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평등(양성평등, 성평등)과 여성
인권에 관한 연구와 교육을 40년째 하고 있는 김엘림 법학과 명예교수가 신간 학술서 『성희롱: 법과 분쟁처리 사례』(방송대출판문화원 에피스테메, 469면, 29,000원)를 내놨다.
김 교수는 방송대에 부임하기 전 약 19년간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여성개발원(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남녀평등과 여성 인권을 보장하고 구현하는 각종 법제를 만들고 정리하는 연구를 했다. 2002년 5월 방송대 법학과에 부임해 약 21년간 재직하면서 학부에서는「남녀평등과 법」, 대학원에서는「젠더판례연구」와「차별과 법」교과목을 개설하기도 했다.
발간사에서도 밝혔듯, 저자인 김 교수가 성차별과 성희롱에 관련한 법과 판례·결정례에 관심을 깊이 가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성차별이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남성과 여성 성별의 구분과 차이에 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 등의 인식(젠더, gender)을 기반으로 합리적 이유 없이 특정 성에 불이익을 주어 평등권을 침해하는 가장 오래된 행위이자, 인구의 약 반수가 피해자가 되는 가장 영향력이 큰 차별이기 때문이다.
둘째, 법과 판례·결정례가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기능을 가지는 한편, 이 사회구조의 해체를 촉진하고 성평등을 실현하는 유용한 수단이 되기도 하는 이중성을 인식하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러한 인식에서 2013년 방송대 산학협력단이 지원하고 출판문화원이 발간하는 학술도서 저작 지원 사업에 『성차별 관련 판례와 결정례 연구』를 신청해 책을 발간했다. 특히 이 책은, 1945년부터 2012년까지 발생한 성차별 관련 분쟁 사건에 대해 선고되거나 결정된 판례와 결정례 304건을 수집해, 분쟁처리기관별·시대별·분야별·남녀 대상별로 경향과 특성을 규명하고 사건마다 사건 개요와 해당 판례·결정례의 요지와 의의 및 문제를 정리·평석한, 성차별을 단일 주제로 한 국내 유일이자 최초의 학술서였다. 이번에 출간한 『성희롱: 법과 분쟁처리 사례』는 저자의 이런 지적 궤도 위에 놓이는 역작이다.
이 책은 성희롱을 단일 주제로 하여
법여성학·젠더법학의 관점에서 고찰한
국내 유일한 학술도서이자 성희롱 예방 교육자료,
관련 입법과 정책·사법과 권리구제에 필요한
최신 자료로서의 기능과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론과 실천 속에서 나온 성과물
성차별에 깊은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한 김 교수는 다른 한편 ‘성희롱’ 문제에도 눈을 돌려 다양한 쟁점을 짚었다. 「직장 내 성희롱의 법적 대책방안 연구」(한국여성개발원, 1997),「성희롱의 법적 개념의 형성과 변화」(<젠더법학>, 한국젠더법학회, 2015),「교수의 성희롱에 관한 법적 분쟁」(<법학논집>, 이화여대 법학연구소, 2016),「성희롱 사건의 사용자 책임론에 관한 판례의 동향」(<젠더법학> 한국젠더법학회, 2016),「대학생의 성희롱, 성폭력 사건과 관련 법적 분쟁」(<젠더법학>, 한국젠더법학회, 2021) 등과 같이 성희롱에 관련한 법과 판례·결정례에 관해서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해 연구하고 교육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간 저자가 지녀왔던 고민과 그가 구축한 연구 성과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책의 구성과 얼개만 봐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책은 제1편 성희롱의 의의와 특성, 제2편 성희롱의 문제와 피해, 제3편 성희롱에 대한 법적 규제의 법리와 동향, 제4편 우리나라 성희롱 관련 현행법과 분쟁처리제도, 제5편 성희롱 관련 분쟁처리 사례와 쟁점, 부록(성희롱 관련 국내외 문헌 등)으로 구성했다.
제1편 성희롱의 의의와 특성 제1부 성희롱의 어원과 의의 및 유형, 제2부 성희롱의 정체와 특성은 우리가 일상에서 목격하는 성희롱의 개념적 정의와 범위를 기술했는데, 이 제1편만 꼼꼼히 읽어도 성희롱이라는 폭력성과 차별성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할 수 있다. 또한, 제2편 성희롱의 문제와 피해 제1부 성희롱의 문제에서 저자는 성희롱 발생의 구조적 문제도 짚었다. ‘위계적 구조에서의 우월적 지위의 권한 오·남용 문제’와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조직문화에서의 젠더 문제’가 성희롱을 만들어내는 사회적·조직적 구조임을 지적한 것이다. 한 대목을 보자.
“위계적·권위주의적 구조의 문제는 우월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권한 오·남용을 제지하기 어렵고 피해자들은 부당한 피해를 당하면서도 불이익이 두려워 저항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성희롱에 관한 법과 판례·결정례에서 ‘성적 굴욕감’이란 표현을 하는 것은 이러한 성희롱의 발생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성희롱은 사회적·경제적으로 우월한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횡포를 부리는 소위 ‘갑질’의 일종으로서 ‘권력형 성폭력’,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성희롱 예방 교육 최신 자료
그렇다면, 김 교수는 어째서 성희롱과 성희롱 관련 법적 분쟁에 비상한 관심을 두게 됐을까? 그는 발간사에서 여섯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성희롱은 업무와 관련하거나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성적인 언동과 요구를 함으로써 심신의 피해와 인권침해 및 업무상의 피해를 발생시키는 행위로서 업무관련성과 권력성·폭력성·차별성을 보인다.
둘째, 성희롱 예방 교육 시행과 방지 조치 마련이 법적 의무가 되고 있음에도 성희롱 관련 분쟁이 증가하고 있고, 장기화·집단화·강경화·사회문제화·법적 분쟁화되는 경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셋째, 성희롱 사건과 관련 분쟁으로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 또는 혐의자·행위자가 되어 복구하기 어려운 피해와 손상을 당하고 있다.
넷째, 우리나라 법은 순기능을 발휘하는 면도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고 실효성이 부족한 문제도 가지고 있다. 실정에 맞지 않는 입법상의 오류가 있으며, 성희롱에 대한 법적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표현의 자유, 성적 자유의 침해 등에 관한 논란도 발생하고 있다.
다섯째,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면 비사법적 분쟁처리기관, 사법적 분쟁처리기관이 분쟁을 처리하게 되는데, 이 경우 성희롱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 피해자 진술의 신뢰성 인정기준, 성희롱 피해 신고 이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여부의 판단, 성희롱 발생에 관한 사용자책임의 인정 여부 등 다양한 법적 쟁론이 발생한다. 이에 관한 공적 판단자(판사, 인권위원, 공익위원, 심사위원 등)의 판단이 각기 달라 혼선과 논란을 증폭시키는 경우도 발생한다.
여섯째, 성희롱 예방 교육에 ‘성희롱 관련 법령의 주요 내용’이 필수 교육 사항에 포함되지만, 현재 그에 관한 정확하고도 최신의 자료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 김 교수는 일반사업장과 공공기관 및 대학에서 실제 발생한 성희롱 관련 사건 중 25건을 선정해 사건 개요와 판례·결정례의 요지 및 쟁점을 정리하고 의의와 문제 등을 평석한 게 바로 이 책『성희롱: 법과 분쟁처리 사례』다.
저자 김엘림 교수는 “이 책은 성희롱을 단일 주제로 하여 법여성학·젠더법학의 관점에서 고찰한 국내 유일한 학술도서이자 성희롱 예방 교육자료, 관련 입법과 정책·사법(司法)과 권리구제에 필요한 최신 자료로서의 기능과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교재『남녀평등과 법』(2022년 전면개편),『성차별 관련 판례와 결정례 연구』(2013)를 함께 읽어도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