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세기가 21세기에게

시대에 따라 의사-환자 관계의 양상이 변화하며, 기술이 고도화됨에 따라 전에 없던 딜레마나 새로운 법적·윤리적 문제가 대두된다. 이를 제대로 포착하고 충분히 논의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의사학(醫史學)과 생명의료윤리학으로 대표되는 인문의학적 고찰이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의학만큼 방대하고 역사가 깊으면서 인간의 삶과 죽음에 직접 관계되는 학문은 달리 없을 것이다. 인류는 매우 복잡한 신체를 갖추고 생로병사를 겪으며 기본적으로 이를 해명하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품기 때문이다. 상처를 핥거나 아픈 곳을 문지르거나 풀을 씹는 일종의 본능적 치유 행위는 동물에게서도 나타나지만, 인류는 이를 의식적으로 행하고 새로운 수단을 고안함으로써 의술을 탄생시켰다. 주술과 경험으로 시작된 의술[]은 문명의 발흥과 더불어 합리적 의학[醫]으로 거듭났고, 각각의 고대문명은 독자적인 의학을 품었다. 아유르베다(인도 전통 의학), 중국 전통 의학, 유나니 의학(그리스-아라비아 전통 의학) 등은 현재까지도 계승돼 활용되고 있다.서양 해부학의 근대성과 현대 의학현대 의학의 원류인 서양의학은 철학과 과학을 배양한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됐다. 기원전 5세기에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기원전 493∼433경)가 제창한 4원소설(공기, 물, 흙, 불)의 토대 위에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기원전 460∼370경)를 위시한 코스 학파와 크니도스 학파 등의 의학이 『히포크라테스 전집』으로 편찬돼 4원소에 상응하는 4체액(혈액, 점액, 흑담즙, 황담즙)의 불균형 때문에 질병이 발생한다는 설이 제창됐다. 기원전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는 헤로필로스(Herophilos, 기원전 330∼260경)와 에라시스트라투스(Erasistratus, 기원전 315∼240경)가 인체 해부를 통해 그 구조와 기능을 탐구하는 해부학과 생리학을 싹틔웠다.고대 그리스 의학을 이어받은 고대 로마의 갈레노스(Galenos, 129∼216경)는 고대 서양의학을 집대성하고 이론을 체계화했다. 액체병리학에 기초한 그의 의학은 해부병리학이 등장하는 18세기까지 확고한 지위를 누리게 된다. 서로마제국 멸망 후 고대 서양의학은 아라비아에서 재편성됐는데, 그 대표 격인 이븐 시나(Ibn Sina, 980∼1037)의 『의학정전』은 라틴어로 번역돼 유럽에서도 의학 교재로 널리 쓰였다. 유럽의 의학교육은 10세기 말 이탈리아의 살레르노(Salerno) 의학교에서 시작됐고, 13세기경부터는 대학이 설립돼 몽펠리에, 파리, 볼로냐, 파도바 등지의 의학부에서 이론과 실지 교육이 병행됐다.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사례를 제외하면, 인체 해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2세기 이후였다. 갈레노스 이래 인체 해부학의 기나긴 답보 상태를 타개한 인물이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다. 그는 인체 해부를 직접 시행하고 관찰 결과를 정확하게 기록함으로써(『인체 구조에 관하여』(1543)) 경험적 의료와 추론적 고찰로 이뤄진 기존의 서양의학에 ‘과학적 탐구(scientific investigation)’라는 요소를 가미했다. 이러한 해부학의 ‘근대성’은 나아가 기초의학을 형성하고 임상의학에 침투해 의학 전 분야로 파급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서양의학은 여타 전통 의학과는 달리 현대 의학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인체의 구조(해부학)에 관한 올바른 지식과 새로운 발견은 인체의 기능(생리학)과 병소(병리학)에 관한 이해를 심화시켰다. 17세기에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는 해부학적 관찰, 정량적 실험, 수학적 계산에 기초해 ‘혈액이 심장의 박동을 통해 전신을 순환한다’라는 것을 논증함으로써 생리학 혁명을 일으켰다. 18세기에 조반니 바티스타 모르가니(Giovanni Battista Morgagni, 1682∼1771)는 수많은 임상과 부검 경험을 쌓고 이 두 가지의 관련성을 입증함으로써 질병을 국소 부위의 병변으로 실체화하는 해부병리학을 탄생시켰다. 이로써 거의 2천년 가까이 신성시됐던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 중심의 서양 전통 의학은 막을 내렸다.생명과학과 과학기술의 발달19세기에 들어서는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외에 약리학, 생화학, 미생물학 등의 분야가 과학적 탐구의 대상에 편입돼 기초의학의 학과들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임상의학은 기존의 내과와 외과에 더해 안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소아과, 정신과 등의 진료과가 탄생하며 세분화됐는데, 19세기 중반에 마취법과 소독법이 개발되면서 외과수술의 안전성과 확장성이 크게 높아졌다. 종두법(우두법)을 확립한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1823), 콜레라의 전파 경로를 추적한 존 스노(John Snow, 1813∼1858),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부정하고 탄저 등의 예방접종법을 발견한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 세균학적 실험 기법을 확립하고 여러 세균성 병원체를 발견한 로베르트 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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