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지평을 넓히는 방송대인

‘고추 마이스터’를 아시나요? 일반 사람들에게 다소 생소한 용어다. 고추 마이스터는 농업분야 최고 권위자에게 주어지는 영예로 이해하면 된다. 현장 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고추 재배 영농인 가운데 정부의 엄격한 선발기준에 따라 선정된다. 고추 마이스터는 우리나라에서 딱 3명밖에 없을 정도로 되기 어렵다. 이 가운데 한 명이 방송대 농학과를 졸업한 방영길(62세) 동문이다. 그는 20대 때 울산공과대(현 울산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동부제철 공채 1기로 입사해 잘 나가는 철강업계의 엔지니어로 일했다. 20년 가까이 근무한 동부제철을 나온 이후에는 병뚜껑 제조업체인 두일캡에서 전무이사까지 지냈다. 귀농을 결심하고 경북 영양에 자리잡은 방 동문은 지난 2008년 귀농인으로서 첫삽을 떴다. 고추 마이스터로 지정된 것은 방 동문이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고 5년 만에 거둔 성과였다. 농업마이스터 역사를 봐도 그가 걸어온 길은 대단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그는 왜 귀농을 선택했고, 어떻게 고추 마이스터가 될 수 있었을까.  

청정고랭지 영양서 인생 2막 열어
어린 시절 방 동문에게 특별한 꿈은 없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번듯한 직장에서 일하는 정도랄까. 거창한 목표가 있는 게 아니었고 평범한 삶을 동경하는 정도 수준이었다. 방 동문은 “아버지는 목수 일을 하셨고 어머니는 옥수수 농사를 지으시면서 나물을 팔아 자식들을 키우셨다”며 “가정 형편이 넉넉치 않았지만 지방에 있는 대학까지 나와서 서울에 본사를 둔 이름있는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방 동문은 대기업에서 철강 기술자로 근무하면서도 마케팅, 영업, 기획 등 다양한 분야의 보직을 두루 거쳐 전문성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2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은퇴한 이후에는 농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골에 정착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서 경기도 광주 소재의 중소기업 임원으로 갔어요. 여기에서 일하는 동안 틈나는 대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귀농하기에 적당한 곳을 찾아다녔죠.” 마침내 2007년 12월 26일, 백두대간의 청정고랭지 지역인 영양에 새둥지를 틀었다. 이듬해 고추 명산지로 유명한 영양에서 자연스럽게 고추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2008년 2만5천5백여㎡(약 8천평)의 땅에서 방 동문은 ‘고추 재배’로 인생 2막의 본격 시작을 알렸다. 값싼 중국산의 물량 공세가 걱정되긴 했지만 차별화된 품질의 맞춤형 브랜드를 만든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이때만 해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고추 재배의 명인이 되리라곤 생각할 수도 없었다. 


고추 재배법 배우러 어디든 찾아가
방 동문이 고추 마이스터로 인정받기 전까지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어왔던 것은 아니었다. 귀농 이후 처음에는 사과 농사를 시작하려 했으나 주위 분들의 권유로 고추를 심었다. 시행착오를 겪은 것은 당연했다. “고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요. 당시 고추 육묘를 해야 하는데 물어물어 더듬더듬 해결하는 것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었어요. 자세히 설명해주는 사람도 찾을 수 없더라고요. 4월이었는데 고추 모종을 심기 전에 경화시키는 작업을 해야 했어요. 하우스 문을 열어 놓은 채 하루가 지났죠. 다음날 아침에 물을 주려고 갔는데 고추 고개가 딱 꺾여 있는 게 아니겠어요. 자는 동안 얼어서 냉해를 입고 말았죠. ‘하우스 안에 있는데 설마 영하로 떨어지겠어?’라고 생각한 탓이죠.” 

귀농 첫해 고추 농사를 망쳤지만 전문 농업경영인이 되겠다는 그의 꿈을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이후 그는 절치부심하고 심기일전했다. 아는 게 없으니까 쉼 없이 배워야 했다. 영양군농업기술센터, 경북농민사관학교, 안동대 마이스터과정, 선진농가 등 고추 재배법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 익혔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그동안 쌓아온 공학적 사고를 고추 농사에 접목하면서 고추 재배기술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여러 군데서 벤치마킹한 재배법을 저만의 재배기술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예를 들어 고추를 키울 때 비닐 터널 대신 흰색 부직포(천)를 덮으면 병이 안 생기고 수확량이 늘어난다거나, 탄저병 예방을 위해 보호살균제와 치료살균제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야 효과가 있는지 등 이론적으로 배운 내용을 실제 노지 재배에 접목하면서 저만의 노하우를 깨닫게 됐어요.” 이러한 그의 노력으로 탄저병을 이겨내고 고추를 재배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매콤하고 질 좋은 고추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마이스터 자격을 얻기까지
2013년은 방 동문에게 잊을 수 없는 한해였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고추 재배의 명인으로서 ‘고추 마이스터’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해이자 방송대 농학과에 입학한 연도라는 점에서 그렇다. 늘 배우는 자세로 임하는 그였기에 바쁜 농사일에도 공부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놓지 않았다.   

고추 마이스터가 되기 위해서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고추 마이스터는 영농경력 15년 차 이상을 대상으로 3차례 심사(필기시험, 역량평가, 현장심사)를 통해 선정하고 있으며, 까다로운 심사를 거치는 만큼 농업분야 최고 권위자에게만 주어지는 영예로운 타이틀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 만큼 고추 마이스터는 대한민국에서 고추를 재배하는 농업인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 장인으로 통한다.

마이스터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요건이 필요할까? “1차 시험은 원예학 개론(작물생리학), 수확후 관리, 농업법규 법령, 실습교수법 등 이론 과목에서 60점 이상을 얻어야 해요. 2차는 프리젠테이션 시험이에요. 감독관 앞에서 ‘베스트 프랙티스’를 PPT로 만들어 발표한 뒤 질의응답 시간을 갖죠. 제 경우엔 탄저병에 대한 원인과 결과, 대응책 등이 주된 내용이었어요. 마지막 3차는 현장심사를 통해 전문가들이 제가 운영하는 농장에 와서 실제로 농사짓는 환경과 규모, 재배품목 등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과정을 거쳤죠.” 농업마이스터로 지정되면 후계농업인 지도(농업계 고등학교 및 대학, 귀농자 등), 농업경영컨설팅 컨설턴트, 현장 교수 등의 자격을 부여받아 지역 농업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다.


방송대 농학과는 2학년으로 편입했다. 그가 바쁜 와중에도 방송대에 입학한 것은 농업학 박사학위를 꿈꾸고 있어서다. 농학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도 작용했다. 그는 “농업 현장에서 이론적이고 근원적인 접근 방식을 묻는 사람이 없다 보니 재배기술을 단순히 따라 하는 데 그치게 됐다”며 “기존의 주먹구구 시스템에서 배우는 방식에 한계를 느끼던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라고 말했다.

“기존에 배웠던 과정은 재배학·식물학·원예학·비료학 일부를 다루는 공부 방식이었다고 할까요. 하지만 방송대 농학과에서는 과목 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어 이론과 실제를 어울림 있게 만들어 학습 체계를 구조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현장에서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보니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공부하면서 보람도 느낄 수 있었죠.” 농학과에서 가장 기억나는 교수로 류수노 방송대 총장을 꼽았다. 농학자로서 연구뿐만 아니라 ‘슈퍼홍미’ 품종개발을 했다는 점에서 과학 영농인인 그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고 한다.


성공하는 귀농귀촌을 꿈꾼다면?
방송대 농학과를 다니는 학우들 가운데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 이런 후배들을 위해 방 동문은 ‘자신만의 농업을 찾아가야 한다’라고 현실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농사일이란 게 정말 힘들다. 안정적인 농가소득 창출이 어렵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복합영농과 전문화영농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해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 또한 기존 시장에서 경쟁이 덜 한 분야가 무엇인지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귀띔했다.

인생의 참된 가치를 농사에서 찾는 그는 농학 공부에 대한 지론도 빠뜨리지 않았다. “농학을 공부하는 분들은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농학은 생명과 경험의 과학이면서도, 경험과 이론의 어우러짐을 찾는 조화의 학문이에요. 농사를 지으면 텃밭에 생명이 자라는 것이고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다고 보거든요. 땅과 어우러져 살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몸과 마음이 행복해지고 건강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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