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문제인 이유가 ‘월급 빼고 다
오르기’ 때문이라면, 물가를
임금에 맞춰 낮추기보다 임금을
물가에 맞춰 높이는 방향으로
발상 전환할 수는 없는 것일까?
작년 한 해는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이른바 3고(高) 현상으로 많은 이들에게 고(苦)된 한 해였다. 특히 재작년 코로나 사태로부터 경기가 빠르게 튀어 오르고 주가는 물론 집값, 심지어 가상자산 가격까지 들썩댄 이후인지라, ‘3고’의 고통은 더욱 쓰라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고물가·고금리는 소득이 적고 채무가 많은 취약계층에 더 큰 부담이라는 점에서, 이들에게 지난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그런데 이 중 고금리는 다른 둘과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고물가·고환율은 우리나라 당국이 예방 또는 대처하기 힘든, 예컨대 수입물가 상승, 무역수지 적자와 같은 대외적 요인에 주로 기인한 데 반해, 고금리의 경우는 이를 초래한 주체가 명확할 뿐 아니라 국내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다름 아닌 한국은행이다.
물론 한국은행이 결정하는 것은 기준금리일 뿐 시장금리는 미 연준의 금리정책과 같은 대외 요인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으므로, 한국은행은 고금리의 주범(?)이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설사 그렇더라도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지속적이고 (다행히 미 연준만큼은 아니지만) 빠르게 인상했다는 점에서, 한국은행이 고금리를 적어도 방조(??) 또는 교사(???)했다고는 말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간 한은의 금리 인상은 (환율상승 및 자본유출 방지를 위해) 부득이한 측면이 없진 않았으나 대체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았던, 무척 아쉬운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주된 이유는, 최근 나타난 인플레이션이 애당초 금리를 올려 잡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원론 수준의 경제학에 따르면, 물가가 오르는 것은 1) 상품과 서비스를 사람들이 너무 많이 사거나(수요견인 인플레이션) 2) 기업들이 원가 상승 등의 이유로 상품과 서비스를 너무 적게 공급하기(비용인상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 이후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누가 봐도 명백한 후자의 경우였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가 점차 해제됨에 따른 이른바 ‘보복소비’ 등 수요 측면의 물가상승 요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중국 등 주요 교역국의 봉쇄 및 거리두기 정책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면서, 원유·가스를 비롯한 에너지와 원자재·식량 가격이 폭등한 것이 인플레이션의 주된 요인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자본시장연구원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2분기 기준으로 국내 물가상승률의 60%가 원자재가격 상승, 공급망 차질과 같은 공급측 요인에 의해 유발된 반면, 국내 경기상황과 같은 수요측 요인은 불과 1% 정도로 사실상 그 효과가 전무했다.
이와 같이 공급측 요인에 의한 비용인상 인플레이션을 금리를 높여 잡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물론 1980년대 초 미국이나 우리나라 IMF 외환위기 때처럼 금리를 두 자릿수로 대폭 올리면 어떻게든 물가는 잡힐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영끌거지’의 삶이 나락에 빠지고, 빚으로 연명해온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대거 망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는다면. 집이 몽땅 불탔는데 빈대를 잡은들 무슨 소용일까?
한은의 선택이 아쉬운 또 다른 이유는, 어쩌면 더 나은 대안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 때문이다. 원가 상승 때문에 발생한 인플레이션이라면, 금리 인상으로 애먼 소비자만 잡을 게 아니라 보조금 등 대대적인 재정지원으로 소상공인·중소기업의 원가 부담을 직접 낮춰 줬다면 어땠을까? 더 나아가 본질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문제인 이유가 ‘월급 빼고 다 오르기’ 때문이라면, 물가를 임금에 맞춰 낮추기보다 임금을 물가에 맞춰 높이는 방향으로 발상을 전환할 수는 없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