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감정노동

「다음 소희」 포스터와 정주리 감독. 사진 제공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2017년 1월, 전주의 한 대기업 통신사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던 한 고등학생이 5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이 「그것이 알고 싶다」(SBS)에 공개되며, 콜센터 노동자의 극심한 감정노동 실태와 열악한 업무환경이 드러났고,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우리는 제주도의 생수 공장에서,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 현장에서, 그 밖의 수많은 일터에서 또 다른 어린 이름들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다.

 

정주리 감독은 이 사건을 2월 8일 개봉한 「다음 소희」에서 당찬 열여덟 살 고등학생 소희(김시은)가 현장실습에 나가면서 겪게 되는 일들과, 이를 조사하던 형사 유진(배두나)이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로 강렬하게 그려냈다.

 

그래프와 수치 이면에 숨겨진 것들
“저한테는 더 비참했던 것이 한 아이가 그렇게 죽은 것도 너무나 비극적인데, 죽음 이후에 벌어진 일들이 더 참담했어요. 그리고 이 일들이 반복된다는 사실도요. 왜 그렇게 된 건지 알아보고 싶었고, 처음에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어요.”

 

정 감독은 2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둘로 나눴다. 1부에서는 고등학생 소희가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고, 이후 일련의 고통스러운 사건을 겪으며 결국 무너져 내리는 이야기를 다뤘다. 2부에서는 소희의 죽음 이후 형사 유진이 콜센터, 학교, 교육지원청을 찾아가 책임을 묻지만, 더 큰 암담함으로 무력함을 느끼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그렸다.

 

「다음 소희」의 첫 키워드는 ‘경쟁’이다. 콜센터 벽에 붙은 인터넷 해지 방어율, 학교 게시판의 취업률 그래프와 교육지원청 벽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수치들은 그 자체로 위압감을 준다. 정 감독은 “취업률이 높고 실업률이 낮으면 좋은 거라고 우리가 은연중에 받아들여 왔죠. 그런데 아이들이 어떤 곳에서 어떤 감정노동을 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지 헤아려볼 생각은 했나 싶어요. 마치 이 수치와 그래프들이 큰 무언가를 대변해주는 것처럼 당연시하면서요”라며 ‘수치 공화국’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두 번째 키워드는 ‘착취사회’다. 현장실습 고교생에게는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 콜센터. 사실 소희가 일했던 콜센터도 하청에 하청을 거듭한 업체 중 하나일 뿐이다. 특성화고 교사들은 학생의 진로에 대한 진지한 교육에 신경 쓸 시간이 없고, 오히려 취업 실적을 올리기 위해 영업을 다녀야 하는 상황이다. 교육제도라는 이름으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수치 공화국과 하청사회의 민낯
영화에서 소희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이들은 친구들뿐이다. 콜센터 팀장, 취업담당 담임교사, 교육지원청 장학사들은 모두 소희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적당히 하시죠”, “아이 하나 죽은 거 갖고 뭘 그러세요?”, “오히려 우리 회사 이미지가 나빠져서 더 손해를 입었어요”, “다음에는 교육부 찾아가시렵니까?”

 

하지만 정 감독은 이들을 섣불리 비난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한 거겠죠. 다 어떤 거대한 조직, 시스템의 충실한 톱니바퀴들로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 역시 그랬고요. 그런 상황들이 변하지 않고 지속된 채로 지금까지 이르게 된 것이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특성화고 교사들은 헌신적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학사들, 경찰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들의 사명을 하루하루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다음 소희」가 현장실습생의 비극으로만 읽힌다면, 영화의 한 부분만을 본 것이다. 오히려 「다음 소희」를 통해 현재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마주하고, 아이들이 감정노동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정 감독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묵직하게 남았다. “소희만의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정말 이런 일이, 다음 ‘소희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영원히 반복돼야 하는 걸까요? 제가 이 영화에서 정말로 묻고 싶었던 질문입니다.”


1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로그인 후 등록 할 수 있습니다.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