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공부에 중독된 사람들]


KNOU위클리를 위해 남패밀리의 둘째, 막내, 다섯째가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왼쪽이 남미영 학우, 가운데가 남덕환 학우, 오른쪽이 남미희 학우다. 사진 제공=남미영

유행가 가사에도 있지 않던가!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지난 10월 22일(화) 오후 4시, 안산시학습관에서 남덕환·남미영 학우를 만났을 때, 이들 ‘방송대 안산 남패밀리’에게서 ‘무조건 방송대 사랑’의 열정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6남매의 막내인 남덕환 학우(42세·회사원)가 2010년에 자기계발을 위해 청소년교육과에 입학하면서 이들 가족은 모든 것이 변화했다. 남덕환 학우가 안산시학습관에서 활동하던 중 대동제나 체육대회, 하계수련회, 일일주점 등에 가초청하면 처음엔 마지못해 참여하던 가족들이었다. 그러나 다른 방송대 학우들의 활동, 그리고 변화해 가는 막내의 모습을 보면서 이들은 점차 마음의 문을 열었고, 지역 학우들과 끈끈한 유대를 맺기 시작했다.
유대는 단순한 인간관계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선택’으로 나아가게 했다. 막내의 권유로 넷째인 남미영 학우(48세·자영업)가 2011년 청소년교육과에 입학했다. 남매가 방송대를 다니자 파급효과가 이어졌다. 2013년에 둘째인 남미라 동문(53세·자영업)은 경영학과를, 다섯째인 남미희 학우(45세·주부)는 청소년교육과를 각기 선택했다. 남미영 학우는 “큰언니에게도 방송대 입학을 계속 권유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안산 남패밀리’의 중심에는 남덕환, 남미영 학우가 서 있다. 두 사람 모두 ‘중독된 사람들’이다. 둘 다 청소년교육과를 졸업하고, 함께 법학과에 입학해 공부하고 있다. 덕환 학우가 2012년 안산시학습관 청소년교육과 2대 회장(대표), 2013년 안산시학습관 22대 학생회장을 지냈고, 미영 학우가 이어 2013년 안산시학습관 청소년교육과 3대 회장(대표), 2014년 안산시학습관 23대 학생회장 직을 넘겨 받았다. 덕환 학우는 현재 안산시흥 총동문회 대외협력국장을, 미영 학우는 안산시흥 총동문회 수석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덕환 학우나 미영 학우는 “가족이 선후배다 보니, 스터디 및 시험 등 학교생활을 하는 데 서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 좋았다. 또 서로 의지하면서 공부했기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고픈 마음도 이겨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가족이 함께 방송대를 다니다보니 과제를 할 때나, 시험공부 할 때 ‘가족행사’ 스케줄을 따로 잡지 않아도 되는 건 부가적인 혜택이다.
덕환 학우는 집-회사밖에 모르고 살았다. 그런 그가 학과 대표, 안산시학습관 학생회장을 맡아 척척 해나가는 모습이 누나들에게 자극을 줬다. 장애 진단까지 받았던 미영 학우도 공부와 학교생활을 통해 강단 있게 변화했다. 무엇보다 다른 방송대 학우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배’로 바뀌었다.

“우리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다. 길가다 쉽게 마주치는 그런 사람인 우리가 방송대 공부에 적응했고, 학과 일이나 동문회 일까지 맡아 할 정도로 변했다. 방송대 선택 이전과 이후는 180도 다른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외형적으로는 변화가 없어 보일지라도, 우리 내면의 변화는 아주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안산 지역의 더 많은 이들에게 ‘방송대’를 알리고, 입학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방송대를 몰랐다면, 삶이 무척 단조롭고 팍팍했을 것이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둘째와 다섯째는 10월 22일 인터뷰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남패밀리’의 덕환, 미영 학우와 함께 방송대를 선택한 이유, 가족들이 함께 공부하는 것의 의미, 지역에서 바라보는 방송대, 학습관 활동 등에 관해 들었다.


남미영 학우님 가족을 보면 자연스레 ‘방송대 사람들’ 혹은 ‘방송대 가족’의 친밀함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현재 1남5녀 남매 중에 네 분이 ‘방송대 사람들’이 됐습니다. 방송대와 이어진 이 인연의 계기는 무엇인가요?

덕환: 계기는 그냥 뭐… 공부를 하려고요. 그때 저 같은 경우는, 사회복지사 자격증 따고 싶어서 방송대를 들어갔어요. 그 당시에는 사회복지 관련 자격증은 따로 딸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따로 연계해서 해야 했어요. 청소년교육과가 첫 학과입니다.

미영: 그 당시에는 없었죠. 사회복지학과가.

덕환: 제 생각에는 청소년교육과를 들어가는 게 사회복지 자격증을 따는 게 가장 무난하게 보였어요.


방송대는 어떻게 아셨나요?

덕환: 누나가 1993년도? 1994년도…

미영: 제가 94학번이거든요.

덕환: 누나가 방송대 다니다가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서, 3학년 때 중퇴했어요.

미영: 방송대는 알고 있었죠. 방송대 모르는 분 없을걸요. 필요하면 한번쯤은 다 홈페이지를 찾아가 클릭했을 거라고 봐요.

덕환: 저는 개인적으로는 방송대를 잘 몰랐는데, 공부를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누나가 이야기해줘서 방송대를 알게 된 거죠.


‘방송대 사람들’이 된 것에 대한 자기평가를 내린다면? 어느 정도 만족하시는지?

덕환: 그거는 굉장히 선택을 잘한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안산에 올라온 지 10년 정도 됐는데, 여기 안산의 지인은 거의 방송대 학우들입니다. 직장 동료는 얼마 안 되죠. 그러니까 제 입장에서는 방송대에 잘 들어왔다고 봐요. 일단, 방송대 사람들이 너무 좋아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고, 서로 이해하고 같이 모여서 알아가는 게 좋고요.


아직 ‘방송대 사람들’이라는 새로운 ‘족보’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분도 계시잖아요? 공부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을텐데, ‘아 저 어려운 공부를 어떻게 할 수 있겠나?’ 하는 두려움 같은 것도 있을 듯해요.

덕환: 저는 솔직히 ‘누나 방송대 들어와’ 이렇게 권유는 하지 않았어요. 공부하고 생활하는 저를 보고 누나가 다시 선택한 거죠. 저는 너무 즐겁게 다녔거든요.

미영: 학교 행사 있잖아요. 거기 참석했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은 거예요. 즐겁기도 하고. 행사에서 다양한 분들을 만날 수 있잖아요. 언니 같고 오빠 같고 동생 같은 그런 분위기. 막내가 너무 재밌게 다녀서, 다시 들어온 거죠.(웃음)

덕환: 솔직히 공부는 마음먹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니잖아요. 어렵기도 하고. 그런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들어오면, 공부는 당연히 그 뒤에 하게 되거든요. 누나도 공부하러 들어와, 그랬으면 안 들어왔을 거예요.

미영: 그렇죠. 당연히 그랬을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 큰언니를 설득하고 있어요. 같이 방송대 공부를 하자고 하기보다, 같이 즐겁게 생활하자 이렇게 권유하고 있어요. 많이 넘어온 것 같아요.


주변에 보니까 방송대에서 두 번째, 세 번째 공부하는 분들이 많으시더군요. 그런데 역시 나이 때문에 소화하기 어렵고, 수업 내용도 타이트하다보니 공부를 따라가기 어렵지 않나 싶은데요.

미영: 어떤 과나 마찬가지지만 선배님들이 잘 챙겨줘요. ‘힘들어서 포기할까 봐’ 그러면 같이 가자, 뭐 하자, 등록만 해라, 그러면 언젠간 된다, 그렇게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 주시거든요. 후배님들에게도 말씀드리는데, 과락 났다고 실망하지 말고, 등록만 하고 가다보면 졸업해 있더라고요. 스터디 모임 안에 있으면 그래요. 방송대 공부는 선배님들과 스터디가 기둥이라고 봐요.

덕환: 스터디라는 게, 스터디를 하면 다섯 명, 열 명 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내가 공부를 하기 싫어도, 스터디에만 나가게 된다면, 같이 하는 분들에게 얹혀서 같이 가게 돼요. 내가 안 하던 공부라도, 거기서는 한 글자라도 보게 돼요. 그러다보면 시험을 보게 되고, 다른 분들은 시험 점수 잘 나오고, 나만 안 나오면, 어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 저 분들이랑 같이하려면. 이런 동기부여도 좀 되거든요.

미영: 맞아요. 약간 질투도 있는 거예요. 어, 계절하기를 같이 했는데, 과락이 났나? 그게 아니에요. 80점 이상이 안 되면… 어, 그럼 나는 목표가 과락 면하는 거였는데, 이 언니는 이렇구나. 막 즐거운 질투? 이렇게 가다보니, 힘들 때는 그냥 공부도 힘들잖아요. 그렇지만 사람은, 대인관계는 좋은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을 보러 공부 스터디에 가면 한 자라도 들으니까 공부가 되는 거구요. 제가 후배님들에게 말씀드리는 게, 일단 나와라, 나와서 임원을 해라. 나이가 적지 않다보니, 책임감이 있지 않냐. 혼자 공부하면 포기하게 된다. 일단 나와서 스터디도 하고, 임원도 하고 그러다보면 2학년 돼 있고, 3학년 돼 있다. 책임감으로도. 그리고 사실 스터디에서 듣기만 해도 많이 도움을 받을 수 있거든요. 일단 스터디에 참가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저의 경우에는 선배님, 동기들, 후배님들이 다 중요했어요.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고, 힘을 주고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혹시 주변에서 공부를 포기하는 분들 보셨을 거 같습니다. 성격 때문에 임원도 하겠다고 앞에 나서지 못하는 분들이나 학업을 중도 포기하려는 분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덕환: 그거는 정말 어려운 거 같아요. 사람들이 원하는 거, 그 사람이 여기 나왔을 때, 나와야할 이유, 이런 게 필요한데, 그런 걸 채워주기 참 힘든 거 같아요. 공부 외적인 걸로는 끌어들이기 힘들더라고요. 공부하는 정보 많이 준다든가, 나왔을 때 소심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분들은 그 때문에 포기도 하게 되는데, 스터디에 나왔을 때, 같이 더불어서 어울릴 수 있게 서로 말이라도 한마디 더 건네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런데 그게 그런 소심한 성격 때문에 안 나오시는 분들은, 생각을 바꾸셔야 한다고 봐요. 어차피 다 똑 같은 사람들인데, 내가 먼저 다가간다고 그 사람이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머리에 담아두고 학교생활을 하면 좋겠어요.

미영: 저 같은 경우에도 그런 사람들 많았어요. 뭐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저는 다른 쪽으로, 다른 좀 더 즐거운 쪽으로 유도했어요. 이거는 제 개인 판단인데요. 그 친구의 관심사항이 있잖아요. 행사를 하면 술 한 잔 하는 거 좋아하거나, 여행을 간다거나 그러면 같이 하자, 항상 그렇게 했던 거 같아요. 제일 중요한 게 동기들, 선배들, 이런 분들의 조언이었던 거 같아요. 공부를 포기하면, 또 다른 걸 파악해서, 그거에 대해서 같이 어울리면서, 저는 인간관계로 계속 갔던 거 같아요. 제게도 고비가 있었어요. 저는 2학년 때였어요. 그때 선배님들이 그랬어요. 2학년 2학기까지 등록해봐라, 힘들어도. 그러면 3, 4학년 얼마 안 남은 거다. 같이 견뎌내자. 이 말에 힘을 얻었죠. 그러니까 분명 심리적인 게 있어요. 그동안 공들인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방송대는요, 다른 건 필요 없고 인간관계, 그 공부를 많이 한 거 같아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여태까지 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저희가 청소년교육과를 졸업하고 법학과까지 다니게 된 것도 사실 저희가 다른 지인 분들을 학교로 안내해드린 게 계기가 됐거든요. 저희가 권유해놓고 포기하면 그분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저희가 학생회장할 때, 다른 지인 분에게 ‘이모, 와서 나 좀 도와주세요.’ 했어요. 그래서 그분이 법학과에 입학했고, 나중에 학과 대표를 했는데, 마침 저희도 의리로 공부도 하고, 학과도 좀 살릴 생각으로 법학과에 편입해서 합류했던 거죠. 안산의 죽어가는 학과를 살리는 게 저희 원래 목표였어요.


그렇더라도, 실제 이분들이 학업을 이어나가는 데는 많은 공력과 노력, 집중이 필요한데요. 가장 큰 어려움이라면 어떤 것인가요?

덕환: 가장 부족한 것은 시간, 그리고 안 따라주는 머리죠. 젊은 친구들보다 배 이상 책을 봐야 머리에 들어오니까요. 누나들에 비하면 조금 젊은 저는 좀 예외긴 하지만, 그렇더라고요. 저는 총각이라 큰 어려움은 별로 없었지만, 주부님들은 아이들 돌보랴 집안 살림 하랴 바쁘시잖아요. 저는 그런 어려움은 들어서만 알아요.

미영: 저도 40대 초반 때는 아이들이 어렸거든요. 그래서 아이들과 같이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공부했어요. 같이 공부하고 시험 보고 채점도 같이해 보고. 그래서 저희 딸 같은 경우는 저를 똑같이 따라하더라고요. 제가 시험기간 1주일 내내 잠을 덜자면서 공부했는데, 저희 중학생 딸아이가 따라하더군요. 일주일에 한번 스터디를 했는데, 그것만 놓치지 않아도 과락은 없다고 봐요. 원래 청소년교육과가 스터디 시스템이 잘 돼 있다고 해요. 다른 학과 분들께도 저희는 스터디를 이렇게 한다고 브리핑 하러 다니기도 했어요. 과목마다 장별로 서로 분담해서 책임을 졌던 거죠. 같이 공부해서 서로 브리핑해주고 막 그랬어요. 그러면 내용들이 머릿속에 더 많이 남게 되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1학년 때는 바빠서 스터디를 잘 못했어요. 그런데 스터디를 하면서, 어떻게 공부했냐면요. 한 과목만 A+를 받자, 한 과목만. 그리고 좀 더 머리를 써서, 1-2학년, 3-4학년 있잖아요. 과목을 세 과목, 세 과목, 두 과목, 네 과목으로 나눴어요. 공부를 하다보면 좀 쉬운 과목이 있잖아요. 그 한 과목의 점수를 A+로 목표하고 달렸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다른 과목도 점수가 좋아지더라고요. 저는 그거였어요. 하루에 여섯 과목 하면 너무 힘드니까, 1-2학년, 3-4학년 체크를 해서 2주로 나눠서 시험준비를 했어요. 그래서 집중적으로 일주일에 세 과목씩 공부한 거죠. 교양 과목은 선배님들에게 물어봐서 상대적으로 쉬웠던 거 이야기 많이 들었고요. 점수 잘 나오는 노하우를 물어봐서, 시험 공부시간도 절약했죠.


혹시 안산시학습관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덕환: 그거는 어디가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그렇고요. 일단 안산시학습관을 기준으로 본다면, 학습관이 강의도 이뤄지기 힘들만큼 협소해요. 안양이나 성남의 학습관보다도 인원이 적으니까요. 그런 좀… 애로사항이 있긴 한데요. 저희는 강의를, 출석수업을 들으려면, 인천, 수원, 안양 이런 데로 나가서 들어야 하거든요. 올해 이제 저희 안산시학습관에서 출석수업을 시범적으로 청소년교육과를 대상으로 해봤는데, 홍보도 안 됐을 뿐더러 안 좋은 일도 있어서 좀 실패했는데요. 그런 거 같아요. 일단 학습관이 협소하고 면학 분위기가 조성이 잘 안되니까 재학생들이 잘 안 나오고, 그러면 또 학교는 지원을 더 안해 주고 이렇게 안 좋은 게 맞물려서 안산시학습관이 죽어가는 거 같은 분위기가 안타까워요.

미영: 가장 힘든 것은, 역시 장소, 시험 장소죠. 저는 출석수업을 한 번도 못했어요. 솔직히 방송대다보니 출석수업도 가보고 싶은데, 다른 곳은 멀어요. 저는 차가 없거든요. 법학과 출석수업을 한 번 가보려고 기다리기도 했어요. 안산에서 출석수업 한 번 경험해보겠다 했는데, 못했어요. 안타깝죠. 중요한 건, 출석과 시험인데요. 시험도 상록중학교에서 보는데, 시험 때면 동문들이 커피 봉사를 가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해당 학교 눈치를 봐야 해요. 컵을 여기저기에 버린다는 둥. 사실 저희가 다 정리하는 데도 그래요. 그건 좀 안타까워요. 시험 볼 때라도 눈치 좀 안 봤으면 좋겠어요. 민원이 많이 들어와요. 이러면 상록중학교에서 쫓겨나면 또 안양으로 가고, 수원으로 가야 한다고 걱정해요. 저희끼리. 저희 같은 경우는 그저 안산에 살 뿐이잖아요. 저도 수원에서 살다가 안산으로 이사왔는데, 수원 살 때는 지역대 학우였고, 안산에 살기 때문에 안산시학습관 학우일 뿐인데, 사실 좀 차별이 있는 거 같아요.


이제는 가족을 넘어, 주변 이웃과 더 많은 이들에게 ‘배움의 기회’, ‘희망의 사다리’로서 방송대 공부를 권유하고 계실 것 같은데요. 주변에 우리 방송대를 어떻게 자랑하고 계신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덕환: 제일 중요한 거는, 등록금이 싸다는 거죠. 한 학기 등록금이 책값까지 해서 40원만 원 정도니, 그게 가장 큰 메리트죠. 일단 방송대에 오면, 사람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저는 그게 제일 크다고 봐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또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일단 방송대에 발을 디디면, 같이 어울려서 행사하는 게 저는 너무 좋았어요.

미영: 방송대는 일반대에 비해 공부하기가 쉽잖아요. 일반대학은 학교 강의실을 중심으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잖아요. 전국에 방송대가 있으니까, 내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방송대를 다닐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애가 어리거나 한다면 더욱 그렇고요. 저도 다른 분들과 어울려 방송대 생활을 하다 보니 성격도 많이 변한 거 같아요. 50~60대분들과도 동기가 될 수도 있고, 그분들이 또 후배가 될 수도 있고, 너무 재밌어요. 경험 많은 어른들끼리 와서 제2의 대학생활을 재밌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해요. 나이 들어서 대학생활을 하는


두 분 다 청소년교육과를 마치고 법학과에 다니고 있는데, 다음 학과에 또 도전할 생각이신지요?

덕환: 저는 행정학과를 생각하고 있어요.

미영: 저는 영어영문학과에 도전하려고 해요. 제가 청소년교육과 때처럼만 하면 어떤 과목도 못할 게 없다고 봐요. 일단은 도전하는 거죠. 재밌으니까요.(웃음)


만일 방송대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두 분은 어떻게 지내셨을까요?

덕환: 하. 그랬다면… 저는 진짜 아마 그냥 거의 집에만 있었을 거예요. 외부 활동, 사회활동이란 거는 거의 안 하고, 집-회사만 왔다 갔다 했을 겁니다. 좀 외로웠을 거 같아요. 안산에 지인이 있는 게 아니고, 누나들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제가 누나들과 같이 사는 것도 아니고. 저는 그런 부분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선택을 참 잘했다 생각해요.

미영: 저는 일을 하다가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어요. 의사 선생님이 좀 쉬라고 하더라고요. 쉬는 김에, 자격증도 따고 공부할 요량으로 방송대에 왔거든요. 장애등급까지 받았던 터라 약간 대인기피증 같은 게 생겼어요. 제 성격이 원래 활발했지만, 여기 들어와서 성격이 더 바뀌었어요. 안산시학습관 학생회장도 했다고 했잖아요. 중고교 시절에는 뒤에서는 도와줘도 앞에 나서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나이도 먹었잖아요. 그래, 내가 실수해도 이해해주시겠지. 학우들이 내가 실수한다고 누가 뭐라 할까, 하면서 기회 되면 주어진 일을 다 했어요. 막내가 무조건 다 하라고 조언하기도 했고요. 저는 방송대 와서 성격이 정말 밝아졌고, 제 자신을 새롭게 발견했어요. 어, 이런 재능이 내게 있었나? 전에는 마이크는 노래방에서만 잡았는데, 그래요, 이젠 어디 나가도,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는 저 자신을 보게 됐어요. 방송대 다니는 분들을 만나면 가족을 만난 거 같은 느낌이에요. 그게 굉장히 좋아진 거죠. 내성적인 성격에서 외향적으로, 어떤 일에서든 자신감을 갖게 됐고요. 처음 만나는 분들이 저보고 ‘성격이 참 좋다’ 하는데, 이게 다 방송대 덕분인 거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니까, 그랬던 거 같아요. 시험도 과락나면 어때요. 계절수업을 듣거나 한 학기 더 다니면 되잖아요. 삶 자체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어요.


지금 만약, 그런 자기 발견이 두 분이 독특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까요? 다른 분들도 가능한 일일까요?

덕환: 음.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사람 아닌가요. 딱 하나 차이가 있다면, 내가 자발적으로 나서느냐, 안 나서느냐 이거 하나 같아요.

미영: 사실 누군가 나이를 먹어서 방송대를 클릭했다는 건, 공부할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건데요. 공부라는 게 어렸을 땐 시켜서 억지로 한 거잖아요. 그렇지만 방송대는 내가 어떤 공부를 할 생각으로 클릭한 거라, 처음부터 중간에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안 하고 시작하는 거 같아요. 그래도 공부를 하다보면 지치게 되고, 잘 못 따라가서 힘들어 하게 되고, 그럴 때 옆에서 누군가가 조금만, 한마디라도 도움을 준다면, 큰 힘이 되는 거죠. 제 주변에 동생이 먼저 다녔고, 언니가 뒤에 들어온 케이스가 있어요. 그분이 저희를 알아요. 그 동생이 다니면서 저희들 이야기를 했겠죠. 그분들이 노하우를 많이 물어봤어요. 저희가 워낙 친하게 지내니까, 그분도 그런 걸 바라면서 방송대에 온 거죠. 여동생하고 별로 안 친한데, 우리 이야기 듣고, 일단 동생 몰래 들어왔다, 그걸 알고 동생도 조금씩 달라지더라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한 학기, 하나의 계기만 있으면 될 거 같아요. 친한 사람 하나 생기든가, 선배들에게 감동을 받는다든가. 열심히 다니시는 분들은 뭔가 하나씩 다 달라요. 어떤 분은 시험을 보러 갔는데, 동문님들이 따라준 커피 한 잔에 감동받기도 해요. 사람이 사람을 견뎌내게 하는 거 같아요. 솔직히 학교 시스템, 공부 이런 게 있지만, 하기 나름이에요. 자기 필요한 공부는 자기 스스로 하게 돼 있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플러스 인간관계, 사람인 거 같아요.


남씨네 가족들이 이렇게 방송대 공부에 매진하는 건, 어떤 삶을 살기 위해서인가요?

덕환: 저는 사회복지 자격증을 따기 위해 방송대를 선택했다고 앞에서 말씀드렸는데요. 저는 결혼을 안 할 생각이거든요. 거의 독신주의자 비슷한 마인드라, 사회복지사 자격증 따서 혼자 어렵게 지내시는 분들 돕는 쪽으로 인생을 살려고 한 거였어요. 직장 잡고 일하면서 공부하다보니 진로가 좀 바뀌긴 했는데, 저는 사회에 좀 보탬이 되고 싶어요. 나라에. 그리고 안산시에서 안산 시민들을 위한 기업을 다니고 있으니, 반쯤은 성공한 게 아닌가 싶긴 해요.(웃음)

미영: 제가 그랬잖아요. 삶의 질이 바뀌었다고. 저희 주변에 20년 넘게 학교를 다니신 분들이 계세요. 그 선배님들 뵈면 ‘이제는 우리가 뒤로 물러나야해’라고 가끔 그러세요. 그럼 제가 그래요. 그러시지 말라고. 저도 선배님들 버텨주신 세월처럼 달리고 싶다고요. 선배님들이 계셔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재미있어요. 저는 특별한 건 없고요. 가끔 학과 7~8곳을 공부하신 분들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저희도 더 나이 먹기 전에 방송대 대학원도 다녀보고 싶어요. 그전에는 여기 안산시학습관 발전을 위해 달리고 싶어요. 그리고 저희가 꿈이 그거거든요. 학습관에서 환갑잔치 하는 거. 뭐 그런 게 있어요. 이끌어준 선배님들이 계셔서 너무 고맙고, 후배님들에게는 그렇게는 못해드리지만, 안산에서 방송대를 다녀서 너무 좋다, 너무 다행이다, 따스한 말이라도 한 마디 더 건네면서, 저 선배가 있어서 나는 여기 안산시학습관에 오고 싶다, 이러는 후배들이 많은, 그런 선배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가끔 7~8개 학과를 공부하신 분들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저희도 더 나이 먹기 전에 방송대 대학원도 다녀보고 싶어요.
그러기 전에는 여기 안산시학습관 발전을 위해 달리고 싶어요.
학습관에서 환갑잔치를 하는 게 꿈이예요.”
―남미영 학우

“방송대를 선택하지 않았다면좀 외로웠을 거 같아요.
일하면서 공부하다보니 사회복지가 자격증을 따려고 했던
첨음의 생각과 진로가 좀 바뀌긴 했는데,
저는 사회에 보탬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물론 나라에도요.“
―남덕환 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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