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감정노동

잊을 만하면 신문에 등장하는 갑질 사건들. 주된 피해자는 본인이 느끼는 감정을 숨긴 채 웃음으로 고객을 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이다. 콜센터를 비롯해 서비스직에 광범위하게 분포한 감정노동자들은 그들의 일터에서 겪는 고통으로 극단적인 선택으로까지 몰리고 있다. 1면에서는 감정노동이라는 용어가 탄생한 배경, 다양한 유형별 감정노동과 더불어 어떤 구제방안이 마련돼 있는지 알아본다. 2~3면에서는 감정노동을 다룬 영화 두 편의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방송대 교수들에게 감정노동 문제 대응법을 알아본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항공사 승무원, 홍보 도우미, 휴대폰 판매원, 아나운서, 콜센터 상담원…. 이 직업들의 공통점은? 감정노동(感情勞動, emotional labor)이 심한 직업이라는 점이다. 감정노동이란 최근 산업사회가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면서 업무 상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조직적으로 정해진 감정을 표현하는 노동을 말한다(「고객응대근로자의 개념」, 찾기 쉬운 생활법령정보, 2022」).

 

여기서 중요하게 볼 부분은 업무 현장에서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조직에서 요구하는 다른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점이다. 보통 어떤 상황에서든 웃어야 하는 것만 감정노동으로 여기는데, 과격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감정노동에 속하기 때문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서 조사한 「감정노동 많은 직업」에서 8위에 오른 ‘신용추심원’이 이에 해당한다.

 

전체 임금 노동자 35.1% 감정노동 겪어
감정노동이란 개념은 미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Alie R. Hochschild)가 1983년에 쓴 책『통제된 마음(Managed Heart)』에서 처음 사용하면서 알려졌다. 델타항공 승무원이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활용하는 현상을 분석하면서 주목받았다. 항공사 승무원 분석으로 시작된 감정노동 연구는 앞서 언급한 콜센터 상담원, 호텔 및 음식점 종사자, 간호사부터 최근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등 돌봄서비스를 수행하는 업무와 공공서비스나 민원 처리 업무 직업군까지 광범위하게 확장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고객 응대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약 703만4천명으로 전체 임금 노동자의 35.1%로 추정한다(2019). 고용노동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노동자 3명 중 1명꼴로 감정노동을 하는 것으로 추산하지만,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현재 정부의 통계상 분류는 산업과 업종 혹은 직업을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규모는 서비스 직업군을 넘어서 다양한 직업군까지 확장하는 추세로 보고 있다.

 

도대체 감정노동 문제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소비자 보호를 중시하는 관점에서 우리 사회에는 ‘고객은 왕’이라는 통념이 아직도 뿌리 깊이 존재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는 노동자에게 과도한 친절을 강요한다. 직원은 악성 민원인의 협박, 폭행, 성희롱을 감내하면서도 웃으며 서비스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민원이 발생해도 회사는 이미지 손실에 대한 우려로 직원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분위기도 감정노동의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월급의 반절은 욕먹는 값”이라는 ‘웃픈’ 이야기를 하는 감정노동자들은 직무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으로 △무시(반말, 60.2%), △부당한 요구(20.4%) △질문에 무응답(7.7%) △독촉(7.2%) △타 업체나 직원과 비교(4.7%)를 꼽았다(「감정노동자의 고충, 우리 함께 해결해가요!」, 정책공감, 2015).

 

감정노동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바깥으로는 적합한 감정을 표현하는 ‘표면 연기(surface action)’을 하게 되는데, 상당히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문제가 있다. 여기에 요구되는 상황에 맞춰 자신의 내적 감정을 바꾸는 ‘심층 연기(deep acting)’를 수행하게 된다면 당장의 스트레스는 줄일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조직에서 요구하는 감정이 서로 다를 때 나타나는 ‘감정부조화(emotional dissonance)’ 상태가 지속되면 좌절감과 분노, 원망을 느끼게 되고, 심할 경우 정서 소진, 정서 고갈 상태에 빠지게 된다. 공황장애와 우울감이 극에 달해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도 있고, 더 나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상태에 도달한다.

방송대에도 존재하는 감정노동
교육 역시 큰 카테고리 안에서 서비스라는 점에서 방송대에도 감정노동이 존재한다. 교수는 출석수업 현장에서, 직원은 업무상에서, 조교는 학우 응대에서, 콜센터는 전화 응대에서 그렇게 각자의 감정노동을 수행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너 이름이 뭐야? 내가 너 잘라버릴 거야!’라고 하셨어요. 다짜고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한번은 연세가 많은 학우였는데 계속 소리를 지르세요. 본인이 해결하려다 안 되니 답답한 상태로 전화한 건데, 저희가 바로바로 답을 못하면 소리를 치는 거죠. 또 어떤 학우는 전화해 울면서 성적 한 번만 봐달라고 하기도 하고요. 저희야 뭐 앵무새처럼 대답할 수밖에요. 성적은 수정할 수 없다든가 다음 학기에 재수강하는 대안을 알려준다거나요. 그런 전화를 받고 나면 다른 조교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교육과학대학 A조교)

 

“등록 기간에 그런 전화를 많이 받죠. 입학 기간이 끝나서 교재 반품이 안 되는데, 막무가내로 환불을 요청해요. 안 된다고 안내 드려도 계속 전화를 하다가 콜센터까지 찾아와 소리를 지른 분도 있었어요. 결국 경찰이 출동했죠. 아르바이트로 잠깐씩 하는 학생들은 그럴 때 밖에 나가서 울고요, 오래 한 분들은 그냥 빨리 잊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출판문화원 콜센터 B직원)

 

자연과학대학 C교수도 조교, 콜센터 직원의 감정노동 고충에 대한 일화를 털어놨다. “몇년 전 일입니다. 조교에게 전화가 왔어요. 전화 응대가 너무 힘든데 교수님이 통화해주시면 안 되겠느냐고요. 알겠다며 받았더니 엄청 얌전하게 ‘네’ 대답하고 끊는 겁니다. 학생들이 조교와 교수를 다르게 대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요. 그래서 OT에 가면 항상 ‘조교도 선생님으로 대해 달라’라고 꼭 당부합니다.”

 

갑질 당했지만, 혹시 나도 갑질을?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가 차원의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감정노동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문제, 나아가 사회의 비용으로 부담이 된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에 감정노동자 보호 제도의 일반 규정이라 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의2가 2018년 10월 18일부터 시행됐다. 고용노동부에서 제시한 전화연결음 ‘10월 18일부터 산업안전보건법에 고객응대근로자 보호조치가 시행됩니다. 고객응대근로자에게 폭언, 폭행, 성희롱 등을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도 이때부터 들을 수 있게 됐다. 폭언, 비난을 하는 고객을 상대할 때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도 마련됐다(표 참조).

 

마지막으로 살펴볼 부분 하나. 감정노동으로 힘들었지만, 혹시 자신도 다른 누군가에게 갑질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딸이 취업에 성공하자 엄마가 첫 출근을 축하해준다. 오후에 엄마는 인터넷으로 구매한 제품의 하자로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소리를 지른다. 그 상담원이 딸인지도 모른 채. 울며 퇴근한 딸에게 어떤 일을 겪었느냐고 묻는다면? 누구든 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을이 병으로, 병이 정으로 갑질을 이어가는 감정노동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상대방도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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