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니스

나는 「강성남의 그노시스」 칼럼을 쓸 때마다 검색이 가능한 나만의 ‘독서 사전’을 활용한다. 수십 년간 축적한 독서 노트에는 검색 불능의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구글에서 검색이 안 되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는 챗지피티(Chat GPT)의 등장으로 사그라들 상황이다. 구글이 놓치는 것을 챗지피티가 발견해 알려준다. 내가 종종 이용하는 구글의 검색창 ‘책한테 말해(Talk to Books)’ 덕에 영어 원서구매 비용이 확 줄었는데, 고맙게 생각한다. 지식 혁명은 텍스트에 대한 검색기능의 발달에 기인한다.


챗지피티의 열풍이 주는 의미는 한 마디로 지식획득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점일 것이다. 파피루스와 양피지, 종이를 거쳐 디지털 정보를 통해 지식을 얻는 일이 인공지능에 의존하는 상황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정보에 대한 갈구는 인류에게 세상이 바뀌는 과정에서도 한치 흩뜨림 없이 지속돼 왔다. 정보 그 자체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이동하려면 반드시 운반체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매체(media)’라 부른다. 우리는 이 매체를 통해 정보와 지식을 얻는다. 인류 역사의 진보는 매체의 진화로 이해된다.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표현을 만든 H.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단정한 이유다.


중세 이탈리아 피렌체에서의 미디어 제작과정(『피렌체 서점 이야기』, 로스 킹 지음, 최파일 옮김, 책과함께, 2023)을 보자. 양피지 필사본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본 텍스트 확보가 우선이다. 여기에 혁혁한 기여자 중에는 필경사, 학자로서 교황청 사무국(Curia Romana)에서 일했던 포조 브라촐리니가 있다. 그는 로마 작가 키케로, 루크레티우스의 작품(『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등을 찾아냈다. 이 책을 찾아낸 1417년을, 스티븐 그린블랫은 ‘근대의 탄생’ 시점으로 보기도 한다.


다음은 양피지의 재료인 가죽을 구하는 일인데, 단테가 애인을 만났다는 피렌체 베키오 다리에 있는 도축업자가 가죽을 팔았다. 가장 아름답고 값비싼 재료는 벨럼(vellum)이란 송아지 가죽이다. 어린 송아지 가죽은 백지처럼 희다. 양피지 공급은 이탈리아의 왕성한 육식 욕망 때문에 가능했다. 수백 년 동안 지식 전달은 식욕 성향과 훌륭한 축산업에 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중세 이탈리아에서는 책을 가리켜

 ‘정신의 자식’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정신의 자식이 책에서
챗지피티로 옮겨가고 있다.
인공지능에 정신은 없는데도
말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불행하게도 최초의 인쇄기였던 구텐베르크의 실제 인쇄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기는 16세기 중반에 제작됐으며 인쇄기에 대한 최초의 삽화는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한 지 거의 50년이 지난 1499년에 제작된 La Grant Danse Macabre에서야 볼 수 있다.


깃펜은 거위의 날개깃으로 만들었는데, 펜(pen)은 ‘깃털’을 뜻하는 라틴어 penna에서 유래한 말이다. 수제잉크 제조과정도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잉크 원료를 불에 얹고 ‘미제레레(Miserere: 라틴어로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 구약성경 시편 51편)’ 한 번 암송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 끓였다. 이후엔 필경사가 필사한다.


양피지 제작과정이 이처럼 험난함에도 파피루스와 경쟁에서 승리한 이유는 양피지가 페이지를 매겨 검색이 쉬웠기 때문이다. 파피루스는 두루마리 형태여서 검색하기 어려웠다. 두루마리는 세로 23~25cm, 다 펼치면 가로 9m에 달했다.


이후에 금속활자가 발명되고 구텐베르크가 한쪽 끝에 글자가 거꾸로 돋을새김이 된 강철 막대인 펀치라는 도구로 활자를 만들었다. 필경사가 깃펜을 몇 번 놀리면 될 우아한 형상을 금속 장인이 강철금속에 고생스레 글자를 새기고 양각으로 깎는 정교한 작업을 했다. 강철 끄트머리는 구리판에 놓고 두들겨 제대로 된 글자 자국을 남긴다. 글자가 박힌 이 작고 납작한 구리 토막을 ‘매트릭스’라고 불렀다. 라틴어 어머니(mater)와 어원상 연관된 이 단어는 자궁을 뜻하는 라틴어 매트릭스(matrix)에서 온 말이다. 움푹 파인 작은 공동(空洞)이 글자가 탄생하고 만들어지는 곳이란 점에 착안한 기발한 은유적 조어다. 클리셰(cliche), 스테레오 타입(stereotype) 등도 인쇄 연판(鉛版)에서 출발한 말이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필사보다 100배 이상 빠른 속도를 자랑했다. 지식확산이 급속도로 진전한 이유다. 여기에 철도의 발달도 한몫했다. 중세 이탈리아에서는 책을 가리켜 ‘정신의 자식’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정보 확산 속도는 인쇄 책이 기차라면 디지털 정보는 광속이다. 정신의 자식이 책에서 챗지피티로 옮겨가고 있다. 인공지능에 정신은 없는데도 말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학자는 독서로 많은 지식을 얻은 사람이다. 교육받은 사람은 당대에 가장 널리 보급된 지식과 수단을 자기 것으로 만든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의 자유에 도움 되는 지식만이 진정한 지식이다. 그리고 스스로 사유해서 얻은 지식만이 인간 지성에 흔적을 남기고 인간을 이끄는 지침이 될 것이다. 그리스어에서 ‘지식’을 뜻하는 단어가 네 개 있다. 아는 대상이 다르기에 별개의 개념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과연 어떤 대상에 관한 지식을 찾고 있는가? 찾으라, 찾을 것이다. 검색 혁명이 새로운 지식의 창을 열고 있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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