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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한다는 것은

새로운 앎에 이른다는 것이고

세상을 아는 것이며

내가 세상과 대결하는

방식인 것이다.

 

“선생님, 공부 좀 하게 도와주세요!”

10여 년 전,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어느 할머님의 목소리가 아직 생생하다.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우리 대학의 조교로 처음 근무를 시작했던 나는 우리 대학의 낯선 교육과정도, 전국에서 걸려오는 문의 전화도 모두 불만스러웠다. 이곳은 내가 알고 있던 대학이 아니었고, 학생들도 내가 생각해왔던 학생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애원하는 듯한 한 노년의 학우님 목소리는 그간 나의 불만을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그분의 목소리에는 공부를 하겠다는 열정이 묻어났고, 형언할 수 없는 울림이 있었다.

 

조교를 마치고 교사를 양성하는 사범 대학에서 근무하며 나는 성실하고, 예의 바른 학생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이뤄 교단에 서는 모습을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선생으로서의 행복감을 느꼈다. 내 전공인 국어학 공부로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하니 이 또한 신나는 일이었다. 어찌 됐든 나의 공부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도우며, 직업을 얻기 위한 전문교육기관으로서 대학에서의 선생 노릇을 감사하게 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열심히 노력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인구가 줄면서 자연스럽게 교사의 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의 구조적인 문제를 보며 내가 학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전공인 국어학은 전형적인 인문학의 하나인 언어학의 일종인데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의 처지는 매우 곤궁하다. 인문학을 공부해 취업할 수 없는 현실을 누구나 알고 있고, 애석하게도 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직업을 얻고 생활해야 할 학생들에게 시험 과목으로서의 국어학이 아닌 인문학으로서의 국어학을 나와 같이 공부해보자고 말할 자신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에는 예전의 나처럼 인문학이 좋아서 그것을 전공하고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다. 대학에서 직업을 위한 전문 지식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우리가 하는 공부가 모두 실용을 위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인간이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것으로 특별한 목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공부를 하는 것 자체가 좋아서 하는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무시당할 일도 아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새로운 앎에 이른다는 것이고 세상을 아는 것이며 내가 세상과 대결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것이 돈과 권력을 가져다주지 못하더라도 내게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리라.

 

인문학을 전공한 내게 대학은 이런 생각을 공유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방송대는 그런 의미에서 내게 가장 이상적인 대학이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우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부가 좋고, 새로운 앎으로 세상을 사는 분들이다. 그런 분들의 목소리에는 열정이 있고 울림이 있다. 어쩌면 오래전 그 할머니 목소리가 내가 대학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그 길을 알려주는 지침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그분이 내게 주었던 울림을 이번에는 내가 우리 대학의 학생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학우님, 우리 같이 열심히 공부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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