란 계약 만료나 임무 완료 같은 것으로 떨쳐낼 수 있는 게 아닐 것입니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어떤 질문이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것,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하더라도 물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물음을 자신에게 주어진 업으로 삼고 이에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것. 소명이란 것은 이렇게 우리가 끝끝내 안고 가야 할 무언가가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