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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 회사 일로 일본을 1주일간 견학하게 됐습니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였기 때문에 나름 알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직접 가보니 나의 생각과는 달리 가깝고도 먼 나라였습니다.


일본을 다녀온 후 저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일본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에 자만했던 저의 무지에 대해 창피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무지를 깨우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에 대해 좀 더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우선 일본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일본어를 배운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사무실에 배달된 신문에 방송대의 신입생 모집 광고를 보게 됐고 이를 계기로 2006년 방송대 일본학과 1학년에 지원했습니다.


영어로 치자면 알파벳인 히라가나나 가타가나도 모르고 입학을 한 것인데, 직장인이 학업을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기초가 없다보니 스터디를 찾게 됐고 스터디를 통해 젊은 친구들과 일본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배움도 있었지만 젊은 친구들에게 뒤지지 않아야겠다는 자극을 더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자극이 원동력이 되어 4학년 동안 수업료 면제를 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고, 4년 만에 일본학과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학과를 졸업한 후 자연스레 일본학과 동문회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일본학과 동문회장 4년을 거쳐 2020년 40여만 명의 동문들이 속해 있는 서울총동문회장을 우여곡절 속에 맡게 됐습니다. 서울총동문회장을 맡으면서 네 가지 공약을 했고, 이를 어느 정도 실천했습니다.


첫째, 전국총동문회와 서울총동문회의 회비를 참여하는 동문들에게 부담이 가지 않도록 적정하게 조정했고, 둘째, 동문회 회계의 연속성을 보장하고 동문회장이 바뀌어도 회계이월의 잡음이 없도록 법인통장을 만들어 처음부터 법인통장으로 일원화했으며, 셋째, 동문회 구성의 주축인 학과 동문회장님들의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 서울 행사를 상반기 1회 하반기 1회로 줄였으며, 넷째, 학과간의 교류활성화를 통해 동문들 간의 유대강화에 노력했고, 뚝섬 302호의 동문회 사무실을 개방해 동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제 임기를 두 달여를  남긴 시기에 저를 돌아보니 저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함께한 방송대와의 35년이란 인연이 저를 적극적이고 끈기 있게 변화를 시켰고, 저보다는 우리(방송대)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또한 학과동문회의 책임을 맡기 전까지는 방송대 일본학과를 다닌 것이 저 자신에 대한 위안이었다면, 학과동문회를 거쳐 서울총동문회에 대한 책임을 맡은 이제는 오랜 기간 함께한 방송대는 저와는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관계였던 것 같습니다. ‘내 인생을 바꾼 대학이 방송대’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있듯이 이제는 저에게도 ‘내 인생을 바꾼 대학’이 됐습니다.


처음 방송대에 발을 딛고 행정학과 1학년에 입학했던 1986년도에는 저 자신이 방송대를 다닌다는 말을 내놓고 하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방송대를 다녔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방송대에 관심을 갖도록 저도 모르게 주위에 홍보를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저와 35년이란 시간을 함께한 방송대라는 존재는 오종선이란 이름을 말할 때에 이제는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앞으로의 35년도 방송대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방송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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