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이슬」을 부른 가수 양희은 씨가 진행하는 MBC 라디오 프로그램(여성시대)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안다. 판에 박은 듯한 내용이건만 듣게 되면 푹 빠져드는 절절한 사연이 거기 있음을. 코끝이 찡해지고, 때로는 눈가가 촉촉해지기까지 하는 스토리들이 방방곡곡에 가득 쌓여 있음을.
그런데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 절절한 사연은 그런 라디오 프로그램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방송대를 선택한 이들에게도 그런 깊은 사연이 산사의 돌탑처럼 가슴 한쪽을 채우고 있다. 제43회 방송대문학상 에세이 부문에 투고된 작품들도 그랬다.
아들 둘에 딸 둘이라 딸은 대학공부를 못시킨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대못이 돼 가슴에 내내 박혀 있었던 40대 주부가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교육학과 다니게 된 사연, 검정고시를 보고도 몸이 아파 대학입시를 포기했지만 끝내 문학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늦게나마 방송대를 선택해야 했던 이유, 78세의 나이에도 방송대에 연연해하는 까닭을 솔직 담백하게 토로한 글, 방송대 첫 졸업장을 받는 데 10년이 걸렸지만 그 뒤로 농학과와 영어영문학과를 거쳐 법학과까지 진학한 까닭, 직장을 다니면서 점점 일상에 젖어가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뭐 신나는 일이 없을까?’란 호기심을 되살려 일본학과에 편입하게 된 이야기들…. 이 절절한 스토리들의 단면에는 이들을 사로잡은 ‘방송대의 매력’, 그 지독한 중독성이 묻어나온다. 어떤 이야기들일까?
못다 한 공부에 대한 갈증
우리 대학을 선택한 데는 못다 한 공부에 대한 갈증이 크게 작용한다. 가정 형편 때문이거나 가부장제의 그늘, 혹은 교육받을 기회의 상실 등이 원인이 된다. 방송대가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지란 판단이 깔려 있다. 한 학우는 이렇게 표현했다.
“세상의 부모는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으나 나는 아들 둘에 딸 둘을 두었기에 딸 둘은 대학 공부를 시킬 형편이 되지 못한다고 못을 박았다. 아버지의 대답은 아버지에게 못이었고 나에게 못이었다. 판사가 내리치는 판결의 망치가 이보다 거셀 수 있을까?”
이 ‘아픈 생채기’, ‘보이고 싶지 않은 흉터’ 때문에 열일곱의 화자는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게 됐다. 마흔하고도 넷이 되기까지. 그리고 어느 봄날, 활짝 핀 목련들이 낙화하는 것을 보면서 “가두어 두었던 마음 속 빗장을 풀어 헤친 후 걷잡을 수 없는 희열이 밀려 왔다.” 그는 방송대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고, 교육학과에 편입학했다. 깊은 갈증은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든다는 말이 맞다.
새로운 가치관의 형성과 자발적 학문 탐구 욕망도 ‘방송대 선택’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젊은 날의 어떤 열패감에서 촉발된 것이거나, 혹은 주입식 교육 영향으로 억지 공부를 하다 선택했던 스무살의 시행착오에 대한 성찰에 해당한다. 자신을 찾고, 진짜 공부를 할 수 있는 배움터라는 진단이기도 하다.
국어국문학과에 적을 둔 한 학우는 “방송대 3년 반나마, 인간에 대한 관찰력과 삶에 대한 통찰력을 길렀고, 얕게나마 철학적 사고로 나를 성찰할 수 있게 됐다. 삶의 경험을 통해 습득한 지혜와 학문을 통해서 얻은 진리를 활용할 줄 아는 것이 평생학습의 원리 아니겠는가?”라고 자문하면서, 운명에 굴하지 않고 비밀을 밝혀나가는 오이디푸스에 귀를 기울일 것을 강조했다.
두 번째 스무살에 일본학과를 선택한 학우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학을 전공하고 있는 두 번째 20대 시절은 조금 다르다. 사회인으로서 이미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쳤기에 세계관이나 시각이 조금은 넓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학, 문화 등을 알아가며 내가 진짜로 알고 싶은 일본의 다양한 얼굴에 접근하고 있다. 일본학을 하면서 한국사회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으니 지적인 만족감이 높아진다.”
지적 만족감과 교양의 확장
일단 이렇게 방송대 공부에서 자신을 되찾게 되면, 지적 성취가 이어지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보다 확장된 교양을 추구하게 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또 다른 지적 성취를 만끽한 한 학우는 “일상 자체가 많은 할 일들로 채워지자, 무료함이 사라져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일 없이 잔잔해 보이지만, 내면은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삶의 소소한 변화들을 통해 새로움을 찾았다. 20대 초반, 대학을 다닐 때는 재미없게만 느껴졌던 교과서나 강의들이 새로움으로 가득 찬 흥미로운 것들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스스로를 닦달하지 않고 주위 풍경이나 발밑에 있는 작은 돌들도 보면서 걷는 여유를 발견했다.
일반대학과 전혀 다른 방송대만의 풍경 가운데는 교양의 확장을 꼽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처음 선택했던 학과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이다. 4년 안에 졸업할 수도 있지만,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열정의 재발견’이다. 한 학우의 고백을 들어보자.
“나의 방송대 첫 졸업장은 부끄럽지만 10년이 더 걸렸다.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1996년 국어국문학과 3학년 학사편입을 했던 방송대는 절박함도 없고 열정도 별로 없었다.”
그런 그에게 ‘재입학 제도’ 소식이 전해졌고, 마지막 학점을 채우고 2009년 여름에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역시나 학업에 몰두하거나 열정을 쏟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한 번 졸업을 하고 나니, 조금 자신이 붙었는지, 다른 전공도 하고 싶어졌다.” 이후부터 이 학우는 좋아하는 원예학 공부로 농학과를 완주할 수 있었고, 이어 언어열등감을 벗어나기 위해 영어영문학과에 도전했고, 법학과에 편입까지 했다.
마음속 단 하나의 이유
올해 78세인 한 학우는 현직에서 퇴임한 뒤 관광학과를 거쳐 문화교양학과, 교육학과에 이어 청소년교육과, 국어국문학과까지 섭렵한 뒤, 올해 다시 생활과학과에 편입했다. 14년을 방송대 공부에 삶의 시간을 쏟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하나 던져야 한다. 왜 ‘학위사냥’처럼 보이는 ‘대학 다니기’를 계속하고 있냐고? 첫 졸업장을 10년도 더 지나 받았다는 앞의 학우가 해답을 준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가슴속 깊은 곳에 꽁꽁 싸매둔 ‘절실한 이유’ 때문이다. 언니, 오빠들이 모두 가난 때문에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 그런 언니, 오빠들이 막내의 공부 길을 열어줬는데, 이제 그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다는 것,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언니, 오빠들 대학 다니고 싶어도 못 다녔는데, 내가 우리 형제들 대표로 공부해서 학위 한 개씩 다 따다 줄게.” 체력도 경제적 여건도 공부하기에 더 이상 여의치 않은 그가 ‘대학 다니기’를 계속하는 따뜻한 이유다.
그가 말한다. “배움은 끝이 없고, 방송대도 끝이 없다.” 가슴 속에 묻어둔 각자의 ‘단단한 이유’들이 모두 별처럼 반짝거린다.
20대 초반 대학을 다닐 때는 재미없게만 느껴졌던 교과서나 강의들이
새로움으로 가득 찬 흥미로운 것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 절절한 사연은 그런 라디오 프로그램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방송대를 선택한 이들에게도 그런 깊은 사연이 산사의 돌탑처럼 가슴 한쪽을 채우고 있다. 제43회 방송대문학상 에세이 부문에 투고된 작품들도 그랬다.
아들 둘에 딸 둘이라 딸은 대학공부를 못시킨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대못이 돼 가슴에 내내 박혀 있었던 40대 주부가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교육학과 다니게 된 사연, 검정고시를 보고도 몸이 아파 대학입시를 포기했지만 끝내 문학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늦게나마 방송대를 선택해야 했던 이유, 78세의 나이에도 방송대에 연연해하는 까닭을 솔직 담백하게 토로한 글, 방송대 첫 졸업장을 받는 데 10년이 걸렸지만 그 뒤로 농학과와 영어영문학과를 거쳐 법학과까지 진학한 까닭, 직장을 다니면서 점점 일상에 젖어가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뭐 신나는 일이 없을까?’란 호기심을 되살려 일본학과에 편입하게 된 이야기들…. 이 절절한 스토리들의 단면에는 이들을 사로잡은 ‘방송대의 매력’, 그 지독한 중독성이 묻어나온다. 어떤 이야기들일까?
못다 한 공부에 대한 갈증
우리 대학을 선택한 데는 못다 한 공부에 대한 갈증이 크게 작용한다. 가정 형편 때문이거나 가부장제의 그늘, 혹은 교육받을 기회의 상실 등이 원인이 된다. 방송대가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지란 판단이 깔려 있다. 한 학우는 이렇게 표현했다.
“세상의 부모는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으나 나는 아들 둘에 딸 둘을 두었기에 딸 둘은 대학 공부를 시킬 형편이 되지 못한다고 못을 박았다. 아버지의 대답은 아버지에게 못이었고 나에게 못이었다. 판사가 내리치는 판결의 망치가 이보다 거셀 수 있을까?”
이 ‘아픈 생채기’, ‘보이고 싶지 않은 흉터’ 때문에 열일곱의 화자는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게 됐다. 마흔하고도 넷이 되기까지. 그리고 어느 봄날, 활짝 핀 목련들이 낙화하는 것을 보면서 “가두어 두었던 마음 속 빗장을 풀어 헤친 후 걷잡을 수 없는 희열이 밀려 왔다.” 그는 방송대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고, 교육학과에 편입학했다. 깊은 갈증은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든다는 말이 맞다.
새로운 가치관의 형성과 자발적 학문 탐구 욕망도 ‘방송대 선택’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젊은 날의 어떤 열패감에서 촉발된 것이거나, 혹은 주입식 교육 영향으로 억지 공부를 하다 선택했던 스무살의 시행착오에 대한 성찰에 해당한다. 자신을 찾고, 진짜 공부를 할 수 있는 배움터라는 진단이기도 하다.
국어국문학과에 적을 둔 한 학우는 “방송대 3년 반나마, 인간에 대한 관찰력과 삶에 대한 통찰력을 길렀고, 얕게나마 철학적 사고로 나를 성찰할 수 있게 됐다. 삶의 경험을 통해 습득한 지혜와 학문을 통해서 얻은 진리를 활용할 줄 아는 것이 평생학습의 원리 아니겠는가?”라고 자문하면서, 운명에 굴하지 않고 비밀을 밝혀나가는 오이디푸스에 귀를 기울일 것을 강조했다.
두 번째 스무살에 일본학과를 선택한 학우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학을 전공하고 있는 두 번째 20대 시절은 조금 다르다. 사회인으로서 이미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쳤기에 세계관이나 시각이 조금은 넓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학, 문화 등을 알아가며 내가 진짜로 알고 싶은 일본의 다양한 얼굴에 접근하고 있다. 일본학을 하면서 한국사회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으니 지적인 만족감이 높아진다.”
지적 만족감과 교양의 확장
일단 이렇게 방송대 공부에서 자신을 되찾게 되면, 지적 성취가 이어지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보다 확장된 교양을 추구하게 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또 다른 지적 성취를 만끽한 한 학우는 “일상 자체가 많은 할 일들로 채워지자, 무료함이 사라져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일 없이 잔잔해 보이지만, 내면은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삶의 소소한 변화들을 통해 새로움을 찾았다. 20대 초반, 대학을 다닐 때는 재미없게만 느껴졌던 교과서나 강의들이 새로움으로 가득 찬 흥미로운 것들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스스로를 닦달하지 않고 주위 풍경이나 발밑에 있는 작은 돌들도 보면서 걷는 여유를 발견했다.
일반대학과 전혀 다른 방송대만의 풍경 가운데는 교양의 확장을 꼽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처음 선택했던 학과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이다. 4년 안에 졸업할 수도 있지만,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열정의 재발견’이다. 한 학우의 고백을 들어보자.
“나의 방송대 첫 졸업장은 부끄럽지만 10년이 더 걸렸다.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1996년 국어국문학과 3학년 학사편입을 했던 방송대는 절박함도 없고 열정도 별로 없었다.”
그런 그에게 ‘재입학 제도’ 소식이 전해졌고, 마지막 학점을 채우고 2009년 여름에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역시나 학업에 몰두하거나 열정을 쏟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한 번 졸업을 하고 나니, 조금 자신이 붙었는지, 다른 전공도 하고 싶어졌다.” 이후부터 이 학우는 좋아하는 원예학 공부로 농학과를 완주할 수 있었고, 이어 언어열등감을 벗어나기 위해 영어영문학과에 도전했고, 법학과에 편입까지 했다.
마음속 단 하나의 이유
올해 78세인 한 학우는 현직에서 퇴임한 뒤 관광학과를 거쳐 문화교양학과, 교육학과에 이어 청소년교육과, 국어국문학과까지 섭렵한 뒤, 올해 다시 생활과학과에 편입했다. 14년을 방송대 공부에 삶의 시간을 쏟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하나 던져야 한다. 왜 ‘학위사냥’처럼 보이는 ‘대학 다니기’를 계속하고 있냐고? 첫 졸업장을 10년도 더 지나 받았다는 앞의 학우가 해답을 준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가슴속 깊은 곳에 꽁꽁 싸매둔 ‘절실한 이유’ 때문이다. 언니, 오빠들이 모두 가난 때문에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 그런 언니, 오빠들이 막내의 공부 길을 열어줬는데, 이제 그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다는 것,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언니, 오빠들 대학 다니고 싶어도 못 다녔는데, 내가 우리 형제들 대표로 공부해서 학위 한 개씩 다 따다 줄게.” 체력도 경제적 여건도 공부하기에 더 이상 여의치 않은 그가 ‘대학 다니기’를 계속하는 따뜻한 이유다.
그가 말한다. “배움은 끝이 없고, 방송대도 끝이 없다.” 가슴 속에 묻어둔 각자의 ‘단단한 이유’들이 모두 별처럼 반짝거린다.
20대 초반 대학을 다닐 때는 재미없게만 느껴졌던 교과서나 강의들이
새로움으로 가득 찬 흥미로운 것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