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최근에 지인은 나에게 2G 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꿨다고 자부심이 충만한 채 말했다. 몇 달 전에 카카오톡을 할 수 있는 전화기로 바꾸도록 강력하게 권유했던 게 주효했던 것 같다. 막상 카카오톡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국적으로 카카오 먹통 사고가 났다. 나의 본심은 그가 디지털 소외에서 탈출하기를 소망한 데 있었다. 70대 이상의 정보화 수준은 한국인 평균의 46.6%에 그친다.


고령층에선 키오스크를 ‘고문 기계’라고 부른다. 기계와 대화하는 걸 어색하게 여기는 고령층이 키오스크가 설치된 가게를 피하는 이유다. ‘터치 네이티브’에겐 학교 입학 전부터 아이패드, 스마트폰과 각종 오락게임 프로그램에 익숙하다 보니 입보다 손가락으로 욕망을 실현하는 게 훨씬 쉽다고 여긴다.

 

이러다 보니 세대별로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 본능적으로 아는 세대, 배워서 아는 세대, 눈치로 아는 세대, 배워도 모르는 세대, 배울 필요조차 없다고 여기는 세대 사이에는 신기술 덩어리인 신문물이 주는 서비스와 효용 인식의 격차가 하늘과 땅만큼 크다. 논리력은 약화하고 감정의 힘이 강화되는 노년층이 키오스크와 같은 기계와 대화하는 것에 익숙해지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카카오 먹통 사태는
‘디지털 암흑’을 현실화했다.
시스템이 ‘과부하’한 복잡성 상태에
이르면 시스템은 붕괴 위기에 놓인다.
디지털 시대에서 우리는 어쩌면
역설적이게 ‘디지털 암흑’의
시대를 살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복지관, 노인대학, 동주민센터 등에서 최근 인기가 많은 고령층의 키오스크 수업은 길게는 12주 과정으로 편성하고 있다고 한다. 과정 이수 후에도 현장에서 막상 키오스크를 대하면 당황들 한다. 기계가 시키는 대로 손가락을 터치하는 걸 머리가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은 ‘빨리빨리 내가 원하는 것을 줘!’라고 하는데, 기계는 내가 보기에 엉뚱한 것을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내가 원하는 건, 터치 스크린에서 맨 나중에 뜬다. 여기까지 가는 걸 참기 어렵다.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뒤를 보니 줄이 길게 늘어섰다. 마음은 더 급해진다. 머릿속이 카오스 상태로 전환된다. 몸이 떨리고 손가락은 엉뚱한 곳을 터치한다. 실패의 쓰라린 경험은 뇌에 잘 박혀있다. 가게 밖에서 보고 키오스크만 있으면 발길을 돌린다.

 

디지털 소외층은 한 때는 ‘안 되면 되게 하라’면서 자신감이 충만한 채 세상을 살았었다. 이제는 ‘나만 모른다. 배워도 금방 잊어버리고 시도하려면 겁부터 난다’라면서 아날로그의 삶에 머물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복잡성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디지털 복잡성은 특히 고령층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기술 발전과 더불어 복잡성이 증대하면서 심리적 장벽은 더 높아지고 삶의 질은 더 낮아진다.

 


학술지〈복잡성(Complexity)〉의 편집자로 활동했던 존 L. 캐스티는『X 이벤트』에서 복잡성 과학을 적용해 기존의 통계적 방법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통계 영역 바깥에 있는 사건들을 예측하는 내용을 소개한다. 그리고 엄청난 사회적 파급 효과를 지녔으나, 드물고 놀라운 이런 사건들을 ‘X 이벤트(X는 ‘극단’의 뜻)’라 명명했다.


디지털 암흑, 식량 위기, 전자 기기의 파괴, 세계화의 붕괴, 물리학적 재난, 핵폭발, 석유 소진, 전염병 창궐, 정전과 가뭄, 로봇의 재앙, 금융의 몰락 등을 ‘X 이벤트’의 시뮬레이션의 예로 들고 있다. 그의 예측이 정확히 맞고 있다. 카카오 먹통 사태는 ‘디지털 암흑’을 현실화했다. 코로나 상황도 전염병의 창궐이라는 그의 예측을 그대로 재현한 셈이다. 금융의 몰락도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시스템이 ‘과부하’한 복잡성 상태에 이르면 시스템은 붕괴 위기에 놓인다.


우리가 사는 복잡성이 큰 현대사회는 ‘카드로 지은 방대한 건축물(castle of cards)’과 같아서, 살짝만 건드려도 구조 전체가 무너진다는 것이 캐스티의 생각이다.


기술이 복잡해지면서 세상은 기술 의존도를 가속화한다. 자율주행 자동차, 금융, 전력망, 군사 무기 장비 체계, 식량 공급망 등 수없는 인프라와 장비의 복잡성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복잡성이 증가하는 데는 인간의 편의성 증대 욕구에 부응한다는 욕망에 기인한다. 게다가 분산된 시스템과 인프라가 밀접하게 연결되는 세계화 상황을 만들면서 빛의 속도로 진동이 전 세계로 전달된다. 시간이 갈수록 복잡성의 과부하는 커질 것이 분명하므로 ‘X 이벤트’의 발생 가능성 또한 커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디지털 시대에서 우리는 어쩌면 역설적이게 ‘디지털 암흑’의 시대를 살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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