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니스

미국 하버드대 교정에 하버드 동상이 있다. 이 좌상은 1884년 보스턴의 한 자산가가 미국 조각가 대니얼 체스터 프렌치에게 주문해 쾌척한 것이다. 하버드의 초상이 전혀 남지 않은 상황에서 프렌치는 초기 영국 이민자의 후손이자 하버드 학생이던 한 청년 얼굴에 상상력을 더해 조각을 완성했다.
하버드대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이 동상의 발을 쓰다듬으면서 하버드대 입학을 기원한다. 하버드대 재료공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매년 2만 명만 조각을 문질러도 166년 후엔 존 하버드의 왼발이 닳아 없어진다고 한다. 필자가 2주 전에 하버드대를 방문했을 때도 하버드 동상 앞에는 그의 발을 만지는 모습을 촬영하려는 한국인 관광객이 어린 자녀를 대동하고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진국이라 해서 다를 게 없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선 사회적 계급과 지위, 일자리 격차, 지역불균형, 교육부의 교육정책 등을 설명하는 키워드에 ‘대학’이 포함된다. 지방대학의 고사 위기도 따지고 보면 입학자원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에 소재한 대학으로 몰리는 현상에 기인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젊은이들이 일자리 질과 생애임금이 선택한 대학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전의 칼럼에서도 지적했듯이 능력주의에 대한 과도한 신뢰는 차별의 피라미드를 고착화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런 피라미드를 대학이 공고화하는 데 일조한다.


우리 사회에서 승자독식 분배시스템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불공정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패자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구조적 틀을 혁파해야 한다는 말이다.


육군 병사로 근무하던 A씨가 상관인 부사관에게 ‘지잡대(지방에 있는 잡스러운 대학의 줄임말)라서 전문 하사를 한다’라고 말했다가 강등의 징계처분을 받게 됐다는 최근 보도가 있었다. 지방대에서 경찰대로 편입한 학생에게 ‘지잡대 주제에 경찰대를 다니냐’라고 말한 선배가 징계를 받기도 했다. 영국의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 미국의 하버드대와 MIT도 지방에 있지만, 이들 학교를 ‘지방대’라고 폄훼하지는 않는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2030년 전에 세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식 카페테리아에서

학습 욕구, 수요, 자신의 준비도에 따라 학습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열린 교과과정인 학습 카페테리아(learning cafeteria)로
전환해야 한다.


대학소멸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저출산의 결과로 입학생 수의 격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히지만, 대학 교육의 비효율성이 그 원인이라는 점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대학에서 배운 것은 과거의 사건이나 이론이다. 산업사회의 지식을 가르치고 있는 대학에 입학할 욕구가 생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대학 졸업장이 일자리를 보장할 것이라는 믿음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정책 해법 모색은 이런 현상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경련이 유럽경영대학원(INSEAD)의 ‘2021 세계 인적자원 경쟁력지수’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자신이 받은 교육이 직업으로 연결된 경우가 한국은 58%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30개국 중 꼴찌다.


빅데이터에서 새로운 패턴을 찾아냄으로써 미래 예측력이 증대했다. 그러면 사회변화에 맞춘 변화를 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다. 시속 100㎞ 속력으로 달리는 사회에서 대학은 10㎞로 주행한다고들 말한다. 위기를 감지한 대학에서 일부 새로운 변형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없지 않다. 201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범한 미네르바대학, 포항공과대의 무은재(無垠齎: ‘학문에 경계가 없다’는 의미로 무학과의 취지를 담고 있다), 2023년 출범한 우리나라의 태재대학 등에서 융합교육이란 이름으로 이것저것 섞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지만 효과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은 아프리카 모로코 북부 도시 페즈에 있는 ‘알 카라윈(Al-Quaraouiyine University)’이다. 859년에 설립된 대학이다. 이탈리아 볼로냐대는 1088년에 설립됐으니 유럽의 대학보다 무려 229년 먼저 세워졌다.


바야흐로 대학의 종말이 거론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알 카라윈대를 기준으로 하면 1164년이고, 볼로냐대를 기준점으로 삼으면 935년 만에 대학의 종말을 거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2030년 전에 세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학위 중심, 엘리트 중심의 대학이 자격 중심주의에 기반한 재교육 중심의 평생교육으로 이행하고 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가 지향하는 모델이다. 지식 카페테리아(knowledge cafeteria)에서 학습 욕구, 수요, 자신의 준비도에 따라 학습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열린 교과과정인 학습 카페테리아(learning cafeteria)로 전환해야 한다.


2007년 10월 12일 하버드대 총장인 파우스트(Drew Gilpin Faust)가 취임식장에서 행한 연설에서 “교육은 사람을 목수로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대학은 어떤가. 목수를 계속 양산하고 있는가, 아니면 목수를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가?


라틴어의 희망(spes)이란 단어는 ‘희망이 거두어진 상태’의 절망(desperatio)이란 말을 파생시켰다. 영어의 절망(desperation)의 어원이다. 지금의 대학이 사람들에게 희망으로 계속 자리할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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