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퇴임교수 인터뷰

“세월이 참 빠릅니다. 처음 방송대에 부임했을 때 초등학교 교사 같은 건물 3동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캠퍼스다운 모습을 제법 갖췄죠. 내부적으로도 굉장히 발전했고요. 카세트테이프, 라디오로 시작했던 대학이 지금은 완전 멀티미디어 강의로 전환했습니다. 그 당시 교수들이 언젠가는 그런 방향으로 가겠지 했던 것들이 정말 실현된 거죠. 그 모습을 30년 동안 바라봤네요.”

 

8월 23일 퇴임한 김성영 교수(경영학과)는 방송대에서의 지난날을 이렇게 회고했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인 1992년 4월 1일 방송대에 부임했다. 2022년까지 30년이 넘는 시간을 방송대에서 보냈다. 강의만 한 것이 아니라 학생처장, 교무부처장, DMC원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 서울지역대학장 등 굵직한 보직도 두루 거쳤다.

 

방송대의 30년 변천사에 놓은 벽돌들
DMC 원장 재직 기간에는 라디오 강의에서 새로운 매체로의 전환을 위해 소규모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지금은 소규모 강의 촬영이 정착됐지만, 당시만 해도 최초의 시도였다. 라디오 강의, 웹 강의 등을 시도하면서 DMC 직제 개편도 주도했다.

 

그는 “PD와 기술직이 2인 1조로 강의 제작에 투입됐는데, 기술이 발전하면서 강의 제작이 쉬워졌어요. 1인 제작이 가능해진 거죠. 기술직 직원들이 PD로 진화할 수 있도록 교육도 하고 제도도 바꿨습니다. 매체 변화에 따른 인력 구조 변화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요”라고 말했다. 서울지역대학장 재직 기간에는 층고를 높이고, 대규모 강의실을 만들어 출석수업에 되도록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30년 넘는 재직 기간 중 학교를 위해 많은 일을 했지만, 김 교수는 튜터 제도가 안착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운 점으로 꼽았다. 당시 학생 지원이 잘 되던 서울지역을 제외한 지방에 ‘지역 튜터’를 둬 학생 학업을 돕자는 취지였다. 1990년대 중반에 추진했던 첫 튜터 제도였다. 하지만 2년 정도 시행 후 사라졌다.

 

그는 “학생들에게 전화하면 ‘당신 누구야’ 하는 말부터 걸림돌이 많았죠. 학생들을 돕겠다는 이상적인 취지였지만, 시스템도 받쳐주지 않았고 준비가 잘 안 됐던 거예요”라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튜터 제도가 부활했지만, 그는 튜터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대학원 수준으로 범위를 줄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수천 명이 넘는 학생이 공부하는 학부에서는 관리와 평가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반평생을 봉직한 경영학과에 대해서는 경영대학원으로 독립한 것에 절반의 성공과 더불어 아쉬움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물론 경영대학원을 설립한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학생 수가 많았을 때 독립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죠. 지금은 학과당 교수 수가 표준화돼 있고, 평등한 원칙에 따라 지원하는데, 그런 면에서 유연하게 경영대학원을 좀 더 집중적으로 지원했더라면 지금 좀더 발전적인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요? 현 경영학과 교수님들에겐 여전한 과제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자유로운 학문 찾아 경영학 전공
김 교수의 선친은 의사다. 부산에서 공부하다 중학생 때 일가가 상경했다. 어릴 때부터 의사, 법조인 등 정해진 길에는 거부감이 들었다고 했다. 형식적이고 딱딱한 조직의 일원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 경영학과를 선택한 것도 어떤 공부가 자유로울까를 고민한 결과다. 그는 “미래에는 분명 기업이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세부 전공은 마케팅인데요. 정말 재밌어요. 경영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경제인으로서 기업인으로서 인간 행동을 연구해 예측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그는 경영학의 추세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진단을 내놨다. “예전에는 눈으로 관찰하던 것들이 요즘은 모두 데이터에 녹아 있습니다. 인간의 소비행위가 어떻게 변할지 데이터를 통해 분석하는 방향으로 나가겠죠.”

 

박학다식했던 장인숙 전 총장, 좌우 진영을 떠나 사태를 파악하는 안목이 있던 한완상 전 총장, 우리나라 벼 연구에 큰 기여를 한 이종훈 교수(농학과) 등 김 교수가 존경하는 선배 교수들은 수없이 많다. 퇴임하는 그가 후배 교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예전에는 재미있는 책을 발견하면 조금 뒀다 다음에 읽어야지 했어요. 그런데 미루면 안 되더라고요. 책이든 연구 주제든 그런 것들이 있을 때, 그 분야를 미루지 말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세월은 금방 가니까요.”

 

올해 개교 50주년을 맞은 방송대는 새로운 50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김 교수의 표정이 자못 진지해졌다. “한때는 ‘카세트대학’이라는 자조적인 말도 있었지만, 이상적인 원격교육의 모습에 거의 도달하고 있습니다. 좋죠. 그런데 문제는 그만큼 다른 대학도 원격교육이 쉬워지고 있다는 겁니다. 코로나 시국에 일반대 교수들은 PD도 없이 혼자 카메라 앞에 앉아 강의를 했어요. 지방대 중에는 원격대로의 전환을 선언한 대학도 나왔죠. 우리의 독자성을 잃게 된 겁니다. 위기죠. 결국은 본질로 돌아가야 해요. 깊이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교수들 역시 연구를 많이 해서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해야 합니다. 학생 서비스 역시 방송대가 훨씬 더 좋게 만들어야 생존할 수 있을 겁니다.”

 

선풍기 세 대를 돌리면서 땀을 흠뻑 쏟으며 출석수업 하던 시절, 제자의 딸 주례를 섰던 추억, 조교가 다른 대학 교수로 임용돼 함께 학문을 논하게 된 사례….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 있던 방송대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바로 지금’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젊었을 때 70대 교회 권사님께 이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항상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20대는 20대라서 좋았고, 50, 60대는 또 나이 들어서 좋았다고요. 그런 현답을 들은 기억이 나네요. 저 역시 퇴직을 앞둔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웃음)”

 

학우들에겐 이런 당부의 말을 남겼다.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방송대에 입학했잖아요. 학위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꼭 학위를 따면 좋겠어요.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요. 그리고 열심히 배워서 자신의 일과 인생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의심하는 자세로…”
그가 늘 마음에 새기는 글귀는 ‘확신하는 사람은 생각하기를 멈춘 사람’이다. 니체의 말이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우리나라에는 확신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는 게 밝혀지는 경우도 많잖아요.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과연 그럴까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야 해요. 흥분해서 먼저 행동하면 나중에 틀릴 수도 있거든요. 물론 의심이 많으면 행동이 늦어지는 폐단도 있지만, 늘 중립성을 지키고 신중해지려고 노력해야죠. 지성인이라면 또 일반 시민이라면 그런 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퇴임 이후 자연인으로 돌아가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을까? 교수라는 직업 특성상 학기 중에도 방학 중에도 항상 무언가 새로운 학문을 탐구하고 전수하는 일에 쫓겼던 그는 퇴임 후에도 계속해서 공부할 생각이다. 본격적인 연구라기보다는 관심 영역을 탐구하겠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교회 봉사와 더불어 신학, 종교학 공부도 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동안 미뤄뒀던 붓글씨도 연마한다고 했다. 30여 년간 방송대에 차곡차곡 벽돌을 쌓아왔던 한 학자는 인생 후반기 그동안 미뤄왔던 자기 삶의 벽돌을 새롭게 쌓아나갈 계획이다.


4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