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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서에서 일하다가 정년을 한 지 몇 해가 지났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홀가분하고 좋았다. 가끔 좋아하는 사진 생활도 하면서 여러 곳을 누비기도 했다. 평소 가보지 못했던 곳, 담아보고 싶었던 곳을 찾아 청주에서 서울로도 자주 오르내렸다. 전주, 강화, 원주, 부산, 동해… 참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동년배에서 20대까지 다양한 세대와 만나면서 취미와 여가생활을 지냈다. 부지런히 살아온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사진은 찰나를 담는 예술이라고 한다. ‘결정적인 순간’이란 격조 높은 표현도 있지만, 그건 예술가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고, 내게는 그저 세상을 새롭게 보는 창(窓), 세상과 만나는 통로였다. 때로는 아이처럼 카메라를 들고 종횡무진 거리를 돌아다녔지만, 신통한 사진은 별로 찍지 못했다. 전에 만나지 못했던 세상을 엿본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젊은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마음 한편에서 스스로를 청춘이라고 여겼던 듯하다. 뭔가 더 생산적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쌓여갔다. 정년을 했지만 그래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취업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웬걸,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졌다. 그제서야 내가 조직의 울타리 안에서 너무 편하게 안주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현직에 있을 때 미리미리 준비했어야 하는데, 미래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못한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후회도 됐다.


그렇다고 마냥 지난 시간을 아쉬워할 수만은 없었다. 요즘 가장 ‘핫’한 업종이 뭔지 탐색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쉽게 말해 ‘가성비가 좋은’ 일을 찾았다. 마침 주변에서 ‘괜찮다’고 귀띔해준 소방설비기사에 도전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반년 이상을 매달렸다. 공부라곤 거의 담을 쌓고 살았는데, 인생 후반의 삶을 위해 머리띠 동여매고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하는 모습이라니! 40대에도, 50대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나의 ‘미래’였다. 결국 운 좋게도 자격증을 취득해서 지금은 소방설비 점검 업체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운 좋은 인생 2막 진입기다. 얼마 전 ‘선배시민학회’ 창립 이야기를 접하기 전까지, 나는 노년의 시간을 남들보다 좀 편하게, 안락하게, 자족하면서 살아가는 삶만 생각하고 있었다. 사진 동호회의 한 후배가 ‘형님, 나이 들어간다는 건 뭔가요? 노년을 어떻게 좋은 삶으로 채울 수 있을까요?’ 하고 넌지시 물었을 때, 나의 입 안에서는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라는 말이 맴돌고 있었다.


후배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간은 생존의 빵과 실존의 장미를 필요로 한다. 시민은 빵을 권리로, 장미를 자기 목소리로 공동체에 참여해서 얻는다. 선배시민은 시민으로 당당하게 늙어가는 모두를 위한 존재의 선언이다.” 빵과 장미는 알겠는데, 선배시민이라니? 그게 노년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노인을 선배시민이라고 부르는 것쯤은 알겠다. 그렇지만 노인이 노인이지, 선배시민이라니? 영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의 나를 보고 후배가 기사를 찾아보라고 알려줬다.

 
나는 아직 ‘선배시민’의 의미를 잘 모른다. 아마 오랫동안 그런 상태가 계속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밥을 놓고 후배들과 아득바득 부딪치면서, 노회하게 때로는 약삭빠르게 내몫부터 챙기는, 늙은 내 욕망을 돌아보게 만드는 새로운 충격임에는 틀림없다. 추레하게 살지 말라는 다그침 같은. 그래서 결심했다. 틈나는 대로 선배시민에 대해 알아보기로. 그렇게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 왜 장미가 필요한지, 계속 질문을 던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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