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대출판문화원 ‘지식의 날개’에서 내놓은 대니 돌링 옥스퍼드대 교수의 『슬로다운(SLOWDOWN)』이 화제가 되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한 저자는 ‘1970년대 초반부터 인간의 진보가 느려지고 있으며, 이는 한탄할 일이 아니다. 다가올 미래는 지금보다 더 인간적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의 책은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도시 운동 ‘치타슬로(Cittaslow)’를 다시금 소환한다. ‘느리게 살자’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 운동은 1986년 패스트 푸드에 반대해 전 세계로 확산된 ‘슬로 푸드’ 운동이 모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탈리아어인 치타슬로보다 영어인 슬로시티(Slowcity)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들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강조하고 있는 운동으로 보는 게 정확할 것 같다. ‘위클리’는『슬로다운』출간에 맞춰, 이 책의 논쟁적 의미와 함께 느림을 강조하는 문화의 특징과 문제점, 그럼에도 여전히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짚어본다. 대가속, 빠름에 대한 단순한 반대급부가 아니라면, 거기에는 모종의 온축된 지혜가 발현될지도 모를 테니까.
현대 사회를 속도의 시대라고 한다. 이른바 대가속의 시대, 문명의 질주는 휴대폰조차 1G에서 5G로 바꿔냈다. 또 어떤 광속의 데이터 서비스가 유혹할지 모른다. 비둘기호 기차가 KTX로 바뀌었고, 꾸불꾸불했던 길들은 고속도로로 뻥뻥 뚫렸다. 이것들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압축적 성장을 증거하지만, 치러야 할 대가도 만만치 않았다. 압축성장은 성수대교 붕괴(1994), 삼풍백화점 붕괴(1995) 사건 등 재난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개인을 집단의 한 단자로 빠르게 소외시키면서 경쟁에서 탈락한 이들을 시대에 뒤처진 불량 부품으로 취급하는 사회 윤리적 파산까지 낳았다.
슬로푸드와 슬로시티의 정신
시계를 조금 앞으로 돌려보자. 이탈리아 북부에서 패스트푸드에 반대해 전 세계로 확산된 슬로푸드 운동이 일어난 것은 1986년이다. 슬로푸드는 지역의 전통적인 식생활 문화나 식재료를 다시 검토하는 운동 또는 그 식품 자체를 가리키는 용어다.
국내에는 2003년 당시 김종덕 경남대 교수가『슬로푸드 슬로라이프』(한문화, 2003)를 출판하면서 좀더 정치하게 토착화된 ‘슬로푸드론’을 마련했다. 이후 2007년 ‘슬로푸드문화원’이 설립됐고, 2014년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로 거듭났다. 이 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종덕 경남대 명예교수는 ‘슬로푸드’를 가리켜 음식이기도 조직이기도 하고, 운동이자 철학이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슬로푸드 운동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게 ‘다양성 보호’라는 점이다. 산업화로 다양한 지역의 많은 먹거리 품종들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 1860년대 아일랜드에서 감자역병이 발생해 100만 명 이상이 죽고, 수백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돌아야 했다. 생산성을 중시한 나머지 단일품종을 재배하게 되어 생긴 결과였다. 어째서 종의 다양성을 보호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현대 슬로푸드는 단순히 미식의 문제, 안전한 먹거리를 넘어 ‘삶을 바라보는 태도’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속도의 시대, 압축성장 한계 드러나
느리게 사는 삶의 의미를 성찰할 때
방송대 공부도 속도 아닌 방향이 중요
1986년의 슬로푸드 운동은 13년 뒤 출현하는 슬로시티 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치타슬로’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느리게 살자’는 뜻을 내포한 이 운동은 세계적으로 공감을 불러 일으켜, 국제슬로시티연맹(cittaslow International HQ)이 만들어졌다. 2021년 7월 현재 30개국 278개 도시가 국제슬로시티연맹에 가입해 있다. 우리나라는 2006년 한국슬로시티추진위원회(위원장 손대현 한양대 교수)를 결성해 2007년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연맹에 가입했다.
한국슬로시티본부에 따르면, 슬로시티의 슬로(slow)는 단순히 패스트(fast)의 반대 의미로 ‘느리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개인과 공동체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 재인식하고, 여유와 균형 그리고 조화를 찾자는 뜻이다. 이는 슬로시티의 취지가 현대 문명을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 옛것과 새것의 조화를 위해 현대의 기술을 활용하는 데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슬로시티가 도시의 전통문화와 산업, 자연환경, 지역 예술을 지키고자 지역민이 참여하는 지역 공동체 운동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환경을 위협하는 대량소비와 바쁜 생활태도의 배격, 자연에 대한 인간의 기다림 등의 철학을 실천하는 운동이라는 점이 매혹적이다.
속도에 취한 사회, 압축성장의 그늘
이쯤에서 서두의 압축성장으로 다시 돌아가자. 우리나라가 슬로푸드, 슬로시티의 세계 대열에 합류하기 1년 전인 2006년 당시 참여정부가 내놓은 정책브리핑 하나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주제는 「‘희망한국 2006’ … 양극화 해소의 길」이며, 주 메시지는 이제는 압축성장의 신화가 끝났다는 것이었다.
당시 참여정부가 인식한 압축성장의 이란성 쌍둥이는 바로 걷잡을 수 없이 간극을 벌려가고 있는 ‘양극화’였다. 압축성장이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초래했다는 진단이다.
속도를 내세운 압축성장은 수많은 사회적 재난을 동반하면서 결국 한국사회의 양극화까지 부추겼다. 실제로 2015년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는 압축성장의 그늘에서 전개된 복잡한 삶의 변화상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책 『압축성장의 고고학』(한울아카데미)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연구소 소장이었던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과)는 “압축성장 50년은 물질주의자들의 각자도생 사회를 남겼다”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각자도생 사회’로 던져진 개인들과 슬로푸드, 슬로시티의 기본 정신이 만날 수 있는 점은 없을까? 두 운동이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과 삶의 질 향상의 조화를 모색한다고 한다면, 분명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접점은 넓게 본다면 2018년 트렌드가 됐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최근 번지고 있는 ‘미라클 모닝’과 같은 자신의 내면을 성숙하게 하는 노력과도 만날 수 있는 점이 있지 않을까.
느리고 오래 가는 기쁨과 즐거움
1989년 11월 9일 파리에서 세계 각국의 대표들이 서명한 ‘슬로푸드 파리 선언’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호모사피엔스라는 이름에 상응하기 위해서, 인류는 이제 종이 소멸되는 위험에 처하기 전에 속도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보편적인 어리석음인 빠른 생활에 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물질적인 추구를 자제하는 것입니다. 속도와 효율성에 도취한 흐름에 전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느리고 오래 가는 기쁨과 즐거움을 적절하게 누려야 합니다.”
오래 전 괴테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고 말했다. 1989년 슬로푸드 파리 선언문은 괴테의 이 말에 담긴 속뜻을 다시 소환했다. 일본의 환경운동가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쓰지 신이치는 ‘슬로 라이프((Slow Life)’를 제안해 화제가 됐다. 느림 속에서 삶의 행복을 발견하자는 제안이다. 이 가을, 내 삶에서 무엇이 진정 소중한 것인지, 나는 무엇에 행복해하는지 질문을 던져볼 일이다. 광속을 자랑하는 현대 문명을 거부하자는 게 아니라, 이 문명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게 행복한 것인지, 무엇을 바라봐야 삶이 좀더 넉넉해지는지, 잠시 돌아보자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