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의 시간은 한 세대가 훌쩍 넘는 세월을 담고 있다. 1985년 3월 대전대 전임강사로 강단에 올라 1994년 방송대에 부임한 이래 ‘영어교육자’로 살아온 이동국 교수가 2월 정년퇴임한다. 격변의 시기인 2014년에는 부총장으로 총장직무대행을 맡아 방송대를 이끌기도 했던 이 교수는 2년 전부터는 ‘독서클럽’도 운영하기 시작해 학우들과 함께 ‘아동영어책 읽기’를 실천하고 있다. 9일 오후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저는 운 좋게도 교수를 일찍 시작해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었어요. 판사는 사람들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의사는 사람들을 살리지 못하기도 해서 마음이 아플 수 있습니다. 후학들을 지도하는 교수라는 가장 좋은 직업으로 정년을 하게 되어 기쁩니다.”
이동국 교수의 첫마디는 ‘운 좋게도’였다. 대학 설립이 늘면서 대학원 진학자도 많아졌는데, 이 교수도 그런 흐름 속에 놓여 있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는 「고대영어의 어휘 형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원래 그는 사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영어영문학과를 선택했다. 그의 전공은 영어사인데, 특히 고대영어는 역사학적 접근이 가능한 영역이어서 적성과 전공의 교집합을 찾을 수 있었다.
방송대는 공부를 하고 싶어
스스로 선택한 학우들이 많다는 점이
일반 대학과 차이나는 가장 큰 장점이거든요.
성적에 구애받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영어학, 전공과 적성의 교집합
“제가 가장 존경하는 대학 지도교수님의 영향을 받아 당시 학자들이 잘 연구하지 않는 고대영어를 전공하게 된 것도 행운이었어요. 영어의 현재 모습은 과거의 기록 속에 남아 있거든요. 철자, 문법, 발음 등의 모든 분야에서 역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무궁무진합니다. 이를 교육적 관점에서 강의에 담아내려고 노력했는데,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90점은 줄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역사학을 전공하고 싶었던 이 교수는 영어사에서 ‘전공과 적성의 교집합’을 찾아냈으니, 고대영어 연구라는 독특한 외길이 즐겁지 않을 수 없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은 인생의 선택, 그리고 선택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의 의미를 말할 때 자주 호명되는 작품이다. 대개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길’을 걸었다면 하고 아쉬움을 남기는데, 이 교수는 흥미로운 대답을 내놨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봅니다. 어느 길을 택하더라도 의미가 있을 겁니다. 저에겐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가장 적성에 맞으니, 아마도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일반 대학에서 파릇파릇한 청년들을 가르치다 방송대에서 2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성인 학우들을 가르쳤으니, 그에게도 교육자로서 보람을 느꼈던 순간들이 많았을 게다. 사실 그가 방송대로 옮겨오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은 ‘엄청난 수의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자신을 ‘영어교육자’라고 강조하는 이 교수는 나름대로 정리한 영어교육법을 가능한 많은 학우들에게 전파하는 데 무게를 실었다.
“평생학습이 대세이듯 공부에는 정해진 나이가 없잖아요. 배움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넘치는 학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보람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한 두 개로 콕 찍어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출석수업을 마치고 학우들이 집에서 쪄온 옥수수를 올라가는 기차에서 먹으라고 주던 일, 밤새 손수 만든 손수건을 건네주던 일이 어제 같기만 합니다. 배움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었던 거죠. 그런 뜨거운 마음을 전달받았던 여러 기억들을 가슴에 안고 가겠습니다.”
여러 보직을 거쳤지만, 이 교수는 프라임칼리지에 애정이 깊다. 프라임칼리지 학장을 맡았을 때나, 부총장으로 있을 때나 그는 한결같이 필요한 전문지식이나 다양한 실용적인 콘텐츠에 접할 수 있는 프라임칼리지의 학위과정과 평생교육과정에 관심 가져 줄 것을 강조했다. 그가 맡아 운영하고 있는 ‘영어 어휘력 특강: 올바른 영어단어 학습법’은 지금도 인기 강좌로 유명하다.
2020년부터 ‘독서클럽’ 시작한 이유
영어영문학과 학부와 실용영어학과 대학원에서 두루 가르쳐왔지만, 2년 전부터는 조금 다른 일에도 눈을 돌려 에너지를 쏟고 있다. 아동영어책 읽기 독서클럽이다.
“방송대에서 30년 가까이 강의를 해 왔지만, 학교 특성상 얼굴을 보면서 교수와 학생이 지속해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습니다. 그간 방송대로부터 받았던 혜택을 조금이나마 돌려드릴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동영어책 독서반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 2020년부터 독서클럽을 운영하기 시작한 거죠. 아동영어에 관심 있는 분들이 모여 책을 읽는 모임입니다.”
독서클럽이다 보니 적정 인원으로 운영해야 하기에, 희망자들을 놓고 ‘선발’을 거치는 방식을 도입했다. 현재 6기까지 200명 이상의 학우들이 참여해 ‘함께 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도 이 교수는 다시 한 번 ‘방송대의 힘’을 확인했다. “방송대에 영어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학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하고 있어요. 방송대에 재직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꼽으라면, 바로 이 독서클럽을 만든 것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교수가 대표를 맡고 있는 비영리 사단법인 ‘지식과 희망나눔’에서는 스토리텔링 재능기부 활동을 하고 있다. 영어유치원 등 사교육 비용이 엄청난 현실에서 영어책 읽기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활동이다.
그는 학기초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늘 학우들에게 ‘방송대는 다른 대학처럼 정해진 기간에 교과과정을 이수해야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1~2년 더 다니는 것이 정상적이다’라고 당부해왔다. 학자로서, 연구자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살아온 38년을 정리하면서 그가 방송대 학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성적 구애받지 말고 즐겁게 공부하길”
“방송대를 선택한 학우들은 학업, 직장, 가정을 병행해야 하므로 계획을 잘 세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의 과목을 이수하는 것이 좋습니다. 학점을 잘 받지 못했거나 몇 과목 낙제했다고 해서 중도에 포기하는 것은 평생교육기관이라는 우리 대학의 특성을 잘 모르고 하는 일입니다. 방송대는 공부를 하고 싶어 스스로 선택한 학우들이 많다는 점이 일반 대학과 차이나는 가장 큰 장점이거든요. 성적에 구애받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퇴임 후 자신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곳에 서 봉사하겠다고 말하는 이 교수는 대표로 있는 ‘지식과 희망나눔’의 사업을 좀더 활발하게 전개할 구상을 하고 있다. 방송대 학우들과 영어에 관한 주제로 소규모 연구모임도 만들고, 독서클럽도 여건이 허락되는 한 계속 이어갈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새로운 50년을 막 시작한 방송대에 대해서도 각별한 부탁을 아끼지 않았다.
“주위 상황은 모든 분들이 다 비슷하게 느끼고 있을 거예요. 올해 입시는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상당히 선방한 것 같으나 앞으로도 지속될지는 알 수 없어요. 원격교육은 우리대학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사회와 환경이 변화해 학습의 선호분야도 바뀌고 있어요. 전통적인 학과가 많은 우리 대학은 학우들의 니즈에 맞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학생친화적인 교육시스템을 갖춰 나가야 할 것입니다. 유연성이 큰 프라임칼리지를 보다 더 적극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고요. 우리대학은 50년 동안 우리나라의 원격평생교육을 선도해온 대학으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방송대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그날이 꼭 올 것이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