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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독일에서 피부과 전문의 과정을 밟던 시절 이야기이니 반세기가 훌쩍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스승에게서 들었던 가르침이 마치 바로 어제 들은 양 잊히지를 않습니다. 그만큼 인생의 지침으로 남은 것입니다.

수련의로서 가장 긴장하는 순간은, 주임교수를 모시고 일주일에 한 번 필자가 담당하는 병동의 입원 환자 30여 명에 대한 ‘점검 회진’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름하여 주임교수의 ‘병동 회진’입니다.

병동 회진 때는 병동장이 각 환자가 어떤 상태에서 무슨 진단명으로 입원하게 됐는지, 입원 후에는 어떤 치료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환자 병상 곁에서 상세하게 보고를 해야 합니다. 그러자니 보고하는 입장에서는 환자의 성명과 연령 및 체중을 비롯해 건강 관련 정보를 모두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각종 방사선 검사 결과는 물론 다양한 혈액 검사 결과도 꿰차야 할 뿐만 아니라, 환자에게 어떤 약을 어떤 치료 목적으로 투약하고 있는지도 ‘바싹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필자가 입원 환자에 대해 보고하는데, 주임교수께서 짧게 말씀하셨습니다. “Extra murum.” 번역하면 ‘밖에서’라는 뜻입니다. 나중에 병실 밖에서 얘기를 듣겠다는 것입니다. 환자 앞에서는 세세하게 논의하지 말자는 뜻이기도 해서 필자가 잔뜩 긴장한 것은 당연했습니다. 교수 회진의 경우는 모든 수련의가 ‘큰 무리’를 이루어 동참하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습니다.

잠시 후, 필자를 포함한 전공의들이 복도 조용한 구석에 모여 섰습니다.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네.” 주임교수는 이렇게 운을 뗐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코끼리 사냥하는 장면을 보면, 사냥꾼이 총을 연발해 코끼리를 눕히곤 하는데, 이는 무자비한 동물 살상일세. 그런데 만약 코끼리를 새총[鳥銃]으로, 그것도 ‘고무줄 새총’으로 눕힌다면, 그것은 ‘살생’ 문제를 떠나 사냥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네. 그런 맥락에서 의사는 환자에게 최소한의 약을 투입하면서도 최상의 임상 결과가 나오도록 항시 노력해야 하네.”

프랑크푸르트대 교수를 거쳐 연세대의료원 기획조정실장, 아주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한국의학교육학회장 등을 역임했다.요컨대 환자에게 약을 필요 이상 강하게 쓰는 것은 ‘치료 예술’이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스승의 ‘현장 가르침’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는 비단 의사의 약 처방에만 국한된 얘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격한 몸싸움과 그에 못지않은 고성이 오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도할 수 있습니다. 지켜보기 참담하고 민망하기 그지없습니다. 거기에다 국회의사당에서의 의사 진행 현장도 다르지 않습니다. 의원들이 언성을 높이며 서로 호통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볼 때면, 우리 사회가 조속히 극복해야 할 난제라는 생각이 들면서, 오래전 스승의 ‘코끼리 사냥’에 얽힌 지혜를 떠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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