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닫고 귀를 여는 역량이 부족한
‘동네아재’임을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내일 죽을 것처럼 꿈꾸고, 영원히 살 것처럼
공부하라고 하니 또 공부할 밖에요.
퇴직준비 교육기간이라 혜화역 2번 출구를 매일 오르지 않아도 된 지 30여일 됐습니다. 둥근 아치가 멋진 예술가의 집과 고풍스러운 목조건물인 방송대 역사기록관을 매일 만나지 못한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이제 동네에서 지내야 합니다. 이곳에서 사는 방법은 이전의 태도와 소통 방식과는 반대로 해야 하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죠. 안타깝지만 이 상황은 꿈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지금까지의 지내 온 곳에서는 조직의 미션을 효율적으로 이뤄내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분업화된 일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사업방향, 구체적 사업 내용, 추진계획, 예산, 일정, 장애요인과 극복방안이 주요 의제이고, 소통 방식의 핵심은 생산성이었습니다. 그래서 회의 시간은 짧아야 하고 내용은 늘 목적을 향해 벗어나지 않도록 집중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조직에서의 소통은 늘 섬세하지 못하고 거칠어 아쉬움을 느끼지만 이럴 수밖에 없다고 수긍한 것은 빠르게 결론을 찾는 방법의 하나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네는 달랐습니다. 비효율적, 비생산적, 비목적적, 비맥락적인 길고 나른한 대화가 흐르는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어느 일에선 경영의 대상이기도 하고 경영자이기도 했던 곳에서 갖춰야 할 역량인, 짧고 명확하고 분명한 말을 해야 하는 태도는 이 동네에서 생존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그래서 결론은 뭔데, 지금 하고 싶은 말은 뭐지”하며 조직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질문을 토하듯 뱉고 나니 눈총받는 ‘꼰대아재’ 목록에 새겨져 더는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에 초대받지 못하는 처지가 될 것이라는 경고를 듣게 됩니다. 특히 여기는 직장이 아니라는 아내의 안쓰러운 지적은 이 동네에서 생존이 어렵겠다는 위기까지 느끼게 합니다.
이상한 나라인 이 동네에서 살아내고야 말겠습니다. 그래서 새해 다짐을 해봅니다. 이제 나는 더 모르는 사람이 돼야겠습니다. 조금 아는 것은 모른다고 쉽게 말을 하며 입을 닫아야겠습니다. 그리해야 귀를 열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상대방이 말을 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이 동네의 소통법이라고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일을 위해 지식과 정보를 나누는 말을 하며 조금이라도 아는 게 있으면 다 아는 것처럼 떠벌리며 상대방의 마음이 어떤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은 내 말에 동의를 해야만 하는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즉시 버려야 할 습관이죠. 입을 닫고 귀를 여는 역량이 부족한 ‘동네아재’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내일 죽을 것처럼 꿈꾸고, 영원히 살 것처럼 공부하라고 하니 또 공부할 밖에요.
한 시사평론가는 “내 생각은 언제나 옳고, 당신들의 생각은 언제나 틀리다는 태도로는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없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당신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서로 간의 소통도 가능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익혀두어야 할, 동네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죠.
이제 제목에 있는 ‘남관나악’에 대해서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오래전에 활동했던 동호회에서 회원 중 한 분이 사용하던 별명입니다. 사자성어인 듯해 검색해보아도 나오지 않아 의미를 물어보았는데 그 뜻이 “남에게
관대하고 나에게 악하게 하자”라는 말의 줄임말이라고 하더군요. 그 의미가 제 마음에 들어 20여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가끔 되새기게 됩니다.
미국의 저술가인 쿨렌 하이타워(Cullen Hightower)는 “자신의 실수를 비웃으면 삶이 길어질 것이요, 남의 실수를 비웃으면 삶이 단축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생명도 연장된다고 하니 ‘남관나악’, 더욱 잊지 말자고 새해 다짐으로 더 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