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정년퇴임 교수에게 듣다

많은 방송대 학우들이 원격 학습방식이 생소해 처음엔 입학을 망설이곤 한다.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2월 정년퇴임 하는 이혜령 교수(문화교양학과)는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려 32년 전 방송대 교수 공채에 지원하던 때를 떠올렸다.


“박사 학위를 마치고 방송대에 교수로 지원하려고 보니 걱정도 참 많았어요. 교육방식이 일반대학처럼 대면이 아니라 원격이라서 그에 잘 맞출 수 있을지 걱정됐죠. 방송대에 온 것이 1991년이었는데, 오디오 강의에서 비디오·TV 강의로 매체가 막 전환되기 시작되던 무렵이었어요. 그때 처음 교수 임용에 카메라테스트가 도입됐어요. 짧은 시간 동안 준비한 강의내용을 영상으로 촬영해서 심사받았죠. 물론 지금처럼 조명이 갖춰진 스튜디오에서 긴 시간 PPT까지 띄어가면서 하는 카메라테스트와는 격세지감이 있지만요.”

여러 변화 거쳐 문화교양학과 탄생까지
그는 방송대 교양 관련 조직들의 변천들을 모두 지켜본 교수다. 이 교수는 당초 방송대 교양 과목 전담 부서였던 교양학과로 부임했다. 교양학과는 수년 후 교양과정부로 바뀌었다.


“제 교수 생활 초기엔 학과가 그다지 많지 않았어요. 지금은 24개인데 당시는 그 절반밖에 안 됐죠. 교양학과 소속으로 6명의 교수가 있었어요. 교양 과목이 30여 개 됐는데 교양학과 교수와 우리 대학의 타 학과 교수, 또 외부 강사들이 맡아서 운영했어요. 종합대 체제를 위해서 방송대 학과들이 학부체제로 편제되면서 인문과학부·사회과학부·자연과학부·교육과학부 그리고 교양과정부가 조직됐죠. 이 때 교양과정부는 다른 학과 교수들도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만들어 운영의 저변을 넓히고자 했습니다. 우여곡절도 있었어요. 1999년에 행정 착오로 교육부에 방송대 4개 학부만 보고되면서 교양과정부는 정규 교육 조직에서 빠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2001년 비교육기구인 교양교육원이 생겼습니다.”


2004년에 이 교수는 문화교양학과로 소속을 바꾸게 된다. 교양과정부가 교육조직에서 배제되면 서 교양교육 조직체계 개편과 함께 학과 신설에 대한 논의가 부상했다. 교양교육원 교수들이 문화교양학과의 개설을 제안했고 학교에서 이를 수용한 것이다. 문화교양학과는 2004년부터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그리고 문화·예술 분야까지 포괄하는 심화된 교양교육을 담당하며, 별도 소속 학생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문화교양학과 출범 당시 학내에서 우려가 많았어요. 직업 지향적인 경쟁 시대에 전공 영역도 분명하지 않고 취업 훈련과는 무관한 교양교육만 하는 학과가 과연 유지될 수 있겠냐는 것이었지요. 한편으로 교양교육이야말로 우리 대학의 교육이념인 평생교육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분야라는 지지도 없지 않았어요. 그런데 개설 이후 문화교양학과는 조용하지만 꾸준한 성장을 보이고 있어요. 학생들도 새롭게 인생을 도모하려는 자세와 함께, 비교적 양호한 학습 태도 및 안정된 학업 지속률을 보이고 있구요. 우리 대학이 ‘성인들의 평생교육의 장’이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리고 풍부하고 다양한 교양교육에 대한 사회의 광범위한 관심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꿈결 같은 역사 이야기에 매력 느껴
이 교수는 교양 과목인「세계의역사」,「동서양고전의이해」와 문화교양학과 전공 과목인「유럽바로알기」,「인물로본 문화」,「여성의삶과문화」,「근대화와동서양」,「제3세계의역사와문화」를 담당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고등학생 시절 ‘어느 날 문득’ 생겼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사와 세계사를 배웠는데 많이 졸았어요. 어느 날도 졸다가 깼는데 바빌론, 아시리아 이런 얘기였어요. 좀 따분한 내용일 수도 있는데 마치 꿈결에 들려오는 재밌고 달콤한 이야기처럼 들렸어요. 그때부터 역사에 흥미를 느꼈어요. 당시 담임 선생님이 국사를 가르치셨고 3학년 때에는 세계사 과목을 담당하셨는데, 그 영향도 있었던 것 같고요. 대학 1학년 때는 인문계로 들어갔고 2학년에 진입하면서 학과를 골라야 했어요. 국사·동양사·서양사 중에서 유럽어를 하는 서양사 쪽에 관심이 갔어요.”


이 교수는 학부 때는 서양 중세도시에 흥미를 느꼈지만, 석사 과정에서는 프랑스사로 연구 영역을 좁히면서 19세기 정치사회사를 다뤘다. 박사 과정에 들어가면서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특히 장-쟈끄 루소를 연구 주제로 설정하게 된다.


“루소는 굉장히 복잡 모호하고 모순된 면이 있는 사람이지요. 루소가 민중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혁명적인 사상가로 불리지만, 그렇게만 볼 수 없는 것 같아요. 요즘으로 치면 루소는 작가였는데요, 소설도 쓰고, 음악도 만들고, 자서전에선 자기 자신을 많이 꾸며내 보여주기도 했거든요. 또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꾸면서 그에 합당한 인간형을 모색하기도 했지요. 그런가 하면 공동체의 성격을 너무 폐쇄적으로 설정하면서 자신이 구상한 체제의 미래에 대해서 비관하는 자가당착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 저작들의 대부분이 베스트셀러가 돼서, 그 시대 뿐 아니라 이후에도 계속 읽혔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면서 역사를 바꿔나가는 작용을 한 것이지요. 지금도 루소가 제기했던 문제들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고 계속 새롭게 해석되고 있어요. 나는 프랑스사 연구자라는 정체성에 너무 집착해서 루소를 다양하게 보지 못했던 거 같아요. 퇴임 후에 강박관념 없이 연구해보려고 합니다.”

남은 과제, 교양 과정 체제 개선 필요
마지막으로 방송대 교양 교육을 담당하고 그 변화를 경험한 교수로서 쓴 소리 한 마디를 남겼다.
“무엇보다 교양교육에 대한 대학 구성원들의 이해 부족과 입장의 충돌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교양교육은 자유로운 정신과 비판적 사고력을 갖춘 시민의 양성을 추구하면서, 대학 재학 중의 학습능력 뿐 아니라 사회 진출 이후의 비판과 판단 및 선택에 필요한 저변의 지식과 능력을 연마하는 교육입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어려워하고 이수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교양교육과정을 비난하는 시선도 있어요. 반면 교양교육에 대한 배려는 턱없이 부족할 뿐입니다. 다른 일반 대학을 보면 기초교육원 같은 교양 전담 부서가 있고, 그 소속 전임 교수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방송대 교양교육원은 소속 교수도 없이 교양 과목들을 관리·운영하기만 하는 운영기구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상당수 교과목은 문화교양학과에서 관리합니다. 학교가 교양 수업의 질을 생각한다면 체계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김민선 기자 minsunkim@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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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jse***
    교수님 말씀에 깊이 동감합니다. 교양이, 인문이 터부시되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제가 다시 도전하고 싶은 학과가 문화교양학과입니다.
    2023-03-16 11:23:30
  • sony***
    교수님~ 메인에 교수님 얼굴이 떠서 들어와보니 퇴임인사 인터뷰셨네요, ㅜ 제 졸업논문심사해주시고 세계의 역사를 비롯한 강의들 참 흥미 잃지않도록 열의를 다하시면서 가르쳐주셨는데 퇴임하신다니 너무너무 아쉽습니다. 교수님~ 건강하시고~ 좋은 자리에서 또 뵙길 희망합니다.
    2023-02-17 12:14:35
  • jst3***
    이혜령 교수님 강의 '세계의 역사' 강의에서 A+학점 받은 수강생입니다. 더 일하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2023-02-16 00:04:51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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