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프리즘

지난 가을, 학과장이라고 ‘I Love 방송대 마라톤 축제’에 갔다가 지하철역에서부터 50대 학우님 두 분이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봤다. 마침 방향도 같아서 어떤 사이냐고 여쭸더니, 방송대에 와서 공부하다가 친구가 됐다고 하시면서 까르르 웃으신다. 그 모습이 참 정겨워 보였다.


우리는 선한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 한다. 아름다운 친구 관계에도 가능만 하다면, A+를 줄 수 있을까? 만약 춘추 시기였다면 이것이 실현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공자의 제자였던 자하(子夏)는, “남들은 못 배웠다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높은 점수를 주겠다”라며 남다른 평가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당시로서 당연했을 부모님과 군주 섬기기도 있지만, ‘현명한 사람을 현명하게 대하기’와 ‘친구와 의리 지키기’가 거기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작년을 되돌아보니, 역시 정신없이 보낸 한 해였다. 생각은 많았고, 이룬 것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핑계도 한 가득이다. 부모님은 연로하셨고, 집안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변고가 닥치기도 했다. 노안은 본격화됐고, 집중력도 근력도 떨어졌다. 벌여 놓은 일은 수습될 기미가 없이 오히려 점점 늘어만 갔다.

 

공자가 주장했던 공부는 현명해지기 위한 공부,

친구와 의리를 더 잘 지키게 해 줄 공부였을 것이다.
바로 이런 공부를 지향하는 방송대에 몸 담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자부심이다.


지금까지의 나는 남들에 비해 시험을 비교적 잘 보는 사람이었고, 그러다 보니 어쩌다 가르치는 입장에 있지만, 실은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천지다.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꾸역꾸역 늘 공부하는 인간이고자 한다. 공부하지 않으면, 강의하면서 바로 표시가 난다. 학생의 눈에 어리는 만족감, 그것이야말로 내가 공부를 제대로 했는가에 대한 가장 준엄한 평가 기준이다. 사실 점수로 받는 평가 기준은 따로 있다. 그런데, 나는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해 부끄러웠을 때에 더 높은 점수를 받았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도처에 평가의 딜레마에 갇혀 있다.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이 더 높은 점수를 받으면 좋겠지만, 그럴 도리는 없다는 딜레마다. 가족과 사회에 성실하고 봉사하는 이들을 누구라도 높이 사 주고 싶지만, 그렇다고 좋은 점수를 줄 방법은 없다. 반면, 이기적이고 못 된 인성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하나라도 더 풀면 높은 점수를 받는다. 이렇다 보니, 공부한 사람이나 엘리트에 대한 기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대학을 충분히 갈 수 있음에도 자발적으로 가지 않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전국의 수험생들과 그 가족들은 오늘도 오매불망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에 매달린다. 내친 김에, 자하의 스승이었던 공자의 말씀을 요샛말로 한번 옮겨보자. 내가 별 짓 다 해 가며 생각해 봤는데, 역시 공부야! (궁금하신 분은 논어 위령공 편을 펴 보시라, 공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종일 밥을 안 먹고 밤새 잠을 안 자고 생각해 봤지만, 아무 소득이 없더라. 공부하는 만 못하다; 子曰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 이밖에도 공부와 관련된 어록이 하도 많아서, 이쯤 되면 공자를 이 시대 평생학습의 아이콘으로 모셔야 하지 않나 싶다.


공자가 주장했던 공부는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현명해지기 위한 공부요, 친구와 의리를 더 잘 지키게 해 줄 공부였을 것이다. 바로 이런 공부를 지향하는 방송대에 몸 담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자부심이다.


그러나 시스템 상으로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2023년, 더 겸허한 자세로 이를 고쳐 나가야 할 일이다. 우리 사회가 최소한 2천700년 전인 춘추 시기보다는 나아져야 하지 않을까.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발걸음을 방송대가 힘차게 내디딜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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