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과 우연히 만났을 때 딱 두 가지 질문만으로 그에 대해 많은 걸 알아내고 싶다면 어떤 질문이 좋을까? ‘어디에서 태어났습니까?’와 ‘언제 태어났습니까?’란 질문을 하라고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말한다. 언제 태어났는지는 그가 살아온 시간의 경로에서 겪었던 삶의 굴곡과 애환을 통해 켜켜이 쌓인 삶의 퇴적층 정보를 알려준다.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는 그 사람의 생활방식에 대해 많은 정보를 준다. 시간과 공간은 ‘인생의 지문’을 만든다.


국가라고 다르지 않다. 국가의 지정학적 요인은 국가의 운명에 결정적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50여 개 국가만이 세계 지도에 표기됐다.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강대국에 포획돼 식민 통치 당하던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해 지금은 200여 개 국가가 지도에 표시돼 있다. 이 신생 독립국으로 출발한 수십 개의 나라 중에서 대만과 한국만이 선진 국가로 등극했다. 이전에 선진국이었다가 미끄러진 나라는 아르헨티나다.


1960년대에 자유 진영 국가의 인사가 모스크바를 방문하기는 무척 어려웠다. 당시 소련을 방문했던 오야 소이치(大宅壯一)는 귀국 후 기자회견에서 방문 소감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지구는 타원이다.’ 기하학에서 원은 중심이 하나이고, 타원은 중심이 두 개다. 그의 ‘타원론’은 당대의 국제정치 역학 구도가 소련과 미국을 각각 파워센터로 하는 양극체제라는 사실을 확인한 은유법이다.


오야 소이치는 공처(恐妻, 남편을 눌러 쥐여살게 하는 아내)란 신조어를 만든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평론가이자 반골의 저널리스트다. 그의 타원론에서 하나의 중심축은 미국의 동맹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안보 보장과 미국의 욕망에 대한 존중을 묶은 ‘유사 봉건주의’에 비견될 만하다.

 

 

국제질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 대선 주자들은
지구가 도는 데엔 관심 없고
오로지 발밑만 쳐다보며
서로 주먹질이다.
그야말로 정저지와(井底之蛙) 신세다.

 

제2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시대를 끝장냈다. 미국은 뉴햄프셔 주의 브레턴우즈(Bretton Woods)로 44개 동맹국을 불러 모아 이런 약속을 했다. 해상 수송로에서 해적과 마주치면 걱정하지 마라. 미국 해군이 처리한다. 소련이 당신 나라 정부를 축출하려고 해도 걱정하지 마라. 미국 의회가 재건에 필요한 기금과 마셜 플랜으로 도와주겠다. 산업의 동력에 필요한 에너지도 걱정하지 마라. 미국이 세계 어디서든 석탄과 석유를 수입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 생산된 상품을 내다 파는 문제도 걱정하지 마라. 미국 시장이 문을 활짝 열고 당신 나라의 수출품을 사들인다. 비록 무역 적자가 쌓이더라도 말이다. 미국의 안전보장을 신뢰할 수 없다고 미심쩍어할 필요도 없다. 미국은 소련과의 전투에 동참해서 신뢰할 만한 나라임을 입증하겠다. 그리하여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게 됐다.


1990년대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소비에트연방(Soviet Union)의 해체를 보면서 많은 동맹국은 자유주의의 승리에 자부심을 느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가 진화의 종착점에 다다랐다는 의미로 ‘역사의 종언’을 말했다.


국가의 생존과 힘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요인은 네 가지다. 첫째, 쓸모 있는 토지와 방어 가능한 국경을 갖춘 자국 영토. 둘째, 안정적인 식량 공급. 셋째, 지속 가능한 인구 구조. 넷째, 산업과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에 대한 안정적인 접근 등이다.


이 네 가지 조건 가운데 에너지 문제로 중동 산유국에 매달리던 미국이 셰일혁명으로 아쉬울 게 없는 처지가 됐다. 셰일가스와 오일로 미국의 에너지 생산량이 늘고, 효율성이 지속적으로 개선되면서 미국 내의 에너지 수요는 줄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원유 수입국 자리를 중국에 넘겼다. 게다가 세계 최고의 지정학적 위치, 식량 공급의 안정성, 적절한 인구 규모와 구조를 갖추고 있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미국은 미국 예외주의, 일방주의, 보호주의 및 고립주의를 강조하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통해 동맹의 유지와 관리에 회의적인 태도를 노골화했다.


미국 없는 세계질서란 어떤 모습일까? 최근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정치는 쿼드(Quad), 안전보장은 오커스(Akus), 경제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통해 미국 편에 서는 나라끼리 새로 뭉치고 있다.


세계를 보는 미국의 관점은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는 세계에 대해 반사적으로 반감을 보이는 강경 세력, 미국의 세계 개입에 반사적으로 반감을 갖는 강경한 좌익세력, 세계를 그저 피곤한 대상으로 여기는 세력 등과 스펙트럼을 이룬다. 한마디로 미국인 대부분은 세계는 더 이상 미국의 문제가 아니며,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가 미국에 해를 끼치지 못하게 미국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국제질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 대선 주자들은 지구가 도는 데엔 관심 없고 오로지 발밑만 쳐다보며 서로 주먹질이다. 그야말로 정저지와(井底之蛙) 신세다. 국민만 불쌍하고 불안하다. 어디에서, 언제 태어나는지는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다.

 

방송대 교수·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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