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세상을 바꾸는 방송대 사람들

 

35년 전 가난했던 한 청년이 있었다. 3년간 청춘을 유예하며 중동에서 큰돈을 모았지만, 집안을 건사하느라 수중에 남은 건 없었다. 미치도록 공부가 하고 싶던 그는 1987년 방송대를 찾았다. 낮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밤이면 파지를 묶었다. 잠은 학교 처마 아래에서 잤다. 졸업 후 광양, 대구 등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200만 원을 들고 상경해 ‘바이오제노믹스’를 창업했다. 이후 관록의 시계회사 오리엔트를 인수하며 현재 14개 계열사를 거느린, 연 매출 1조 원대 그룹을 일궈냈다. ‘자수성가 기업인’ 하면 빠지지 않는 장재진 오리엔트그룹 회장의 스토리다. 그의 60년 인생과 30년 사업 여정에서 겪은 수많은 위기와 시련을 극복하게 해준 건 다름 아닌 공부의 힘이었다.

 

실험동물 공부하려 수의대 대학원 진학
경제학을 공부했던 그가 어떻게 한국 바이오산업계 선두회사를 창업하게 됐을까? 이 역시 모르면 공부하는 습관 덕분이었다. 교보문고에서 우연히 『실험동물의학』을 읽고 미래의 주도적인 분야가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 무작정 저자인 이영순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찾아갔지만, 이 교수는 이런 사업을 하기엔 우리나라 경제 규모나 과학 수준으로 보면 15년은 이른 길이라며 그를 말렸다.

 

하지만 그는 수의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바이오는 물론 기자재 이름조차 몰랐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은 질문하는 사람’이라는 그의 평소 생각대로 조교, 대학원생들을 만날 때마다 질문을 던졌다. 수의사가 목표가 아니었다. 바로 한국 바이오산업의 미래를 열어줄 기반인 실험동물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였다.

 

전 재산을 투자해 생산한 실험용 쥐를 들고 당시 동아제약연구소를 찾아갔던 때를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책임자는 쥐를 보자마자 “이거 못 씁니다”라며 단박에 거절했다. 안 쓰면 안 쓰는 거지 왜 못 쓴다고 하는 걸까? 부아가 치밀었다. 그제서야 실험동물은 오염되지 않은 모체에서 생산해야 과학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실패였다.

 

국가에서도 실험동물 전량을 외국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지금 젊은 자신이 바로잡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바이오사업은 영원히 선진국에 예속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시작해야 했다.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실수를 되새김질하며 선진 기술을 배웠다. 가평에 사육센터를 짓고, 1999년 드디어 모체를 보유한 세계적인 실험동물 생산업체 찰스리버와 기술제휴에 성공했다. 국제표준 고품질 실험동물을 국내에서 처음 생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어떻게 공부를 했는가,
어떤 지식을 취했는가가
자기 인생의 성공을
열어주는 문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오리엔트그룹에서는 쥐, 비글, 원숭이 등을 생산해 신약 개발이나 각종 질환을 연구하는 주요 대학, 병원, 연구기관에 공급하고 있다. 국내 시장 점유율은 70%에 이른다. 코로나19로 세상에 처음 등장한 mRNA 백신은 영장류 실험이 필수다. 실험 결과를 인정받으려면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ICH)가 권고한 국제유전자표준(IGS) 실험동물을 써야 한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친 지난 3년은 2011년 캄보디아영장류센터를 인수했던 그의 선견지명이 빛난 시기이기도 했다.

 

1959년 출범한 오리엔트그룹은 실험동물 사업에 안주하지 않고, 친환경 자동차 부품 개발(해은자동차부품연구소), 화장품 사업(샤갈 코스메틱), 전원공급장치 개발(오리엔트 비나), 건설업(오리엔트건설) 등의 분야로 확장하며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

 

캄보디아 빈농 문제 해결에도 일조
장 회장은 2015년부터 리더스클럽에서도 활동했다. 리더스클럽은 방송대 동문 중 고위직 공무원, 사업가, 교수 및 의사 등 전문직이 속한 모임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세워온 이들이 모여 방송대 미래 발전 방향에 관해 논의하면서 아이디어를 보태고 있다. 장 회장은 올해 리더스클럽 3대 회장을 맡아 더욱 활발하게 봉사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방송대가 더 발전할지, 후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을지 늘 고민이다.

 

리더스클럽 회장을 맡은 장 동문은 8월 1일 방송대와 캄보디아 농림수산부 그리고 오리엔트그룹이 맺은 업무협약을 시작으로 방송대의 발전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사연은 지난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업차 자주 캄보디아를 방문하던 그에게 캄보디아 산림청장이 농림수산부 장관을 소개했다. 마침 농민들의 열악한 영농환경을 토로하는 농림수산부 장관에게 장 회장은 교육의 힘을 역설했다. 가난했던 그를 일으켜 세워준 것은 다름 아닌 교육의 힘이었고, 지금 캄보디아 농민들에게 필요한 게 바로 방송대의 원격교육이라고 강조했다.

 

“방송대는 지난 50년간 카세트테이프부터 모바일앱까지 발전하며 축적한 원격교육의 노하우를 지니고 있습니다. 원조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준다면 자립할 기반이 되죠.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방송대가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가장 효율적인 교육을 캄보디아 농민들에게 제공한다면, 그들도 분명 빈곤으로부터 일어설 수 있을 겁니다.”

 

오리엔트그룹은 캄보디아에 동물 백신 생산 합작 회사를 설립해 그들의 실질적인 자립을 돕고 있다. 현재 캄보디아는 자본 문제로 동물 백신을 생산하지 못하는 상황. 장 회장은 우리 정부에 저개발국가에 대한 지원을 요청해, 캄보디아에서 백신을 생산하고, 향후 개발까지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방송대, 첨단대학으로 거듭나야 할 때
장 동문은 개교 50주년을 맞은 방송대가 지금이야말로 미래를 이끌어나갈 적기라고 단언했다. 코로나 시국을 겪는 동안 대학이 꼭 오프라인으로만 작동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 서울대를 비롯해 하버드대, UC버클리 등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도 증명됐다는 것. 그는 “세상은 이미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방송대 교육이 가상 현실, 디지털, 인공지능과 결합하는 첨단 대학으로 진화한다면, 우리가 가진 교육의 질은 전 세계 어느 곳보다도 우수할 겁니다. 방송대가 지금 온라인, 디지털화된 방식으로 고도의 교육을 해가야 하는 이유입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동문도 그렇듯 그 역시 ‘방송대는 내 인생’이라고 고백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처음에는 다른 대학 명함을 내밉니다. 마지막에서야 방송대를 졸업했다고 자수해요. 저도 그랬습니다. 당시에는 하나의 허물인 것처럼, 부끄러운 치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데, 끝나고 보면 자랑, 긍지, 보람이 되잖아요. 졸업한 학교가 아니라, 어떻게 공부를 했는가, 어떤 지식을 취했는가가 자기 인생의 성공을 열어주는 문이라고 생각해요. 돌이켜보면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저는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저를 만든 원동력이죠. 후배들도 방송대에서 열심히 학문을 닦아 사회에서 선도적인 인생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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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su***
    실패는 성공의 열쇠로 도전하고 도전해서 성공 가도를 달리는 장재진 회장님 정말 대단하고 멋진 분이십니다.
    2022-08-09 00:00:39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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