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누구나 ‘달력의 나이(chronological age)’를 먹는다. 그렇다고 해서 ‘지성의 나이’가 함께 느는 건 아니다. ‘찐 나이’는 세월이 주는 게 아니라 세상이 주는 것이다. 세월이 준 나이를 내세우면 꼰대다. 세상이 주는 나이를 내세우면 경륜이 된다. 달력의 나이는 노력 없이 먹는 것이기에 생색을 내거나 권력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꼰대 소릴 듣지 않게 된다. 공자는 ‘젊은이는 자기 자신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지만, 나이 먹은 사람은 세상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라고 말했다.
그리스어 헤리키아(?λικ?α)는 ‘나이, 수명, 키’라는 서로 다른 뉘앙스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바꾸기 어려운 것들이다. 사람의 수명이나, 뭘 하기에 적합한 연령을 내 마음대로 바꾸기는 어렵다. 게다가 키를 나의 힘으로 바꾼다는 건 불가능하다.
나이가 늘 때, 키는 준다. 역설이다. 수명도 늘고 있다. 노화라는 중력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의학 기술 덕분이다. 2018년 6월,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질병분류’의 11번째 판에 ‘Code MG2A: Old age’가 포함됐다. 노화를 존재론에서 구속의 틀이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본다는 얘기다. 나이가 들면서 체내에 쌓이는 ‘좀비 세포’를 제거하는 세놀리틱스(Senolytics)가 임상시험 중에 있다. 게다가 노화 세포만 골라 죽이는 약물까지 찾는 데 성공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여기에 고무된 일부 학자는 장수 유전자, 장수 물질, 장수 기술을 고려해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우리는 113년 이상을 살 수 있다고 추정한다. 세계적 고령화 현상을 향해 앨런 그린스펀이 “세계가 은퇴한다”라고 말했지만, 현대의학 기술은 인류를 세상으로부터 은퇴시기를 늦추는 데 한 걸음 더 다가서고 있다.
새해 벽두엔 누구나 나름대로
사는 방법’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래된 확신 같은 걸 버리는 일이다.
자신을 면밀하게 돌아보지 않는
삶은 타인에게 위협이 된다.
당신 눈에 젊은이들이 현명하지
않다고 보인다면 그건 당신의 마음이
‘고물’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새해 벽두엔 누구나 나름대로 ‘사는 방법’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래된 확신 같은 걸 버리는 일이다. 우리가 했던 실수를 젊은이들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충고랍시고 간섭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의 세계는 우리가 살아온 세계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젊었을 때보다 더 현명하다. 자신을 면밀하게 돌아보지 않는 삶은 타인에게 위협이 된다. 당신 눈에 젊은이들이 현명하지 않다고 보인다면 그건 당신의 마음이 ‘고물’이 됐기 때문이다.
과거의 성공적인 경험에 기반해 형성된 스키마(schema)에 갇혀 사는 건 세상에 대해 불만의 게이지(gauge)만 높이는 삶이 될 뿐이다. 축적된 경험이 판단 능력을 향상시킬 거라는 단순명제는 늘 옳지만은 않다. 나이 많은 사람이 존경받는 첫 번째 조건은 떠오르는 생각을 다 발설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과 세상을 바꾸는 다변을 능가하는 침묵의 기술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 나이 들면서 결국 DNA가 힘을 발휘하는 것을 방치한다면 자기 안에 자리 잡은 부정적인 본성적 요소를 통제할 길은 없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학습하고 훈련을 감내해야 한다.
송나라 사람 주필대(周必大)는 『이로당시화(二老堂詩話)』에서, 대낮에는 꾸벅꾸벅 졸음이 오지만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다거나 울 때는 눈물이 흐르지 않고 웃을 때 눈물이 흐른다고 언급했다. 거기에 더하여 30년 전의 일은 모두 기억하지만, 눈앞의 일은 돌아서면 잊어버린다고, 나이 듦에서 오는 좌절을 한탄했다.
그렇다고 나이 드는 걸 비관적으로만 볼 건 아니다. 나이 들면서 자신이 자꾸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은 기준점이 청년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주는 권위에 의지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누구나 늙는데, 나만 늙고 경험한 것처럼 살면 외롭다.
다산(茶山) 선생은 노년의 즐거움을 해학적으로 이렇게 표현했다.
“대머리가 되니 빗이 필요치 않고, 이가 없으니 치통이 사라지고, 눈이 어두우니 공부를 안 해 편안하고, 귀가 안 들려 세상 시비에서 멀어지며, 붓 가는 대로 글을 쓰니 손볼 필요가 없으며, 하수들과 바둑을 두니 여유가 있어 좋다.”
이처럼 생각할 수만 있다면 노년도 예술이겠다 싶다.
늙는 게 좋은 점이 또 있다. 휠체어 타고 미술관에 가면 줄을 안 서 좋다. 더 나이 들어 망각의 세계에 진입하면 한 번 읽은 탐정소설을 2주 후에 다시 읽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등장인물 중 누가 범인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노년의 복 중 하나다.
여기에 지성의 나이를 더하면 금상첨화다. 세상일은 다 의미 있다고 받아들이는 허용의 자세, 자신에게 일어난 일의 의미를 깨닫는 납득의 태도, 자기 일을 통해 신의 의지를 감지하고 이루지 못한 것도 원망하지 않는 단념의 사고, 사후 어디로 갈지 생각하는 회귀의 마음을 가질 때 지성의 나이는 쌓인다. 이렇게 나이 드는 것은 아름다운 예술이 된다. 지성의 나이가 드는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방송대 교수·행정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