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짙은 갯내음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강원도 속초 바닷가 출신이다.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우연히 교육행정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합격한 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당시 내 나이 또래들은 대부분이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대학에 입학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봉급도 받고 승진도 하고 해서 장가도 갈 수 있었다.
필자의 경우에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군대 제대 후 시골을 벗어나 중앙에서 근무하고 싶어 무작정 상경, 20대 후반에 서울대에서 근무할 수 있는 영광의 기회를 얻었다. 이 시기에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도 하고 아들 둘도 낳고 안전한 생활을 영위했다.
이제 필자에겐 안전, 애정 등의 단계를 넘어 자아실현을 이루기 위한 ‘자아실현 욕구(self-actualization)’가 남아있었다. 바로 대학 진학이었다. 당시 나는 다른 사람보다 잠재력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대학을 졸업하는 것만이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실크 로드 (Silk Road)’라고 생각했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대학 갈 방법이 생겼다. 바로 방송대였다. 어렵사리 1981년 3월에 방송대 행정학과에 입학, 1986년 2월에 졸업해 학사 출신 공무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이때 필자는 자부심과 성취감뿐 아니라 무엇이든 이룰 수 있겠다는 자신감마저 생겼다. 이를 계기로 방송대 졸업 후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과에 진학했다. 석사과정에서 평생교육을 전공하면서 일본어, 중국어 등을 배우는 등 직장과 배움이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끌면서 매진했다. 방송대는 나의 꿈을 실현하게 해 준 ‘비전 브리지’나 다름이 없었다.
서울대를 끝으로 공직 생활을 마치고 시간적 여유가 넘쳤다. 2016년 10월 15일부터 10월 24일까지 8박 10일간 서유럽 여행을 가게 됐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5개국을 도는 여행이었다. 이탈리아 ‘바티칸시국’은 독립 국가여서 엄격히 말하면 6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천국제공항에서부터 귀국할 때까지 인솔가이드가 함께하고 여행지에서 현지가이드도 함께하는 패키지여행이었다.
나는 여행을 다녀와서 『서유럽 여행길에서 만난 제국(帝國)의 흔적들』이라는 여행 후기를 발간해서 출판기념회까지 가졌다. 여행 후기는 서유럽의 역사와 문화, 예술과 명소를 소개한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필자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교과서나 말로만 듣던 ‘르네상스 문화’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문명의 꽃인 르네상스 문화의 흔적은 유럽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박물관에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브라만테, 베르니니 등의 걸작이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있었다. 천재적인 유럽의 예술가들이 남긴 걸작들 이외에 유럽 제국들이 약소 국가를 침략해 약탈한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는 것도 발견할 수 있었다.
여행 후기 에필로그에서 밝혔듯이 프랑스 출신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참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보다는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괴테도 ‘이탈리아 기행’에서 로마 여행에서의 삶은
‘제2의 탄생’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두 예술가의 주장은 여행이 인간의 의식을 일깨워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필자는 여행을 통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유럽 여행길에서 만난 제국(帝國)의 흔적들』은 그런 노력의 결실이다. 퇴직 후 짧은 기간이지만 책자로 펴낼 수 있었던 것은 모교인 방송대가 필자의 자아실현을 이루는 데 매개체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라고 자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