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호모 스투디엔스 5. 강대중 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


#평생교육이 주목받고 있다. 국가평생진흥원뿐만 아니라 대학, 지자체 등에서도 앞다퉈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평생교육을 지향한다지만, 프로그램은 조금씩 다르다. 지자체는 실버세대를 대상으로 한 꽃꽂이, 문해력 프로그램을 한다면, 대학은 AI 등 재직자 전문 교육으로 차별화하는 추세다. 프로그램 용어는 모두 평생교육인데, 그 범위가 모호하다.

 

지자체가 시행하는 평생교육에는 꽃꽂이 같은 취미 위주 과목이 많아요. 과연 이게 평생교육 범주에 들어가는 건가요?
우리 사회에서 지자체를 중심으로 한 평생교육 프로그램들이 취미나 교양 중심으로 확장된 것에 대한 제 개인적인 진단은 바로 우리 학교 교육이 굉장히 결핍돼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저 개인만 봐도 학교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지만, 악기 하나 제대로 다루는 걸 배운 적이 없어요. 미술을 배우긴 했지만, 삶을 표현하는 미술을 해본 적이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정규적인 학교 과정 안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럴 거예요.

 

맞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결핍과는 무슨 연관인가요?
한국인의 삶에서 가장 결핍된 것, 저는 그걸 자기표현이라고 봐요. 우리나라에 노래방이 참 많아요. 이렇게 많은 나라가 또 있을까요? 우리가 가무를 즐기는 민족이라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에 노래방이 우리의 결핍을 채우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급속한 산업화와 산업구조에 적합한 인력을 배출하기 위한 학교, 그리고 사람을 선별해내는 평가까지…. 지배엘리트로 선별되든, 육체노동자로 선별되든 자기표현의 결핍이 존재합니다. 그러니 여유가 생기면 자기표현을 할 길을 찾는 거고요.

 

노래방은 결국 자기표현을 하는, 결핍을 충족하는 곳이라는 말씀이시군요.
노래방에 가서 노래라도 불러야 하는 거죠. 지자체 평생교육 프로그램 대다수가 중산층을 대상으로 취미, 교양 강좌를 구성합니다. 시간 있는 분들, 돈이 없어도 오실 수 있도록요. 거기서 자기표현을 배워요. 만족도요? 엄청 높아요. 정말 행복해하세요. 직접선거를 하는 지자체장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표를 모으기 좋은 프로그램인가요? 주민들 만족도가 높은 프로그램인데, 돈도 많이 안 들거든요. 결핍된 거예요. 평생교육이 뭐냐, 누군가는 꽃꽂이나 하는 거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정말 안 돼요. 한국인에게 가장 결핍된 것인 자기표현, 평생교육이 그 결핍을 지금 채우고 있는 겁니다. 꽃꽂이는 그것이 드러난 일부 현상일 뿐이지요.

 

다른 나라들은 어떤가요?
어떤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동네 어귀나 강 둔치에 모여 춤을 추기도 하죠. 평일 저녁에 다 같이 모여 노래를 틀고 춤추며 놀아요.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의 학교를 가보면, 우리나라처럼 공부도 엄청나게 시키지만, 예체능 교육도 굉장히 많이 해요. 일본을 예로 들어 볼게요. 일본은 여전히 입시 문제가 크죠. 대학도 서열화돼 있고, 사설 학원들도 많아요. 그런데 일본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예체능 교육을 엄청나게 하고 있어요, 클럽 활동도 장려하고요. 체육이나 음악, 미술을 주로 하죠. 그런데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는 체육 시간에 줄넘기한다고 하면 부모들이 아이들을 줄넘기 학원에 보내요.

 

체육 활동조차도 시험으로 인식하는 거죠.
우리 학교에서는 이런 자기표현 활동들이 없잖아요. 입시에 연결되지 않으면 관심이 없고, 그래서 우리 삶에서 문화적으로 결핍된 것이 평생교육 장이 열리면서 드디어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런데 꽃꽂이밖에 안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과연 한국인을 이해하고 말하는 걸까요? 평생교육에서 직업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요. 당연히 직업 교육은 필요하죠. 학교에서 열심히 가르쳐도, 사회 변화 속도가 빠르니까요. 그런데 직업 교육은 국가가 책임지면서, 취미 교육은 개인이 알아서 해라? 이것도 어폐 아닌가요? 지자체에서 취미 교육하는 걸 비난해야 할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평생교육이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 삶을 길러내는 것이라면,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한 것 아닐까 되묻고 싶습니다.

 

평생교육이라고 많이 이야기하는데, 정확한 개념이 뭔가요?
평생교육 개념에 관해서만 이야기해도 책 한 권 분량이 나올걸요?(웃음) 평생교육 개념을 이념적인 걸로 생각해보면, 동양에서는 부처님 때부터 이미 존재했어요. 부처님께서 인생을 사는 목적이 성불하는 것이고, 모두가 부처가 돼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어릴 때 공부한 것만으로는 안 되고, 평생 공부해야 하는 건데요, 득도한다거나, 깨닫고 삶에서 실천하는 그런 공부는 평생 해야 한다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었으니까요.

 

그런 전통으로는 유학도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고려 시대에 받아들인 유학도 우리나라 평생교육의 전통으로 꼽을 수 있죠. 공자님도 공부를 때때로 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공부란 건 계속해야 하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살아가는 것과 공부는 분리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사상적이나 이념적으로만 생각해보면, 동아시아 전통에서 굳이 공자님, 부처님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았어요.

 

하지만 서양은 달라요.
근대에 이르면서 서양에서는 학교 제도가 우리보다 먼저 발전했죠. 근대국가가 성립하면서 공교육 제도가 발전했고, 성인을 위한 교육에 대한 실천과 국가의 관심도 우리보다 빨랐습니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 근대식 학교와 교육제도가 생겨났지만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자생적인교육 제도를 갖추려는 시도는 무산됩니다. 일본 식민 정부는 한국인을 황국신민화, 즉 일본 황제의 백성으로 만드는 교육을 했습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선의로는 근대문명, 이른바 근대에 알맞은 사고방식을 한국인에게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말에 서울 안에도 개별 가정에 상하수도가 없었잖아요? 당시 대소변을 처리하는 것이 근대 보건의 관점에서 보면 기절할 일이죠. 이런 것들을 개선하려는 교육을 했어요. 이른바 계몽이 필요했고, 그것이 아이든 어른이든 빨리해야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야 일본으로서는 식민지 경영에 유리했으니까요. 일제 강점기에 성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있었지만, 지배하기 편하기 위해서 한 것이죠. 우리는 우리대로 민족운동의 한 흐름을 만든 학교 설립 운동과 야학의 전통이 있습니다. 개화기부터 있었고, 해방 이후에는 문맹 퇴치를 기치로 걸었었죠.

 

실제로 평생교육이라는 단어와 개념이 한국 사회에서는 언제 들어왔나요?
한국에 평생교육이 들어온 건 정책적으로만 생각하면 1970년대입니다. 유네스코에서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에 서구사회가 가지고 있던 교육의 여러 문제를 지적했어요. 특히 학교 체제로 사회의 불평등 문제에 대응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탈학교사회 담론도 출현했고요. 서구 사회가 정보화 사회로 진행하던 시기였는데, 이른바 탈산업사회, 즉 서비스 중심으로 산업구조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 무렵 유네스코는 1972년 에드가 포레가 위원장이 되어 「존재를 위한 학습」이라는 보고서를 냅니다. 평생교육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보고서입니다. 이 보고서를 통해 한국에 평생교육 개념이 들어왔습니다.

 

학교가 평등을 실현하는 곳이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됐다는 거네요.
근대화 과정에서 생긴 학교가 평등을 실현하는 도구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거 같다는 의문이 제기된 거죠. 이른바 신마르크스주의자로 불리던 경제학자들이 학교 교육 체제를 연구해 보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학교가 평등을 실현하는 거 같은데, 실상은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학교 교육으로 평등이 실현되겠느냐는 비판을 한 겁니다.

 

1970년대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논의가 있었나요?
학교교육이 확대하는 때였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탈학교론은 1980년대에 소개됩니다. 1970년대에는 유네스코의 평생교육 논의가 소개됐어요. 교육이란 것이 학교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평생에 걸쳐 있다는 것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에 대비하려면 평생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유네스코의 정책보고서들이 한국유네스코위원회를 통해 보급됐어요. 영어로 라이프 롱 에듀케이션인데, 이걸 한국어로 평생교육으로 번역한 거죠. 같은 외래어인데 일본에서는 생애교육으로, 중국에서는 종신교육으로 번역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1980년 제5공화국 헌법을 만들 때 평생교육이 포함됩니다. 평생교육 연구자들이 헌법 조문 작성에 참여하면서, 평생교육이 헌법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을 한 거죠. 그래서 현재 헌법 제31조 5항에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이 생겼습니다.

 

헌법에 평생교육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건 금시초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성문헌법이 있는 나라죠. 그 헌법에 평생교육 진흥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한 거예요. 헌법에 평생교육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한 나라가 또 있을까요? 한편에서는 평생교육이 뭐냐, 학교교육과의 관계는 어떤 거냐는 논쟁도 있었어요. 교육이라고 하면 학교에서 이뤄지는 거라고 대부분 사람이 생각하니까요.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상황도 평생교육은 학교교육에 비해서 매우 적습니다. 그러니 헌법에 포함은 됐지만 오랫동안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어요.

 

하지만 코로나19로 평생교육이 더욱 주목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가 평생교육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어서죠. 코로나19로 인해 인류가 이제껏 살아오던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온라인 비대면 소통, 재택근무, 재택수업이 이른바 뉴 노멀이 됐죠. 교육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꾸자고 평생교육을 제기한 것이 포레 보고서입니다. 1996년 후속 보고서로 들로어 보고서라고도 하는 「학습, 감춰진 보물」이 나왔습니다. 올해 11월에 「교육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이라는 새 보고서가 나왔어요. 지난 50년 동안 일관된 논의 흐름은 교육은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사회 전역에서 일어나는 배움의 삶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로 수렴됩니다. 코로나19로 학교 문이 닫히면서 이 생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봅니다.

 

학습 패러다임을 학교 중심에서 사회 전역으로 확장하는 것이군요
학교 중심 교육에서 학습사회의 평생교육으로 패러다임과 사고체계를 바꾸고 그에 맞춰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거죠. 이런 개념이 만들어지고 실천적인 슬로건이 나온 지 50년인데, 문제는 잘 안 변한다는 거예요. 우리나라만 해도 아직 평생교육, 평생학습 중심의 교육 전환을 여전히 낯설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죠.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실제 충분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50년을 지내왔다는 것이죠.

 

서구 국가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서구 국가들은 기술 발전도 주도하고 있고, 사회 변화의 흐름도 점점 빨라지는 것 같아요. 사회 전환을 위해 나라마다 경쟁하는 상황이라고 봐요. 역사적으로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국가에서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하면서 학교 제도를 만들었죠. 특정 연령대의 모든 사람이 다녀야 하고, 자격증 있는 교사가 가르치도록 했죠. 국가가 지역, 구역마다 교육청을 둬서 학교를 관리합니다. 미국,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도입됐죠. 유럽에서 성립한 학교 체제가 세계적으로 퍼졌습니다. 평생교육 중심의 학습사회 패러다임으로 전환한다면, 어떤 관리 체제가 생길까요? 과거에는 대학까지 나오면 다 배웠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대학 졸업하고 몇 년 못 가서 지식의 갱신이 필요합니다. 학교교육 이후에 사람들이 배우는 걸 어떤 식으로 사회와 국가가 지원하고 책임져야 하는지, 나라별로 여러 아이디어가 나오고 경쟁하고 있어요. 우리도 지금 국가적으로 노력할 때이고요. 이번에도 뒤처지면 또 유럽이 앞서갈 가능성이 크죠. 유럽이 고등교육제도는 물론 근대 초·중등학교제도도 가장 먼저 만든 저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우리나라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네요.
우리도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진작 제기됐고, 1990년대에 5?31 교육개혁 때 ‘평생학습사회’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기도 했어요. 그때 평생교육 관련 제도가 좀 도입됐죠. 당시에 교육기본법이 아니라 평생학습법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어요. 미래사회의 교육을 대비한 것이었죠. 하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평생교육법은 교육기본법의 하위법령이 되었어요. 사회 변화가 가속화하면서 학교 중심 체제로만은 안 되고, 평생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는 계속됐습니다. 코로나19가 오기 전에도 그랬어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교육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두고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키워드는 평생학습이었습니다.

 

학교 환경을 바꾸자, 소프트웨어를 바꾸자 이런 지엽적인 것들이 아니라요.
그렇습니다. 학령인구 감소, 대학 구조조정 이야기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어요. 그때 논의된 이야기 중에 대학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에 상당수 대학은 평생교육기관으로 변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미 제기됐었어요. 학령기 대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기관의 역할을 벗어나서, 성인 대상으로 평생 다닐 수 있는 대학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죠. 이미 故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그 상황을 재소환했습니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학교가 다 문을 닫았어요. 학교 밖에서 하는 게 평생교육이라고 했는데, 학교가 없어도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계속되는 거예요. 심지어 학교 밖에서 하니 더 좋다고 하는 학생들도 있었고요. 사실 피해 보는 취약계층은 존재하죠. 학교 문을 닫으면 확실히 피해가 커요. 반면에 학교가 문을 닫으니 훨씬 더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며 만족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온라인으로 해도 좋겠다는 거죠.

 

학교가 문을 닫았는데, 왜 만족도가 높아지나요?
온라인으로 하니 원하는 공부를 자신이 편한 시간에 할 수 있다는 점이 일단 있죠. 학교 수업은 같은 시간에 한 군데 모여서 했는데, 그게 사실 효율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물론 학교는 여러 기능을 수행합니다. 단지 지식의 전달이라는 기능만으로 국한한다면, 학교가 과연 그렇게 효과적이었던 곳인가 하는 데 의문이 제기된 거죠. 기술 발전을 활용하면, 온라인을 활용하는 것도 꽤 괜찮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게다가 훌륭한 지식을 학교보다 더 잘 전달해주는 매체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됐고요. 

 

그래서 학교를 없애라?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할 것은 아니죠. 학교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문을 꼭 열고 수행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급식이 그런 예죠. 다만, 지식전달 기능만 놓고 보자면, 코로나19로 다양한 방식의 교수학습방법이 비대면으로도 가능하단 것을 확인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던질수록 평생교육 시대, 평생학습사회로 나가는 것 아닐까요? 학교가 아니라 어디서나 배울 수 있게 돼야 하고, 학교도 그런 배우는 곳 중 하나일 뿐, 유일한 곳이 돼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을 자각하는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보는 거고요. 여기에는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자는 의도도 있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 중 하나로 꼽힙니다.
UN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는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했죠. 한국은 고령화의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저는 이걸 ‘소리 없는 장수혁명’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전과 비교해 보면 정말 더 오래, 더 건강하게, 더 잘 살게 되었어요. 이른바 장수혁명이 일어난 겁니다. 그런데 고령화와 저출산이 동시 진행되면서 장수혁명을 지방 인구 소멸로만 이야기하는 건 문제예요. 

 

2010년대 이후 출생한 아이들 절반 이상이 100세까지 산다는 연구도 있죠.
건강하게 사는 기간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거예요. 이걸 교육적인 측면에서 들여다봅시다. 산업사회의 표준모델로 보면, 20세까지 교육을 받고, 60세까지 40년 일하고, 은퇴해서 10년 노후를 보내다 병들어 죽습니다. 20대에 직장에 들어가면 퇴직할 때까지 한 직장에서 보내요. 그런데 이런 전통이 외환위기 사태 이후에 붕괴했어요. 지금은 스무 살 때 들어간 직장에서 예순 살까지 다닐 수 없는 사회 구조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60세까지 일하면 100세까지 40년을 더 살아야 합니다. 어쩌면 50대에 학교를 한 번 더 다녀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건강하게 30년 더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 들 때니까요. 그래서 평생교육이 더 중요해지는 겁니다.

 

고령사회 이야기가 나온 김에 평생교육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실버세대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질문이 좀 고쳐져야 한다고 봐요. 실버세대를 몇 살부터로 정의할지는 우리나라도, 세계적으로도 논쟁적인 부문이거든요. 머리가 하얘지면 실버세대 아닐까? 생물학적으로는 50세 정도면 머리가 하얘지는데, 50대들을 불러놓고 ‘당신들이 실버세대’라고 하면 인정할까요? 아닐걸요.(웃음) 기분 좋아할 사람이 거의 없겠죠. 평균수명이 60세였던 시대에는 실버세대를 50대라고 인정했겠지만요.

 

그럼 실버세대는 몇 살부터인가요?
우리 사회에서 실버세대를, 노인을 몇 살부터 규정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가령 60대가 되면 자녀가 결혼하고, 손자녀가 태어나고 말 배워서 할머니, 할아버지 이렇게 부르면 자기 스스로가 노인이 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어요. 지금은 손자녀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어도 자신을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실버세대를 누구로 볼 것인가에 대해 사회적·정책적으로 예산 확보를 위해서라도 이런 논의를 하긴 하지만, 실제로 당사자인 중고령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거죠. 이건 경제적으로 중산층, 상류층으로 갈수록 더 심해요. 사회적으로 노인, 실버세대로 호명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더 세다는 말입니다.

 

공공기관에서 실버세대를 지칭한 사례가 있을 거 같은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 시절에 복지재단인 ‘50플러스재단’을 만들었어요. 50세가 넘은 사람들을 위한 평생학습을 복지 차원에서 지원한 건데요. 이들의 평생학습에 대한 기회를 부여한 겁니다. 서울시에서 정책적으로 실버세대를 말하기 시작한 거죠. 이건 국가 차원에서도 주목하는 부분입니다. 현재 경제, 사회 구조가 50대가 되면 대부분 이직이나 전직을 하게 돼 있어요. 고용 불안이 심각한 수준이지만, 특별히 베이비붐 세대의 경우 50대 중반, 후반이 되면서 이직과 전직 문제가 현실이 됐죠. 그다음이 X세대죠. 소비문화를 가졌던 세대인데, 이들 역시 50대가 되면 직장을 옮기거나 창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 됐잖아요. 그러니까 50대라고 하는 시점이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생애에서 큰 전환을 불가피하게 겪어야 하는 때가 된 것 같아요. 그럼 50대에게 어떤 교육의 기회를 줄 것인가, 이것 역시 국가적·사회적·개인적으로 중요한 과제가 된 거죠. 하지만 누가 이 교육에 참여할 것인가, 50대를 위한 교육을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국가적 차원에서 정리가 안 된 상황이에요.

 

평생학습이 성인 학습으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50대 이후의 연령대가 겪는 전환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것이란 지적이군요.
그렇죠. 50대 이후 연령대에서 평생교육 기회를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국가적 과제라는 겁니다. 그 연령대 당사자들은 국가가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얻어서, 자기 생애 전환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부족해요. 개인 삶의 생애 주기나 경제 일자리 구조 측면에서 보면, 50대 전환기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선명하고, 그래서 이 시기에 어떤 평생학습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큰 과제란 이야기죠.

 

급격한 기술 발달이 이직?전직 시기를 가속화하기도 합니다.
직장생활 하는 40년 동안 이직과 전직은 이제 일반화됐어요. 개인적인 불만족도 있겠지만, 급격한 기술 변화로 산업구조가 바뀌니 어쩔 수 없이 그런 경우도 많죠. 제가 올해로 딱 50세인데요. 제 또래 중에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동차 공장에 취업한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스무 살에 취직했으면 내연기관 자동차를 주로 만들어왔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수소차와 전기차를 만들어야 해요. 심지어 자동차에 컴퓨터도 들어갑니다. 이제 자동차가 동력장치인지 전자장치인지조차 구분이 모호해진 겁니다. 직업 세계에서 한 사람의 직업 생활 주기 중에 이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인 겁니다. 자신의 기술 수준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려면 엄청나게 공부해야 한다는 거죠. 이 사람이 30년 전에 취업할 때 수소차에 관한 이야기조차 없었을 건데 말이죠. 손을 쓰는 노동자만이 아니에요. 제 또래에 의대에 갔던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 사람이 의대에서 로봇 수술을 배운 적이 없어요. 그런데 지금은 로봇 없이는 수술할 수 없는 경우가 많죠. 의사도 끊임없이 배우고 있는 거예요. 예전에는 학교에서 배운 걸로 퇴직할 때까지 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해졌다는 겁니다.

 

50대라고 하지만 하나의 기준으로 묶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렇습니다. 50대는 계층적으로도 봐도 학력 배경으로도 봐도 매우 다양해요. 그 시기에 대학 졸업자 비율이 30% 정도일 겁니다. 여전히 대학교육을 이수하지 못한 분들이 많죠. 또 디지털 시대 전환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치 않은 비율도 상당히 높을 거예요. 어떤 학습이 필요할까요? 사람에 따라, 직업에 따라 다양하겠죠. 거기에 더해서 50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개인의 요구까지 다양할 거예요. 이런 다양성을 고려하면, 국가적으로도 다양성에 부응하는 평생교육적인 서비스와 정책이 필요한데, 여전히 그 부분은 우리 사회에서 논의 중입니다. 물론 파편적으로 여기저기 지역에서 다양한 실천 사례들이 나타나고는 있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성인의 평생학습은, 중장년의 재취업?직업 교육과는 어떤 차별성을 가지나요?
재취업, 직업 교육을 실제로 무엇인가요? 말로는 재취업을 위한 교육이고, 직업과 관련된 역량을 길러주는 교육인데, 실제 그 교육의 내용이 뭘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가령 경력이 단절된 50대 여성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30대까지 직장을 다니다가, 출산하고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나니 50대가 된 거예요. 자, 이분이 재취업하고 싶다, 다시 사회생활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면 재취업 교육을 받으면 그분이 그 교육 받은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쉽지 않아요. 경력 단절 여성이 국가에서 제공하는 컴퓨터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따면, 컴퓨터 관련 업종에 취업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볼게요. 그러면 그냥 ‘당신이 원하는 걸 배우세요’라고 하면 그게 재취업이랑 연결이 되느냐는 질문인데요. 전혀 다른 거죠. 분명한 건 이분들에게 필요로 하는 이른바 삶의 기술은 분명 있는 거 같아요. 낯선 사람과 만나 의사소통할 수 있는 역량 같은 것들이죠. 이것이 평생학습 참여를 통해 상당히 자연스럽게 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일자리의 미스매치에 대한 지적이시군요.
대학교육도 마찬가지거든요. 대학에서 받는 교육과 기업에서 원하는 역량에 대한 격차가 크다 보니, 직업 미스매치가 심하죠. 이건 사실 어느 세대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봐요. 그런데 50대 재취업 직업 교육 내용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이분들에게 삶의 기술을 다시금 확인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가정에서 오랜 기간 아이를 키우면서 제한된 인간관계 폭을 갖고 살아온 분들이라면, 이분들이 직업을 가지려 한다면, 분명 낯선 사람과 만나 의사소통할 수 있는 역량을 확인하고 학습할 기회가 필요한 것이죠. 저는 이런 삶의 기술이 평생학습 참여를 통해 상당히 자연스럽게 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생교육에서 재취업을 위한 근본적인 역량을 길러줄 수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렇습니다. 평생교육 기관에 와서 낯선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교육의 내용도 익히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길러낼 수 있는 거죠. 재취업, 직업 교육이라는 게 아주 좁은 의미에서 직업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교육 또는 직장 생활을 하는 데 필요로 하는, 즉각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라는 협소한 의미라면요. 평생학습이란 것은 50대에서 재취업, 직업 교육이라는 좁은 의미가 아니라 더 넓게 보자는 거예요. 이 사람이 새로운 인생의 단계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들을 좀 더 폭넓게 준비시켜주는 게 필요하다고 보는 거죠. 함께 학습하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직, 전직에 실패해 어쩔 수 없이 창업의 길로 몰리는 50대도 많습니다.
사실 창업하는 50대 분들이 정말 많죠. 전 혼자 하지 말고 같이 창업을 고민하고 준비할 분들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20~30대에 창업하는 분 중에도 홀로 모든 것들을 해결하면서 창업하는 분들은 거의 없잖아요. 50대에 창업하는 분들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사실상 50대의 창업은 혼자서, 외롭게 하는 것처럼 보는 시각이 대다수예요. 이분이 어디서 동업자를 만나야 할까요? 같은 뜻을 지닌 이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똑같은 기술 교육을 받은 사람들끼리 만나야 할까요? 아니에요. 소규모 자영업이라고 해도 서로 다른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야 서로 보완하고 시너지도 생기잖아요. 같은 직업 교육을 받는 옆자리 사람과 창업을 하기보다는, 더 폭넓게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이 있어야 해요. 저는 이것이 평생학습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다고 보는 거고요. 그런 교육이 3개월 단기 재취업, 직업 교육 프로그램으로 원활하게 잘 될까요? 물론 그런 프로그램도 필요하죠. 다만, 각자 개인을 생각한다면, 훨씬 더 다양한 교육에 장기간 참여하는 기회와 학습할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평생교육과 평생직업훈련교육이 함께 가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나왔습니다. 하지만 관련 부처가 교육부-고용노동부로 나뉘어 있어요. 연계가 절실한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래전부터 논의됐던 문제죠. 특히 우리나라 고용노동부는 노사관계 업무에 치중하다 보니, 실업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실업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문제, 국가가 사회 안전망을 갖추고, 실업자를 재취업하게 하는 문제에 역량을 집중해왔어요. 재취업훈련이 고용노동부의 중요 사업이 된 거죠. 반면 교육부 안에서도 전문대들이 평생직업교육기관이 되겠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는데요, 학령기 학생이 줄어들면서 앞으로도 이런 요구는 더 거세질 거라고 봅니다. 고용노동부와 교육부가 이 문제를 가지고 경쟁하고 있죠. 그런데 고용노동부 산하에도 대학이 있어요. 기술 중심 대학인 한국폴리텍대학인데요, 고용노동부가 공격적으로 폴리텍대학을 육성했어요. 교육부는 당연히 고등교육기관인 전문대학을 관리하고 있죠. 이 두 시스템이 경쟁하는 시기에, 경쟁이 중복되지 않도록 국가가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봅니다.

 

교육부와 고용노동부의 통합은 어려울까요?
이상적으로라야 말할 수 있겠지만, 쉽지는 않을 거예요. 일단 전문대는 사립대가 절대다수이고, 폴리텍대학은 국공립이죠. 디지털 관련 교육이 앞으로 노동시장에서 중요한데, 폴리텍대학에서 잘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하려고 해요. 포괄적인 기술 교육 체제를 갖추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대학을 산하에 가진 정부 부처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산업자원부는 한전공대를 만들었어요. KAIST 같은 대학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에 있습니다. 여러 부처에서 교육 관련 업무를 하는 거예요. 고용노동부와 교육부만의 문제가 아니란 이야깁니다. 사회 전체가 새로운 단계로 가고 있는 상황이에요. 전통적인 학교 중심 교육부, 교육청 체제가 유지될까요? 고용노동부도, 산업자원부도 대학을 만들어 학위를 주고, 학위랑 관계없는 민간 기업에서도 교육과 학위에 대해서는 훨씬 더 창의적인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데 말이죠. 종합적으로 보면, 고용노동부와 교육부의 연계와 협력은 물론 필요하지만, 좀 더 큰 틀에서 우리 사회가 교육을 어떤 틀에서 관리할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쉽지 않은 문제죠.

 

실버세대 나이를 논하다 보니 평생교육 문제가 생각보다 삶에 깊숙이 연관돼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실버세대의 교육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아직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요. 대개 복지관, 특히 노인복지관을 중심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있긴 하죠. 그런데 얼마나 많은 노인이 복지관에서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지, 아직 국가적인 정확한 통계조차도 없을 겁니다. 사회적으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거죠. 보세요. 교육청에서는 학교를 관리합니다.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지, 새로운 프로그램은 뭐가 필요한지 연구해서 무얼 더 제공해야 할지도 도출해내죠. 심지어 국가가 국어, 영어, 수학은 몇 시간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까지 정해줘요. 평생교육 관련 통계 실태는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전문은 추후 발간될 단행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