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ㆍ취업   농업 자격증·공무원 강사

  나무의사 자격증 소지자가 업체에 강의를 제안하면, 심사 거쳐 강의 개설 가능본인 교재 있는 것이 더 유리세부적인 커리큘럼도 제시해야  ‘일타강사’. 1등 스타 강사의 줄임말이라는 이 단어는 대입 학원계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각종 자격증 및 공무원 시험을 대비한 사교육 업계에서도 일타강사는 많다. 그런데 이 일타강사 중 우리 방송대 동문이 있다. 50대 중반인 10여 년 전부터 인강(인터넷 강의) 업계에서 유기농업기사·기능사 자격증 강의를 시작한 김규리 동문이다. 농학과와 대학원 농업생명과학과를 졸업한 그는 몇 해 전에는 온라인 메이저 교육업체에 영입돼, 유명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인강 강사로 진로를 개발하려는 방송대 학생들에게 귀가 솔깃할 만한 이야기를 김 동문이 풀어놨다.  “강사를 하라고요? 가당치도 않아요!”‘제대로’ 뜨면 메이저리거 연봉 부럽지 않다는 이야기가 솔솔 돌면서 대입 인강 강사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꿈의 직업이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젊은이들은 ‘강사 양성 학원’에 다니며 대형 사교육업체의 ‘오디션(시강)’을 준비한다. 양성학원에서는 지식 전달력을 위한 화술(유머), 제스처, 화장법, 옷차림까지 코치한다. 이런 전 과정이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산업과 유사하다 해서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라는 명칭까지 등장했다. 한국 사교육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김규리 동문은 대입 인강 강사는 아니다. 그렇지만 공무원 인강 강사도 이들 못지않게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사실, 김 동문은 이런 과정을 거친 것은 아니지만,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혹독하게 노력했다. “30여 년간 신촌에서 요식업에 종사했어요. 낮에는 손님이 별로 없어 홀에서 공부를 하곤 했죠. 4학년 때였는데, 농학 공부의 재미에 푹 빠져 공부하는 제 모습을 단골들이 자주 목격했죠. 그런데 어느 날, 단골손님 중 한 분이 저에게 온라인 강의를 맡아달라고 하더라고요.”  그 단골손님은 한 인터넷 교육업체 대표였다. 평소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자주 봐왔던 그 대표는 김규리 동문에게 어찌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감탄하며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강의 교육 회사에서 농업 관련 자격증 강의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김 동문은 처음에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진심을 알고 나서도 “안 된다. 할 수 없다”라고 수천 번 말했다. “아니, 경력도 없는데 갑자기 앞에서 누구를 가르치는 일을 하라고 하는데, 어이가 없었죠.” 그 대표는 식당 문이 닳도록 드나들며 김 동문을 졸랐다. “농악 아니라 농학이라고!”그런 끈질긴 설득에 마침내 ‘나도 한 번 해 볼까?’라는 결심을 굳힌 김 동문은 낮에는 식당 일, 밤에는 식당 안 쪽방에서 약 6개월간 밤을 새며 교재를 집필했다. “교재 없이 강의해도 되는데, 이런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죠. 대표님이 교재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그래야만 하는 줄 알고, 발등에 불이 떨어졌죠. 당시만 해도 컴퓨터 자판을 잘 다룰 줄 몰랐어요. 제가 손으로 쓰면, 아르바이트 학생이 컴퓨터로 문서 작업을 했죠. 그렇게 쓴 원고를 보니 1천여 페이지가 넘더라고요.”  김 동문이 인강 강사로 ‘데뷔’하기 위한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강의 시나리오를 써서 종이가 해어질 때까지 들고 다니면서 연습했다. 학창시절 방송반 아나운서로 활동하면서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던 그였기에 음성과 발성은 어렵지 않았다. 또 강의를 찍기 전에 유기농기사와 종자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해 뒀던 것도 자신감 상승에 큰 도움이 됐다. 젊은 시절엔 회장 비서로 근무하다가, 30대 중반에 단골 식당을 인수해 요식업으로 거의 30여 년을 보냈다. 노년에 조그만 텃밭이라도 가꾸며 전원생활을 하려는 작은 소망을 성취하기 위해 2008년 방송대 농학과에 1학년으로 입학했다. “요즘 뭐하며 지내냐는 지인들의 안부 전화에 농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대답했는데, 어느 날 보니 이게 지인들 사이에서 ‘규리가 문화센터에서 농악을 배운대’라고 와전됐더라고요.(웃음) 사실을 바로 잡자, 겉으로는 말은 안 해도 ‘사람들 좋아하는 네가 끝까지 공부할 수 있을까?’라고 저를 바라보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오기가 생겼어요.” 식당일이 바빠 스터디를 할 수 없다 보니 공부를 포기해야 하나 두려움도 밀려들었다. 이런 고민이 쌓여갈 무렵, 김 동문은 용기를 내 박미호 튜터에게 이메일로 자신의 상황을 상담했다. 박 튜터는 그에게 한 학기만 더 해보자며 용기를 북돋아 줬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이었지만 진심이 느껴졌던 김 동문은 다시 힘을 내 공부에 매진했다. 그 결과 방송대 농업생명과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대학원 튜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대학원 입학 당시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강했던 것 같아요.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이젠 저에게도 젊은 피가 흐르는 것 같아요.” 식당 운영과 자격증 강사 두 가지 활동이 벅차다고 느껴질 무렵, 코로나 사태로 타격을 받았다. “전부터 공부와 강의에 더 집중하고 싶어 식당을 정리하려 했지만 근 30년간 하던 일이라 망설이다가 결국 접기로 결심을 굳혔죠.” 열심히 살아 ‘복’을 받은 것인지, 사업체를 정리하자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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