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제46회 방송대문학상

시는 뜻과 소리와 이미지의 복합체다. 시는 명료한 의미나 주제의식을 조직화한 리듬을 통해 흔든다. 공명이 일어나는 지점이다. 여기에 이미지를 입히면 트라이앵글과 같은 음역이 생겨난다. 시의 트라이앵글은 완벽한 삼각형을 이루지 않고 한쪽을 슬쩍 띄워 여백이 숨결처럼 들고나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저마다의 어조와 고유한 시선들이 활동할 수 있는 이 간극이야말로 독창성이 탄생하는 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심 진출작들은 밀도의 편차는 있으나 바로 이 지점에 대한 이해에 닿아 있는 수준작들이었다. 특히, 일상적 언어 운용 차원에서 비일상적 차원으로 옮겨오면서도 당대적 삶의 구체적 실감을 놓치지 않은 작품들이 발산하는 매혹을 거부하기 힘들었다는 고백으로 심사의 고충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가운데 재래의 아름다움에 투항하거나 낯설어지려는 욕망의 수사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작품들 그리고 필연성 없는 비문들과 번역투, 방법적 자각이 없는 산문의 자동적 이식, 육화에 이르지 못해 충분히 익지 않은 작품들을 먼저 제외했다. 그 결과 남은 김두훈의 「연필」, 서나루의 「찬 흰 언 먼 땅의 기별」, 정효은의 「위안」 그리고 박정주의 「진우예식장」을 두고 숙고에 들어갔다.


먼저, 「연필」은 사물을 알레고리화 해서 발화하는 개성적인 어조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과 불화하는 문장으로 제 몸을 깎아 나가는 사물의 슬픔” 같은 상투적인 구절과 “모질게 벼린 심지는 검은 눈물 찍기도 전에 안에서부터 자꾸 꺾이는데” 같은 감상적인 대목들이 퇴고 과정에 보다 더 치밀할 것을 주문한다. 「찬 흰 언 먼 땅의 기별」은 스케일이 크고 시상 확장력 또한 활달한 바가 있었으나 동봉한 시편들에서 자주 노출되는 직정적 진술과 조율되지 않은 이미지의 범람 그리고 맥 빠지는 비유들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가령, “스님처럼 슬픔을 초월하지 못해서” 같은 피상적 비유들을 성찰적으로 쓸 수 있을 때, “사랑은 인간에게 시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같은 평이한 마무리도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안」과 「진우예식장」을 두고 가능성과 완결성을 엿보았다.


「위안」은 첫머리의 예측가능한 진술을 뛰어넘는 감각적 묘사가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비닐봉지의 매듭으로부터 “작고 조용한, 머리에 리본 장식을 얹은,/ 숨을 나눠가진 반려동물”로 치환하는 상상력은 삶을 위무하는 따듯한 비애의 정조를 보여준다. 언어를 보다 압축하고 예각화해서 쓸 수 있다면 다른 자리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는다.


당선작 「진우예식장」은 독창성이 어떤 유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질감의 문제라는 인식을 뒷받침하는 지표다. 이 시는 서사와 이미지 그리고 스며드는 듯한 자연스러운 리듬과 어조로 시의 물리적 길이를 잊게 하는 시적 순간을 창조한다. 불가해한 삶을 성마르게 갈무리하지 않고 미해결의 장에 판단정지 시킴으로써 사막에 내린 어둠과 빛, 삶과 죽음의 명상이 교향곡처럼 펼쳐질 때 시는 완전히 파악되지 않은 채 해석의 구름들을 끝없이 피워올리는 비의의 공간을 선물한다. 삶을 소외시키는 수수께끼가 아니라 의문형의 희망으로서 시 앞에서 독자는 ‘또다시 여행자가 될 수’ 있다. 동봉한 시편 중 「박스활용법」 또한 미더웠다.   

       
저마다의 개성과 문제의식이 도달한 경지는 수준면에서 이 문학상이 현 단계 한국시의 풍요를 증명하면서 동시에 미래를 향한 투사의 자리임을 확인하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심사의 경험 자체가 하나의 미적 순례의 과정이었음을 기억해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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