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무엇을 위하여 종(種)은 어울리나

인터넷 검색창에 ‘토끼’를 치고, 뉴스를 검색해봅니다. ‘기술과 균형발전 두 마리 토끼 잡아’, ‘매출과 주가 두 마리 토끼 잡았다’, ‘물가와 금융안정 두 토끼 잡아야’. 경제인들은 여전히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바빠 보이네요.

 

‘집토끼 잡으려 극우 행보’, ‘집토끼 충성도 흔들리자’, ‘집토끼 단속의 딜레마’. 정치인들은 여전히 ‘집토끼’에 집착하는 듯하고요. 정부의 ‘토끼몰이식’ 이주민 단속을 비판하는 기사도 있네요. 여하튼, 뉴스 검색창에 비친 토끼는 여전히 ‘잡고’, ‘단속’하고, ‘몰이’하는 대상인 듯합니다. 지금은 2023년, 이곳은 대한민국. 수렵채집과는 먼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간은 아직도 수렵채집사회에 갇혀있네요.

 

고사성어 ‘교토삼굴(狡兎三窟)’을 언급한 뉴스도 있습니다. 교토삼굴의 ‘교(狡)’는 교활하다는 뜻입니다. 토끼가 살기 위해 굴을 세 개 파는 것이, 정녕 교활한 짓일까요?

 

좋아하는 이유, 실험하는 이유
작은 몸집, 순한 성질, 크고 둥근 눈. 많은 사람들이 토끼를 좋아하는 이유들일 겁니다. 그런데 이는 사람들이 토끼를 실험에 이용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설립 초기부터 동물실험을 금지해온 화장품 기업 ‘러쉬(Lush)’에 의하면, 눈이 크고 둥근 토끼는 ‘드레이즈 테스트(Draize test, 안구자극 실험)’에 주로 이용됩니다. 동물의 눈에 직접 화학물질을 주입해 자극성을 평가하는 실험인데, 물질 테스트 1회에 3마리 이상의 토끼가 희생된다네요. 또한 피부 자극(Skin irritancy) 실험, 생식 독성 실험 등에 토끼들이 고통받고 있답니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의 공개자료에 의하면, 2020~2021년 2년 동안만 총 5만2천141마리의 토끼가 실험에 희생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2020년 2만5천465마리, 2021년 2만6천676마리).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토끼들이 실험실에 갇혀 공포와 고통 속에 떨고 있을까요?

 

토끼반려인 4명을 만났습니다. 그 중 개 반려경험도 있는 3명은 “개에 비하면, 토끼는 손이 훨씬 덜 가요”라고 입을 모읍니다. 산책과 목욕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4명 모두 “토끼는 쉬운 동물은 아니다”라네요. 아주 민감하면서도 표현이 약하기 때문이랍니다. 특히 ‘아프다’라는 표현이 약해서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네요. 토끼의 이런 특성 또한, 토끼가 고통스러운 실험에 이용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지만 비명소리가 작다고, 느끼는 고통도 작을까요?

 

동물보호법 상 반려동물?
“토끼는 동물보호법 상 반려동물임에도 모피, 실험, 식용 등 각종 착취에 노출돼 있습니다. 모피코트 한 벌을 만들려고 토끼 30마리를 죽인다는데, 모피 말고도 좋은 옷 소재가 많지 않나요? 동물 실험하지 않은 제품도 사용하는 데 지장 없고요. 그리고 개, 고양이 식용을 금지하자는 것은 반려동물이기 때문인데, 토끼도 마찬가지 아닌가요.”(도콩맘, 경기도 안양시)

“동물등록 의무화해야”
“토끼는 개, 고양이, 햄스터, 기니피그, 페럿과 함께 동물보호법에서 규정하는 반려동물 6종에 포함됩니다. 그러나 동물등록이 의무화돼있지 않아 유기문제가 심각해요. 입양 및 파양 절차를 체계화하고, 유기 시 강력 처벌해야 합니다.”(안소연, 서울시 서초구)

 

“아픈 토끼 구조하려는데, 야생동물?”
“토끼를 ‘눈요기’용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요. 올해 초, 검은토끼해 특별전시라며 코엑스아쿠아리움에서 육지거북 사육장에 검은 토끼 5마리를 넣고 거북과 한 공간에서 전시하는 일도 있었어요. 그리고 공원에, 산에 유기된 토끼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모르고 ‘예쁜 토끼들을 여기서 보니 좋지 않냐’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아픈 토끼를 구조해 치료하려는데, ‘토끼는 야생동물’이라며 막는 사람들 때문에 구조를 못하고 있어요.”(모찌맘, 경기도 성남시)

 

예쁠 때는 집토끼, 버릴 때는 산토끼?
“현재 국내 토끼의 대부분은 서구에서 들어온 ‘굴토끼’입니다. 산에 사는 멧토끼는 멸종 수준이고요.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토끼는 산동물이라며, 예쁘다고 키우다가 싫증나면 ‘방생’한다면서 산에 유기합니다. 얼마 전 초등학교 교사들이 ‘방생’한다며 수리산에 토끼를 유기했어요. 우리 셋째 또리가 그렇게 수리산에 유기됐던 토끼입니다.

 

토끼는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있는 동물입니다. 산에 있으면 너구리, 멧돼지, 뱀, 야생화된 고양이 등의 먹이가 됩니다. 심지어는 사람이 보신한다고 잡아가는 일도 있어요. 그런데, 토끼를 구조해도 보낼 곳이 없어요. 관내 동물보호소는 개와 고양이만 받고, 야생동물보호소는 토끼는 ‘야생동물이 아니라서’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반려동물로서의 토끼에 대한 지원은 없습니다. 지자체에서 유기견, 유기묘를 입양하면 중성화수술 등 의료비 지원이 되지만, 토끼에게는 그런 혜택이 없어요. 한 마디로 토끼는 반려동물로도, 야생동물로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뭉설또집사, 경기도 군포시)

 

산토끼의 영웅 리틀워호스
제 유년기의 밤을 설렘과 눈물로 밝혀줬던 책이 있습니다. 바로 『시튼동물기』(어니스트 톰프슨 시튼 지음)이죠. 토끼는 『시튼동물기』에서 유일한 해피엔딩의 주인공이었어요. 등장 동물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동물은 ‘산토끼의 영웅 리틀워호스’가 유일했거든요. 인간에게 붙들려 개들과 목숨을 건 경주를 하던 산토끼, 리틀워호스. 그를 한 청년이 안타깝게 여겨 숲에 풀어줍니다. 리틀워호스가 생명과 자유를 되찾던 그 순간, 저도 그를 따라 깡충깡충 숲 속을 뛰어다녔지요.

 

그런데, 리틀워호스를 2023년 대한민국에서 만나면 어떻게 할까요? 이제, 이곳에는 그를 풀어줄 곳이 없는데요. 그가 살기에 적합한 숲이 모두 사라졌으니….

 

김진주 동물권운동가
모든 생명체가 평화롭게 어우러지는 세상을 꿈꾸는 동물권운동가.

비건을 지향하며, 눈 달린 동물은 먹지 않는 비목(非目)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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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um***
    [시튼 동물기] 중에서 '산토끼의 영웅 리틀워호스'가 그나마 해피엔딩이라고는 하나... 이 이야기도 자세히 읽어보면 참 화가 나고 슬픕니다 ㅠ ㅠ 리틀워호스가 죽을 고비를 13번 이상 넘기고 자유를 찾기까지, 잔인한 인간들 때문에 겪었던 일들을 봐도 그렇고요. 리틀워호스는 그래도 자유를 찾아갔으나, 다른 동물들이 겪은 일들과 겪을 일들을 보면...
    2023-04-10 19:45:41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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