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호모 스투디엔스

<KNOU위클리>는 ‘호모 스투디엔스’라는 제하에 격변의 코로나19 시대를 온몸으로 헤쳐 나온 현장 전문가를 만나 대한민국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유아교육 △초?중등교육 △고등교육 △직업·재취업교육 △평생교육 등 분야별로 현실 문제를 진단하고, 문명 대전환의 시대에 한국 교육 정책의 개선 방향과 필요한 정책까지 짚어본다. 두 번째 순서로 코로나19 초기 한국개발원장으로 재직했던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를 만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라틴어 스투데오[stud?o]는 공부하다, 교양을 쌓다, 배우다, 몰두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19로 한국교육개발원도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교육개발원장으로 재직하던 바로 그 시기에 코로나19가 교육현장을 덮쳤죠. 당시 한국교육개발원도 그 영향을 대내외적으로 받았습니다. 우선 대외적으로는 초중고등학교가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하면서 온라인으로 콘텐츠를 송출해줘야 하는데, 그 역량이 부족했어요. 물론 방송통신중학교, 방송통신고등학교가 한국교육개발원 관할 학교라 이들 학교를 위한 콘텐츠도 있고, 신천지교회 사태로 대구시가 봉쇄됐을 때 1만 명 정도에게 콘텐츠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당장 비대면 수업을 들어야 하는 수백만 초중고등학생들에게 콘텐츠를 송출할 서버가 부족했던 거죠. 한국학술정보원의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확보했고, <EBS> 플랫폼을 공유하기도 하면서 두 달여 만에 콘텐츠 송출 역량을 끌어올리긴 했습니다. 내적으로는 한국교육개발원이 정보 보안 규정을 까다롭게 적용받는 공공기관이다 보니 함부로 외부 줌(zoom)이나 웹엑스 같은 툴을 못써요. 자료를 해킹당하면 안 되니까요. 정부 온라인 시스템을 활용해야 하는데, 이것도 처음에 활성화가 안 돼서 어려움이 많았죠. 하지만 그만큼 보안 문제는 철저하게 갈 수밖에 없기때문에, 한국교육개발원 내에 화상회의를 할 수 있는 공간 4곳을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50인 이상은 모이기 힘드니, 화상회의가 대세가 되었네요.
저도 화상회의 많이 하고, 연구원들도 국제회의 하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많이 익숙해지더라고요. 화상회의가 좋은 점도 있습니다. 뭐랄까요, 대면회의에서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은데, 화상회의를 하면서 회의가 간결해졌어요. 1시간 안에 거의 끝나더라고요.(웃음)

 

코로나19가 대학가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코로나19로 대학들은 지난해 3월 개강을 연기했습니다. 007 작전 같은 외국인 유학생 입국부터 온라인 강의 전환까지 일대 혼란의 1년을 보냈는데요. 해가 바뀌고도 이 혼란이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지요. 대학뿐만 아니라 초중고등학교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상황을 겪었습니다. 전 인류가 겪게 된 건데요. 이걸 위기라기보다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스스로 개척하고 창조해내는 좋은 기회로 에너지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이 아니라 창조하는 교육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요. 어차피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를 누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나요? 우리가 만드는 게 결국 미래예요. 준비하려고 하지 말고, 미래를 창조하는 교육으로 거듭나려는 고민이 필요한 시기가 온 거죠.

 

비대면 사회의 확산이라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회로 전환했어요
코로나19 시대를 격변기, 전환기라고 부르죠. 코로나19로 인한 건강 위기도 있지만, 환경 위기도 논의되고 있고요, 오랜 기간 시장을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에 따른 경제질서의 공백상태이기도 합니다. 이런 걸 하이브리드 크라이시스, 혼합위기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시대로 이끌고 있는데요, 로봇, 인공지능(AI), 드론 등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혼합위기와 과학발전으로 인한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있는데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을 시대변환기로 명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가올 미래가 벌써 온 건데요, 여기서 우리는 구태의연한 과거의 교육방식을 유지할 것인지, 대변혁으로 한발짝 내딛을 것인지 고민해야 하고요.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만, 확실한 건 교육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감염병 시대의 교육은 온라인 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선 온라인 교육이 가진 교육적 효과가 규명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다들 온라인, 온라인 하는데, 온라인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효과가 없는 부분도 분명 있죠. 이런 부분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노력이 학계에서 필요해요. 교육영역에서는 이런 걸로 콘텐츠를 개발하고 사교육업체처럼 화려한 방식으로 전달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마다 각각 공감력과 인지력이 다르잖아요. 어떤 학생은 적응력이 빠르지만, 또 어떤 학생들은 효과가 없기도 하거든요. 이런 교육적 영역을 고려한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에 대한 정교한 분석이 필요해요.

 

온라인 강의는 한계가 있다는 게 보통 인식인데요
강의실에서 대면 수업을 하면 학생 2/3이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경우도 있죠. 이게 대면수업이 가진 교육적 효과일까요? 아니에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자는 건 교수의 문제죠. 대면교육에 대한 허상에 더이상 목매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업에서는 학생들과 만남의 기제가 달라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학생들은 온라인에서 만나도 생소하지 않고 좋아해요. 반면에 강의실에서 인격적인 만남을 좋아하는 학생들도 있죠. 결국 블렌디드 러닝 방식으로 수업이 변화할 건데요, 대면강의 커리큘럼도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지금이 바로 고민할 적기입니다.

 

대학이 변화에의 고민을 해야 할 적기란 말씀이군요
이젠 변해야 해요. 지금처럼 이런 비대면 사회가 ‘노멀’이 된다면 그에 맞는 라이프 스타일을 찾아내기 위해 어떻게 개선해야 할 것인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힘들어지면서 집을 예쁘게 꾸민다든지, 쾌적하게 리모델링 하는 반대급부의 노력이 있듯이, 대학도 오프라인 학습에 대해 그때가 좋았지 하는 게 아니라 새롭게 학습문화를 만들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온 거예요.

 

학생들과 눈을 맞추며 강의하던 교수들은 차가운 모니터 앞에서 사제 간의 온기를 느끼기도 전에, 실시간 온라인 강의를 찍기 위한 기술을 익혀야 했죠.
‘10년에 걸쳐 전환될 수 있는 일이 2개월 만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도 나오죠. 한 학기가 채 지나기 전에 대학생들이 등록금 반환 시위에 나서서 화제가 됐습니다. 비싼 학비에 반해 교육의 성과가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인데요. 코로나19가 강제 소환한 온라인 강의에서 그 불만은 더 커졌습니다. 학생이 스스로를 대학의 고객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이미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인강 ‘일타강사’ 수업에 눈높이가 맞춰진 학생들에게 현재 교수들의 전통적 교수법은 무력해 보이기만 합니다. 온라인 체제 강화를 위해 교육부에서 300억 원 정도를 지원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런 ‘언 발에 오줌누기 식’의 지원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지요. 결국 교수들 스스로 온라인에서 어떻게 학생들과 만날지를, 그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에 옮겨야겠죠.

 

학생들의 등록금 반환 시위도 화제가 됐습니다.
학생들은 수업을 온라인으로 듣고, 학교 시설을 이용하는 것도 아닌데 왜 등록금이 이렇게 비싼지에 대해 합리적 질문을 던진 거예요. 이 지점은 정부가 정말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고 봐요. 10~20만 원 환불해 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죠. 학교도 못 가는데 말이에요. 대학에 왔으니, 문화도 향유하고 싶고, 선후배 관계도 맺고 싶은데, 어찌 보면 과거의 향수를 느끼지 못하는 불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십수년 지속된 등록금 동결 사태부터 생각해보면, 등록금 인하가 쉽게 풀 수 있는 무제는 아니에요.
고등교육재정이 문제죠. 대학도, 대학생을 둔 학부모도 힘들어요. 대학은 등록금이 동결돼 힘들고, 학부모는 고액등록금을 부담하느라 허리가 휘어요. 이건 사실 국가가 대학에 제대로 된 재정지우너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등록금을 완하시키려면 과감하게 투자를 해서 교육 양극화도 해소해야 하고요, 대학 생태계를 완전히 대전환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보통 KAIST나 POSTECH을 보고 등록금이 비싸다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학습이나 연구에 특화된 대학이란 걸 인정하기 때문일 텐데요. 등록금 문제는 대학 생태계 전환에 따른 투자의 관점에서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하지만 해마다 신입생들의 기초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어요
교수가 강의한 걸 꼭 시험 문제로 내는 시대, 탑다운 지식전달 시대는 끝났다고 봐요. 학생들에게 어떤 역량을 키워줄 것인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살도록 할 것인지 고민해야죠. 인문학뿐 아니라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 모두를 관통하는 고민거리에요. 이런 고민을 함께 풀어갈 노력을 해야지, 미적분을 못 풀고 기초학력이 떨어졌어요. 요즘 학생들 최악의 학번이에요 하는 진부한 이야기는 그만해야하지 않을까요? 매년 학기초면 대학가에서 나오는 이야기죠. 이제 이런 이야기는 그만하고, 새로운 지식생태계가 발현됐다는 차원에서 교수들부터 변해야 할 것 같습니다.

 

‘파괴적 혁신’으로 유명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2017년 “10년 안에 미국 내 절반의 대학이 파산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우리나라 상황도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돌았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한국대학의 미래, 어떻게 예측하십니까?
한국대학의 미래를 저는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을 K-방역 극복하고 있듯이, 한국대학의 미래는 결국 국민의 높은 교육열과 더불어, 교육계의 가치를 국민이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고 믿어요. 학령인구가 감소하니 지방대부터 줄어든다? 그러니 방치해야 하고 무너뜨려야 한다? 이건 수도권 몇몇 대학의 논리에요. 지방대를 가 보면 그 대학의 소중함을 누구나 다 알아요. 다만 본인의 자녀를 지방대에 보내지 않으려는 건 학벌 구조 때문이죠. 지방의 대학이 좋다고 하면 당연히 보내지 않을까요? 대전에 있는 학부모들은 자녀를 KAIST 보내는 게 꿈이에요. 가고 싶은데 못 들어가는 대학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 대학 사례를 많이 들어요.

 

미국 대학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흔히 말하는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예산이 한국대학과 비교해 10배 정도 높은 편이에요. 거기에 모든 학생이 가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미국인들은 주립대를 많이 갑니다. 주립대는 고등학교 때 반에서 1, 2등 하는 학생들이 가는 대학이 아니에요. 오히려 중간 정도 하는 학생들이 가죠. 대신 주립대에 진학해서 굉장히 열심히 공부하고, 또 졸업하고는 그 지역에서 자기 역할을 하는 거죠. 미국 주립대 시스템처럼 지역 인재들이 지역에서 공부하고 사회에 나와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지방대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에게 좋은 지방대가 있고, 학비도 저렴하다는 인식이 들게 되면, 지방대도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방대 한 곳만의 노력으론 어려울 것 같은데요. 결국 또 서로 경쟁할 테니까요.
한국대학들은 서로 좋은 학생을 뽑느라 혈안이 돼 있죠. 지방대는 서로 좋은 학생들 뽑으려 경쟁하기 보다는, 연합체제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여기에 소외계층이나 학력이 떨어지는 학생들도 많이 선발해서 엄청난 교육 투자를 하고, 학습역량을 키워주는 거죠.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이 정도로 키운 인재를 안 쓸 것이냐는 자부심이 생길 정도로 변화해야 해요. 더 이상 지잡대라고 하지 말란 이야기에요. 낙인효과도 찍지 말고요. 언론에서 지방국립대가 8등급을 받았다고 자극적인 보도들이 나오는데요. 모든 학생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지금은 당연하게 생기는 현상이에요. 다만, 지방대에 온 학생들이 졸업할 때 어떤 실력을 갖출 것인지를 봐달라는 겁니다. 다만 전제는 수도권 대학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거죠.

 

한국대학의 경쟁은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만, 대학가에 신자유주의 물결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건 5·31 교육개혁인 것 같아요.
결국은 5·31 교육개혁이 당시 80년대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차용한 것에서 문제가 시작됐다고 봅니다. 소비자 중심의 교육과 경쟁 패러다임이 대학에 그대로 들어온 것이죠. 그때 진단은 대학 들어가려는 수요는 많은데, 대학이 부족한 상황이니 확대하자는 것이었죠.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을 확대하자. 고급 교육을 확대하자는 시장주의적 발상이었죠. 그게 잘못된 거라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당시의 가치와 시장주의적 발상이 있었는데, 그렇다고 정말 시장에 맡겼냐면, 그게 아니었거든요. 대학 평가를 통해서 경쟁력을 키운다는 미명 하에 대학에 차등지원을 하기 시작했어요. 거기서부터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의 차이가 벌어지는 모멘텀이 된 거죠.

 

우후죽순 양산된 사립대들의 문제가 아니란 말씀이네요.
많은 분들이 무분별하게 대학을 많이 설립한 것이 문제라고들 지적하죠.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봐요. 고급의, 양질의 교육을 시키는 목적이었다면 좋은 대학들이 많이 생겼어야죠. 다만, 정부 지원이 평가를 통한 차등으로 이뤄졌던 것이 문제였던 겁니다. 흔히들 1980년대에는 부산대, 경북대가 연세대, 고려대 수준이었다고들 말하지 않나요? 5·31 교육개혁 이후 차등화된 재정지원 방식이 대학을 잠식하면서 격차가 완전히 벌어지게 됐습니다.

 

지금은 기본역량 진단으로 바뀌었죠
맞습니다. 문제를 인식한 정부가 평가를 통한 차등지원은 없앴죠. 그리고 기본역량 진단으로 바꿨어요. 일반 사업으로 하는 방식이죠. 대학들보고 너희 대학도 한번 사업을 만들봐란 식이었어요. 이명박 정권 시절에 가장 컸던 방식인데요. 일반재정지원과 특수목적 재정지원으로 나눠졌죠. 국가가 주도하는 BK21(브레인코리아21), HK(인문한국) 사업들을 많이 만들었어요. 김영삼 정권 때만 해도 20~30%가 특수목적 재정지원사업이었고, 김대중 정권에서도 40% 선을 유지했는데요. 노무현 정권에서 누리과정이라고 지방대 육성을 위한 사업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나서, 이걸 100% 특수목적 재정지원 사업으로 전환했어요. 우리가 지금 흔히 알고 있는 프라임, 에이스, 링크 사업들이 대표적이죠. 이게 바로 대학 양극화를 촉진시킨 특수목적 재정지원사업들입니다. 기획서만 잘 쓰면 평가해서 예산을 주니, 스카이를 비롯해 후광효과가 있는 수도권 대학들은 기획서 잘 써서 수천억원 씩 받아 가고, 지방대 같은 나머지 대학들은 사업을 따지 못하니 예산 부족으로 힘들어지는 거죠. 물론 고려대나 이화여대 같은 대학이 사업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정책적으로 지방대를 배려해주는 해프닝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렇게 되니 이런 평가 자체가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없죠.

 

에이스, 링크 같은 사업을 십수년간 시행했는데, 양질의 교육을 제공한다는 결과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이죠?
사업계획서 써놓고, 효과 나중에 보자고 하면 없어요. 사업이 다 3~5년 안에 끝나니까요. 교육역량이요? 3년 안에 뭐가 변했는지 찾지 못해요. 투자에 대한 효과가 있는지 아무도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죠. 기획재정부가 바로 이런 점을 지적해요. 교육에 투자하면 대학에 효과가 있느냐는 거죠. 김대중 정권에서부터 시작한 BK21은 효과가 어느 정도 있다고 봅니다만, 에이스, 프라임 같은 사업들은 뭐가 있나요? 기획재정부, 교육부가 사업계획서 보고 예산을 주니 이 지경까지 온 거죠. 수도권 주요대학들에게만 너무 좋은 ‘눈먼 돈’이 된 사업이라고 봅니다.

 

교육문제를 교육 안에서만 풀려고 하니 안 풀리는 것 같아요. 교육 양극화 문제는 노동시장 채용 구조와도 직결돼 있으니까요.
사실 대학체제 개편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모두에 말했지만 학벌구조가 곧 채용구조다 보니, 좋은 대학 보내려는 게 인지상정이죠. 일단 좋은 대학을 가야 쉽게 좋은 노동시장에 편입될 수 있는 구조니까요. 그런데 노동시장 채용구조에서 학벌 중심으로 사람을 뽑는 데에는 국가가 개입할 수 없어요. 정부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기본적으로 피라미드 형태인 학벌 구조에서 몇 개 소수 대학으로만 인정되는 학벌을, 폭넓게 인정되는 학벌로 만드는 상향평준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이 정부의 역할이죠. 지금 우리는 이걸 해체하지 않고서 사교육, 성적경쟁, 입시제도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대학입시에서 경쟁은 결과적으로 좋은 대학을 서로 가기 위해서 발생하는데요, 좋은 대학을 많이 만들어주면 병목현상을 어느 정도 해체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그런 노력을 정부가 해줘야 한다는 거죠.

 

좋은 대학을 많이 만든다고 채용구조가 변할까요?
다시 미국 대학 시스템을 이야기해 볼 게요. 미국에서도 하버드대나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물론 좋은 조건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당연하게 승진하는 구조는 아니에요. 대학 간판을 가지고 입사한 후 통상 5년의 기간을 허니문 피어리어드라고 불러요. 노동시장에 편입되고 나서 대학 졸업장 인정은 5년이란 거죠. 대학 교수 비율도 달라요. 하버드대 교수 중 모교 출신은 25% 정도고, 나머지 대다수 교수들은 능력에 따라서 다양하게 있어요. 주립대 출신들도 있거든요. 우리나라는 학연, 학벌주의가 굉장히 강한데, 미국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그렇기 때문에라도 좋은 대학을 많이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보는 거예요. KAIST의 성공을 보고 노무현 정권에서는 광주에 과학기술대를 만들었고, 울산에도 과학기술대를 만들었죠. 엄청난 투자를 한 거예요. 지스트나 유니스트를 보고 지잡대라고 하지 않잖아요. 지역에 이런 대학들이 많아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역에 좋은 대학이 없는 게 아니에요. 이과 계열 학생들이 기를 쓰고 들어가려고 하는 대학이죠. 없는 게 아니라 만들면 되는 거라고 봅니다.

 

미국도 그렇지만 한국대학 역시 대학 재정을 등록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요. 하지만 등록금은 십수 년째 동결된 상황입니다. 대학 발전을 위한 투자가 이뤄지기 힘들어지면서, 지방대 중심으로 중국을 비롯한 외국인 유학생을 받으며 연명하는 대학들도 늘고 있죠. 미래에는 일류대학만 살아남게 될까요?
그냥 두면 당연히 소멸할 겁니다. 일반적으로 사립대는 법인에서 부담하는 재정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예산의 70% 가량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데요. 등록금에 의존하는 구조 자체가 깨져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부패한 대학은 폐쇄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겠죠. 하지만 지역에 있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오지 않는다면, 투자를 통해서 잠재력 있는 대학으로 키우는 것이 바른 방향 아닐까요? 이것이 공영형 사립대가 가진 철학입니다. 국가가 함께 운영하면서 지역 대학을 키워가자는 것이죠. 외국인 유학생이 없어서 운영이 어렵다는 건, 등록금에 의존하겠다는 발상과 다를 바가 없어요. 이미 수도권 대학들은 대학 정원 이야기할 때 그다지 크게 피부로 와닿지 않아요. 정원을 줄여도 괜찮은 이유가 바로 유학생이거든요. 수도권 대학들은 재학생보다 많은 유학생으로 넘쳐나고 있어요.

 

 

#사실 대학들이 그동안 고객으로 대해왔던 학생에게 등록금만큼의 만족도를 주지 못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도서관에는 토익, 토플을 공부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문송합니다’(문과라 죄송합니다)로 대변되는 문과 학생들은 취업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적성에도 맞지 않는 상경계열 복수전공을 선택한지 오래다. 거의 대부분의 대학이 학문과 지성의 전당이 아니라,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해버린 것.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일까? 또 대학에 들어오기도 전에 열패감을 맛보는 청년 세대들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까? 시스템이 변화해야 할까? 아니면 교육 커리큘럼이 변해야 할까? 대학 서열화 해법,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스카이,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지잡대’ 등 대학 서열화 문제가 심각합니다. 서열화 문제, 어디서 시작된 것입니까?
대학 서열화 문제는 결국 사회가 양극화된 것에서 찾아봐야 하는데요. 기본적인 원인은 교육의 양극화에서 시작됐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학력의 양극화를 초래했어요. 가정 배경에 따른 경제?사회적 배경에 대한 요인이 큰데, 이걸 국가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우선은 초?중?고등학교부터 교육 접근성을 확대해야 하는데요. 공정한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겁니다. 고등학교 무상교육이 이뤄졌덧이 대학도 점차적으로 무상교육으로 가야해요.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바이든 미 대통령도 고등교육을 무상으로 한다고 공약에 내세웠잖아요. 10개 직업 중 6개가 고등교육이 필요한 걸로 산업구조가 개편되니까, 양극화 해소와 인력 필요 관점에서는 고등교육을 많이 받게 해줘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그래서 2년제 커뮤지티칼리지를 무상으로 하겠다는 공약을 낸 거고, 중류층 이하는 4년제 주립대도 무상교육을 지원한다고 했죠. 결국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산업 개편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데 구등교육에 대한 무상지원이 핖ㄹ요하다는 이야기죠. 미국이 초?중등교육이 아니라 고등교육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을 우리가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해요.

 

한국은 학력 중심, 시험 중심의 경쟁 구조죠.
모두에 말씀드려지만 시대전환기가 왔어요. 여전히 텍스트 중심으로 시험 보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고, 수능이 끝나면 만점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이야기를 2020년에도 하는 거예요. 학력 지향의 학업 성취 철학을 이제는 버릴 때가 됐어요. 학교에서 양성해야 할 학생의 능력은 역량과 자기 성장의 척도로 전환해야 합니다. 자꾸 대학에서 시험 보고, 성적 매기면서 이걸로 상대평가를 할 게 아니라, 학습방법,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강의 구성 등을 고민하면서 어떻게 우수한 역량을 가진 인재를 양성할지를 치열하게 생각해야죠.

 

대학이 바뀌지 않아요. 아니 변화가 더디다고 해두죠. 이런 상황에서 학생은 더 답답해집니다.
교육과정이 개정된다고 해도 학생은 결국 성적에 매몰될 수밖에 없어요. 혁신학교를 예로 들어볼게요. 혁신 중학교 출신 학생이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정답 없는 질문을 학교에서 많이 했다. 정말 좋았다. 그런데 고1이 되면서 다시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수능을 봐야 하고, 시험 공부도 해야 한다. 대학에 들어가긴 했지만 너무 힘들다.” 21세기의 디지털세대 아이들도 산업사회 학벌구조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아픔이 있어요. 이걸 어떻게 기성세대가 풀어줄 것인가가 문제인데요. 진부하게 서울대를 없애자고 말할 수는 없겠죠. 좋은 대학을 많이 만드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그 대학들이 서로 네트워킹을 통해서 자원을 공유하고, 교수와 학생이 교류하면서 국가 전체가 고등교육 양성 시스템을 관리하는 것이죠. 단지 우리 대학 학생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학생, 시민을 길러내는 대학이 어떻게 체질변화를 해야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이런 시대적 전환기에는 필요해요.

 

대학 서열화는 그 자체로도 큰 사회적 문제가 되지만, 더 큰 문제는 아이들 스스로가 대학의 서열에 따라 스스로의 가치를 받아들인다는 점입니다. 이는 젊은 세대들에게서 더욱 크게 나타나는대요. 대학생을 지성인으로 받아들였던 과거와 달리, 이른바 명문대생은 학창시절을 열심히 보냈으니, 취업에서도 더 가점을 받는 것이 옳다고 수용하는 세대가 탄생한 것입니다. 기성세대로서, 또 지식인이자 교수로서 안타까움이 더하실 것 같은데요. 이 ‘기이한 공정’을 외치는 세대가 출현하게 된 것은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의 양극화 인식은 기계적인 공정성에 학생들이 매몰됐다고 본다. 똑같은 기회를 줬다? 그건 제1원칙은 맞아요. 하지만 국가가 이야기 할 것은, 공정한 출발선에서 출발하지 못하는 불공정 게임에서 어떻게 모두를 같은 출발선에 세울 수 있는가 아니겠어요? 공정성을 이야기할 때 특혜받는 계급에 대한 불만이 당연히 있잖아요. 문제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하고, 국가가 룰을 바꿔줘야 합니다. 좋은 대학에 간 것은 당연히 존중해줘야지 하고 말하기 전에 출발선이 공정했는지를 먼저 따져보라는 거예요. 그전에 출발선이 공정했는지 그래서 메리토크라시가 작동했다면 승복할 수 있는 거죠.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계속해서 던지는 화두가 하버드대도 출발선부터 공정하지 않다는 거예요. 하버드대의 좋은 교육을 다른 학생에게도 주려면 줄 세우는 교육이 아니라 중하위권 학생들도 들어올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거죠. 어차피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자본주의 교육의 한계를 샌더스 교수는 급진적으로 ‘뺑뺑이’를 돌리자고 주장한 거죠. 저는 좋은 대학을 더 많이 만들어주는 걸로 풀자는 걸 얘기하고 있는 거고요. 

 

대학서열화 문제를 이야기하면 늘 빠질 수 없는 것이 입시 문제입니다. 입시는 오랜 역사동안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이제는 무엇이 맞는 모델인지에 대한 논의는 뒤로 한 채, 내 자식만 잘 가면 된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를 맞은지 오래입니다. 정시, 수시, 학생부종합전형… 등 한국 입시제도를 합하면 2천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결국 입시에는 부모의 정보력과 경제력 등으로 드러나는 문화자본이 자녀에게 되물림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초중고에서 아무리 창의력 교육을 외친다고 하더라도, 입시라는 고삐를 쥐고 있는 대학에서 변화를 주지 않는 이상 초중고 교실이 변화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한국 입시제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교육 이야기하면 우리는 대학입시밖에 할 말이 없어요. 대학입시에서 성공하면 계층 상승이 가능하니 입시에 올인하는 형태가 굳어졌죠. 입시제도를 수십번 뜯어고친다고 한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병목현상의 최극단에 있는 소수만 좋은 대학에 가는 구조니까요. 그래서 저는 명문대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거고요. 입시 제도만 갖고는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등 선진 입시제도에 대한 논의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수능 철에 즈음해서 반짝 논의될 뿐, 실제 학교 현장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지요. 원장님께서 생각하는 미래의 입시 방향은 어떤 모습일까요? 대학은 어떤 자질을 가진 인재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평가 모델을 만들어야 할까요?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됩니다. 선택과목과 공통과목이 있는데, 대학수학능력평가(수능)에서 선택하는 문제도 있긴 하죠. 일반적인 수능으로는 어려우니, 수능의 성격도 바뀌어야겠죠. 그렇지만 바칼로레아는 우리 사회에는 맞지 않는 모델이라고 봐요. 영국의 A-Level 시험이나 미국의 SAT 시험도 있지만, 우리나라 수능과 이 시험들의 다른 점은 학생들이 그 시험에 실패해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거예요. 우리는 수능 한번 망치면 인생을 망칠 지경이에요. 각자도생이라고 하죠? 수능이라는 게임에 인생을 거는 겁니다. 정시를 확대한다, 수시를 확대한다 정도의 문제가 아니에요. 수능은 어느 정도의 자격 시험 수준으로 돼야 하고, 수능을 망쳐도 내가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를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게 더 맞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독일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1996년 한국을 2주간 방문했다. 7차례 공개 강연을 했고, 유학의 본거지인 성균관대, 종로의 조계종, 광주 망월동, 포항제철 공장 등을 견학했다. 귀국 직전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순수성을 지향하는 불교와 공동체 지향적인 유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 현대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은 앞으로의 발전모델을 굳이 서구에서 찾을 필요가 없는데, 이는 어느 나라도 걸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길이기 때문”이라고 조언한 바 있다. 그로부터 25년이 흘렀지만, 한국 학계는 여전히 서구의 이론을 수입해 한국 사회를 분석하려고 한다. 교수의 박사 학위는 미국이 여전히 압도적인데요. 학문의 다양성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해보이는 지점이다.

 

 

수십년 간 강의실의 ‘독재자’로 권위를 내세웠던 교수 사회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교수들의 ‘지적 게으름’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죠. 원장님께서는 교수 사회에서 어떤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또 변화는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 역시 교수인 입장에서 공론화시키기는 어렵지만요, 교수자격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초·중·고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죠. 그런데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은 그렇지 않아요. 교수자격 제도는 전문성을 인정해주자는 겁니다. 훔볼트 철학의 핵심이 전문성인데, 독일은 그걸 국가가 인정해주겠다고 해서 교수자격을 만든 거죠. 이게 미국으로 넘어가면서는 자격증을 빼고 전문성만 인정해주게 됐어요. 대학 교수를 하려면 자격증으로 검증하지 않지만 아주 고학력 전문가로 인정해주겠다는 것이죠. 사실 훔볼트 방식은 교수 자격을 공적으로 국가가 보장해주는 장치에요. 일면에서는 조금 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나라마다 교육권과 학풍의 맥락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독일에서 하니까 우리도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방식으로 교수자격을 부여해야 할까요?
연구 결과로 할까요? 시험 보고 할까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거라고 봐요. 하지만 그 전에 자격이라기보다는 교수 사회에서의 자정 노력이 좀 필요하다고 봐요. 그 노력의 근간은 교수의 연구역량이 핵심이 돼야겠고요. 교수 자신이 가진 연구역량의 핵심으로 학생을 만나 교감하는 것이죠. 대학은 초·중·고등학교처럼 교과서가 정해져 있는 곳이 아니잖아요. 남의 책을 정리해서 지식을 전달해온 방식들도 혁신돼야 할 거예요. 이걸 인정해주는 학풍이 일어나야 합니다. 교수들이 이야기할 때 하버드대 아무개 교수가, 00대 아무개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고 인용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좋은 이야기죠. 하버드대 교수의 좋은 연구 결과를 인용할 수는 있지만, 교수 자신의 연구 결과에 따른 논리를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전달 효과라고 해야 할지…. 더 이상 교수들이 지식전달자의 역할만 해서는 안 될 테고요, 학문 식민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온라인 강의가 일반화되면서, 학기제에 대한 회의론도 솔솔 나와요. 혁신적인 학년 구분제도가 나올까요?
이미 대학에서 학년제는 의미가 없어요. 학년 구분은 초중고등학교 이야기죠. 당신 고등학교 졸업장 있어 라는 질문은 여전히 학력을 자격으로 치환시키는 건데요. 저는 자격 중심의 학력은 의미가 없다고 봐요. 법적으로는 초중등교육 학년제로 돼 있는데, 학력과 학력을 치환하지는 않죠. 졸업장이 있느냐 없느냐로 보니까요. 중학교 졸업장이 없으면 검정고시를 보게 돼 있죠? 만약 중3 거의 끝까지 배우다 어떤 사정으로 학교를 떠났다면, 그냥 고등학교를 가도 되는데, 검정시험을 따로 봐야 하는 거예요. 앞으로는 사라질 것으로 봅니다. 대학에서도 학년제는 의미가 없어요. 이미 1학년 학생이 4학년 수업이나 심지어 대학원 수업을 듣기도 하거든요. 학?석사 연계과정도 생긴지가 오래됐죠. 이건 학년 자체가 허물어지는 단계입니다. 제도적으로 큰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고등교육법 상 대학 설치의 근간은 학과에요.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같은 시도가 더 확산해야 한다고 봐요. 말씀하신대로 고등교육법에서 대학 설치의 근간을 학과로 규정했는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거든요. 단위가 학과 또는 학부인데, 전공 간 벽이 높아지는 문제가 있어요. 자유로운 소통, 그 소통을 넘은 융합이 어렵죠. 전공 교수의 이기성도 작동하고요. 미국이나 유럽처럼 1, 2학년은 전공이 없는 학부인 교양대학처럼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부에서 전공과 취업이 미스매칭된다고 표현을 많이 하는데요, 바른 시그널이라고 보진 않아요. 앞으로 변화하는 산업사회 구조에서는 전공이 없는 직업 큐레이션이 확산할 것으로 보거든요.

 

교수와 학생의 관계, 강의실 공간의 혁신은 어떤 방향으로 일어날까요?
초?중?고등학교 교실도 바뀌고 있는데요, 대학은 좀 많이 늦는 편입니다. 한국형 뉴딜정책에서 스마트교육, 친환경 교육이 있는데 초?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 교사가 원하는 사용자 중심의 학습공간 혁신이 일어나고 있어요. 정부가 18조원 가량을 초중등교육에 투자한다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대학은 투입되는 예산이 없습니다. 예산이 없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죠. 대학들은 그동안 등록금을 쌓아서 적립금을 만들었고, 이걸로 건물을 짓는 등 시설에 투자해 왔는데요. 이제는 건물 짓는 방식이 아니라 교육에 투자하는 경상운영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구글은 더이상 대학이 필요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대학 하위 유무에 관계없이 고성장 직업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과 프로젝트를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온라인 커리어 자격증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온라인 자격증을 따는 데 필요한 강의 수강 기간은 약 3~6개월이며, 온라인 교육 플랫폼인 코세라를 통해 제공한다. 온라인 경력 인증서를 4년제 학위로 간주한다는 것. 가성비 좋은 온라인 교육 서비스가 등장하는 지금, 오늘날의 고등교육 시스템은 어떻게 혁신돼야 할까? 연구중심, 교육중심 대학 등 현 체제의 대학의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을까?

 

 

가까운 미래에는 대학교수의 지식보다 날마다 새롭게 업데이트되는 인공지능이 더 탁월할 거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이미 그 미래를 앞당겼고요.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올까요?
시장에서는 이미 작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IT 쪽은 자격증을 요구하잖아요. 이 분야에서 코딩 능력이 있는지,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이 있는지가 중요하니까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는지, 어느 대학 무슨 학과를 졸업했는지 안 봐요. 첨단과학 분야는 이미 블라인드 채용으로 가고 있고, 상대적으로 후진적인 산업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죠. 하지만 제조 중심 기업들은 여전히 우수 인재에 대한 검증을 대학 졸업장으로 하고 있어요. 점차 사라지겠죠? 대기업도 취업 시장이 변했어요. 전반기, 후반기로 나눠 몇 천명씩 대규모 공채하는 방식에서 수시채용으로 전환하고 있죠. 코로나19가 이 상황을 더 도드라지게 보여주기도 했고요. 주목해서 봐야할 부분이에요. 과연 학연, 학벌이 강화될지, 약화될지 지켜봐야겠죠.

 

온라인 공개 수업인 무크(MOOC)가 2013년 출현했고, 칸 아카데미의 강좌를 활용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스탠포드대의 코세라는 이미 유명하죠. 미국 유수의 대학들은 앞다퉈 강의를 온라인으로 공개하고 온라인 학위를 부여하는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지식의 공유성 때문에 무크 같은 형태의 온라인 공개 수업은 더욱 확산할 거로 예상합니다. 다만 학점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 수강시스템은 어떻게 연동할 것인지, 교양차원에서만 진행할 수 있을지, 학생들에게 얼마나 활용성이 높을 것인지 등등에 대한 부분을 좀더 관심있게 지켜봐야겠죠. 요새는 K-Mooc도 안 가지 않나요? 유튜브에서 정보를 얻잖아요. 이른바 마켓과 아카데미의 경쟁이죠. 이런 생태계는 확산할 거라고 봐요. 이게 잘못됐다고 말하지 말고 상수라고 봐야죠. 다만, 상수인데 어떻게 교육적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연구역량을 배가시킬 수 있을지를 계속해서 연구하자는 겁니다.

 

 

#강원대와 강릉원주대가 최근 추진하는 ‘1도 1국립대’ 체제가 눈길을 끈다. 강원대와 강릉원주대가 하나의 교명을 사용하고, 춘천, 원주, 강릉, 삼척의 4개 캠퍼스 체제를 유지한다는 게 그 골자. 캠퍼스별로 특성화를 추진해 각 지역 캠퍼스가 가진 자원을 공유하면서도 자율성을 유지하는 새로운 형태의 대학이다. 기업의 M&A처럼, 대학들도 합병하는 사례가 나올까?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를 주창해오셨습니다. 최근에는 국립대 간 공동학위-공동입학 시스템을 도입하는 ‘공유성장형 대학체제 개편방안’을 제안하셨는데요. 그나마 나은 국공립대 사정에 비해 지방 사립대, 특히 전문대로 시선을 돌리면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미래가 정말 어두워보이거든요.
기본 출발점은 고등교육재정지원의 토대를 마련하고, 지방대의 연합체제를 하나의 리그로 마련한다는 겁니다. 우선 국립대를 연구 중심, 교육 중심, 온라인 중심 등의 연합체제 리그로 해야겠죠. 국가가 설립했으니 책임을 지는 겁니다. 그 후에 사립대를 함께 연합체제로 가면 돼요. 사립대끼리 해도 좋고, 국립대와 연합해도 좋습니다. 현재 서울 7개 사립대가 연합체를 구성하기도 했죠. 만약 지역국립대가 참여하고 싶다고 하면 어떤 기준이 필요한지 논의해봐야겠죠. 캠퍼스 자원도 공유하고, 입학도 공동입학이 될 수 있도록 기준을 정해야 해요. 어느 캠퍼스에서 대면 수업을 듣고, 온라인 수업은 어떻게 수강할 수 있을지도 논의해야 합니다. 최종적으로는 해외대학과 교류해 공동학위를 받는 방식도 추진할 수 있겠죠. 유럽 대학들이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듯이, 우리도 아시아권에서는 할 수 있어요. 이른바 학위의 국제화, 학위의 국제통용성의 문제인데요. 우리가 이걸 주도하는 방식으로 네트워킹화 해서 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겁니다. 저는 이걸 ‘세종대왕 프로젝트’라고 부릅니다. ...(후략)

 

전문은 추후 발간될 단행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