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계묘년의 주인공은 토끼다. 토끼는 십이지 띠동물 가운데 넷째로 을묘(乙卯), 정묘(丁卯),기묘(己卯),신묘(辛卯),계묘(癸卯)의 순으로 육십갑자가 순환한다. 십이지의 토끼[卯]는 방향으로는 정동(正東), 시간으로는 오전 5시에서 7시 즉, 해가 떠오르는 시간과 방위를 지키는 시간신과 방위신이다.
토끼는 장수의 상징이며, 달의 정령이다. 조그맣고 귀여운 생김새, 놀란 듯이 쫑긋 세운 양쪽 귀를 가져 연약하고 선한 동물로 보이지만, 토끼는 영특하고 슬기로운 꾀보, 꾀쟁이다. 옛사람들은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계수나무 아래에서 불로장생의 약 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의 모습을 그리며, 토끼처럼 천년만년 평화롭게 풍요로운 세계에서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살고 싶은 이상세계(理想世界 를 꿈꾸어 왔다.
달의 정령이자 장수의 상징
토끼는 달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토끼는 달 속 계수나무 아래에서 불로장생의 약방아를 찧고 있다. 계수나무는 아무리 잘라도 잘라도 다시 살아나는 불사목(不死木)이다.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는 토끼는 불로장생의 영약을 만드는 존재이자 불로장생 그 자체의 상징이다. 「토끼전」에서는 불로장생의 영약으로 여겨지는 토끼의 간을 구하려고 별주부가 목숨을 걸고 찾고 다니는 이야기가 나온다. 토끼는 장생의 선약을 찧어 만드는 존재일 뿐 아니라 천년을 사는 영물로 알려져 있다. 토끼는 달의 정령이자 장수의 상징이다.
불교 설화에서 토끼는 부처의 전생인 제석환인을 위해 스스로를 소신공양한 자기희생의 상징으로 묘사되고 있다. 옛날 누가 진실로 보살도를 닦고 있는지 시험하고자 제석환인이 노인으로 변신해 여우, 원숭이, 토끼에게 먹을 것을 청했다. 여우는 생선을, 원숭이는 과일을 가져왔으나, 빈손으로 돌아온 토끼는 불 속에 제 몸을 던져 제석환인을 공양했다. 불교에서 최고의 공양으로 여겨지는 소신공양을 통해 달에 그려진 토끼는 후세의 본이 될 자기희생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됐다. 불교에서 토끼는 불사(不死)와 공(空), 토보살의 상서로운 존재다. 토끼는 소신공양한 자기희생의 상징이다.
이제 달 속에서 불로장생의 약방아를 찧던 이야기 속의 토끼는 사라졌지만, 실제 토끼와 인간과의 교감은 애완용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토끼는 생명공학을 위한 희생으로 인간을 대신해 실험대 위에 오른다. 사육이 쉽고, 번식이 빨라 유전자 형질전환 실험에 토끼가 쓰인다. 토끼는 실험동물로서 유용하고 약품의 독성시험이나 면역학적 실험에 많이 쓰이고 있다. 토끼는 ‘용왕구하기’ 대신에 현대판 ‘인류구하기’를 하고 있다.
영웅적 속임수의 명수
옛날이야기에서 토끼는 힘이 약하고 몸집이 작은 것에 반비례해 매우 영특하고 착한 동물로 그려진다. 토끼는 체구가 크고 힘은 강하나 우둔한 동물들에게 저항하는 의롭고 꾀 많은 동물 구실을 도맡아 한다.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또 다른 소재인 호랑이 등의 맹수에 비하면 토끼는 분명 약한 동물이다. 그러나 자신이 지닌 꾀와 영리함으로 다른 강한 동물에게 지거나 이용당하지 않고 오히려 이용함으로써 골탕을 먹이는 존재이기도 하다.
토끼는 남을 해살하지 않는 심성 때문에 곧잘 평범한 서민이나 백성들로 비유된다. 토끼를 민중으로 호랑이를 양반이나 관리로 빗대어 표현한다. 호랑이는 권력이나 지위를 앞세운 탐관오리나 양반을 빗대고, 토끼는 그 반대쪽 입장에서 밟히고 시달려야 하는 서민이다. 약한 백성이 강한 존재들을 이기는 방법은 곧, 지혜다. 토끼가 호랑이를 골탕 먹인 것은 양반이나 나쁜 관리들에 대한 백성들의 마음속 반란이다. 토끼 이야기는 백성들의 강한 저항 의식과 삶의 지혜가 결집돼 있다.
자라의 꾐에 빠져 경황없이 용궁 속으로 따라갔다가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자기의 간을 꺼내려 한다는 것을 눈치챈 토끼가 기지를 발휘하는 대목은 토끼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자신의 간을 배밖에 내놓았다가 필요할 때만 넣고 다닌다는 얘기로 용왕을 속이는 토끼의 재치는 기발하기 이를 데 없다. 교토삼굴(狡兎三窟), ‘교활한 토끼는 굴이 셋이다’라는 말이 있다. 꾀 많은 토끼가 굴 셋을 연결해서 비상시에 이용하듯이, 무슨 일을 하든지 비상 대책을 세워서 안전하게 해야 한다.
턱시도에 타이를 맨 플레이보이
토끼는 귀가 쫑긋하고, 입은 째졌고, 꼬리가 짧으며, 깡충깡충 뛰는 뜀박질이 경쾌하고 빠르다. 귀여움, 영리함, 신속함이 토끼의 공통된 특징이다. 이 때문에 토끼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동물 중 하나이고 일찍부터 각국의 캐릭터로 사랑받아왔다. 어린 시절 부르던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의 동요 「반달」에 투영된 토끼의 모습은 유아용품이나 초등학생들의 학용품 캐릭터로도 나타난다.
토끼는 다산의 동물이다. 왕성한 번식력의 토끼의 특성을 감안했는지는 모르나 미국 유명 성인잡지 〈플레이보이(Playboy)〉의 로고가 ‘턱시도 타이를 매고 귀를 쫑긋 세운 토끼’다. 이 플레이보이 토끼 로고는 디자인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인기 많은 로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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