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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 중에는 나보다 나이 많은 이들이 수두룩하다. 전공자들이야 어릴 때부터 배워 한길을 가지만, 40대, 50대에 춤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어릴 적 포기했던 꿈이거나 살면서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을 아이들 다 키워놓고 도전하는 것이다.


이때까지는 욕심이 있다. 그래서 사회교육프로그램에 만족하지 못하고 개인교습을 받는다. 하지만 노동으로 몸은 단단하게 굳었고, 일주일에 한두 번 하는 연습으로는 꿈은 언제나 욕심을 이기지 못한다. 그렇게 시작했던 춤을 60대, 70대가 돼서도 놓지 못해 꾸준히 배우고, 동료들과 어울려 다니고, 때론 무대에라도 서는 날이면 주인공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춤이 삶의 일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각종 사회교육프로그램, 평생교육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애초에 예술은 삶을 모방해왔고, 언제나 예술의 원천은 삶이었다. 그때는 삶과 예술의 구분이 없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예술에서 삶은 지워져버렸고 그렇게 삶과 예술은 분리됐다. 현대에 들어와서 예술과 삶의 구분을 없애려는 시도가 있었다. 앤디 워홀은 캠벨수프가 내 식탁에 있으면 생활이고 액자 속에 있으면 예술이라고 했다. 예술이 생활이고 생활이 곧 예술인 것이다.


요즘엔 생활과 예술을 붙여 한 몸인 것처럼 사용하고 있다. 생활예술이 그것이다. 생활예술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다. 하나는 삶과 예술의 구분을 없애 생활 속 언제, 어디서나 즐기고 행할 수 있는 예술을 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전문적인, 아마추어라는 의미다.


오늘날 생활체육, 생활예술, 평생교육이라는 말이 대세를 이루고 정부의 주요한 정책도 여기에 많이 기울어있다. 마을마다 행정복지센터나 노인복지관, 문화원 등에 다양한 문화예술프로그램이 생겨나 누구나 열정과 시간만 있다면 전문예술인보다 더 활발히 예술활동을 할 수 있다. 특히 춤은 예술과 운동이라는 두 가지 매력적인 요소를 갖고 있어 엄청난 붐을 일으켰다.


예술은 삶에 커다란 자극이 될 수 있기에 누구나 예술을 즐기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춤은 노년으로 갈수록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지대하다.


그런데 생활예술, 사회교육프로그램이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한때 붐이 일어 기관마다 프로그램이 없는 곳이 없었고 이곳저곳 작은 프로그램들이 생기면서, 생활예술동아리를 통해 배출된 강사들이 그 자리를 메우다보니 수업의 질도 떨어지고 열정도 매력도 떨어지게 됐다. 희소성과 전문성이라는 매력이 사라지면서 더 이상 사람들을 끌어당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마다 춤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내게 춤은 소통의 도구다. 사람들에게는 사랑이나 열정, 믿음과 같은 마음을 전달하는 각자만의 언어가 있다. 나는 특별히 춤이라는 언어를 사랑한다. 춤은 바람처럼 한 곳에 머물지 않는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이며, 대구광역시무형문화재 제18호 수건춤 보존회장, (사)한국민족춤협회 경남지회장으로 있다. 순간의 예술이다. 춤추는 그 순간에만 소통할 수 있기에 온 열정을 다해 허공에 그렸다 지우는 행위를 좋아한다. 그 순간을 위해 제멋대로이고 싶은 몸을 달래고, 길들여 최대치에 이르도록 얼마나 극단까지 몰아쳤는지 모른다. 춤은 내게 그런 것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춤이 그럴 이유는 없다.


오늘도 춤이 낙(樂)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물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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