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폐기된 간호법, 남은 과제는?

간호사들의 숙원이었던 간호법 제정이 무산됐다. 2005년부터 국회의 문을 두드렸고, 4월 27일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5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공은 다시 국회로 넘어왔다. 재투표에서 결국 부결되며 법안은 폐기됐다. 1면에서는 간호법 제정을 둘러싼 논란의 이면을 최윤경 방송대 간호학과 학과장에게 들어본다. 2~3면에서는 한국 간호계의 현주소를 그래픽 뉴스로 살펴보고, 현직 동문들의 간호현장과 간호법에 대한 제언을 들어본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간호법’ 제정 논의의 배경이 궁금합니다.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21대 국회까지 오게 된 건가요

간호법 제정은 최근 갑자기 제기된 사안은 아닙니다. 간호계에서는 1977년부터 간호법 제정을 추진했습니다. 2005년 17대 국회에서 간호법이 처음 발의됐고, 통과되지 못했지만 지속적인 논의가 있었습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을 겪으면서 의료환경 개선과 간호사 처우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와 관련해 간호법 제정에 대해 21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돼 여야 대선 공약으로 다뤄지기도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2023년 4월 27일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기까지 했지만, 결국 제정되지는 못했습니다.

 

현재 의료법에 간호와 관련된 사항이 규정돼 있습니다만 이것만으로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영역이 있어 현실과 법의 괴리가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불명확한 업무 범위는 의료현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료기술의 발전과 초고령화 사회의 가속화로 인해 간호 업무의 세분화, 전문화 등 간호사의 역할 확대에 대한 요구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돌봄에 대한 요구가 간호법 제정의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간호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간호법은 크게 세 가지 이유로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첫째 간호사의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간호법 제정의 배경입니다. 간호사의 과로, 소진은 높은 이직률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근저에는 적정 간호사 수를 확보하지 못한채 간호인력을 배치하는 구조적 문제가 내재해 있습니다.

 

간호사 부족 문제는 근무환경이 나은 선진국에서조차 환자안전과 의료의 질적 문제를 일으키는 이슈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간호사 배치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과도한 담당 환자 수와 노동 강도가 강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과로가 쌓이고, 과로로 인해 이직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간호사 부족은 더욱 심화되고 환자안전도 위협받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간호사의 처우와 근무환경을 규정하기 위한 간호법 제정이 선결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의료기관 중심의 의료법은 지역사회 기반의 간호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현행 의료법은 이미 간호사가 지역사회에서 수행하고 있는 간호 행위를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치료 중심에서 예방과 재활 중심으로 이행하는 보건의료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료법에 시의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한 시스템 차원의 문제가 간호법 제정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의료법이 규정하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제한점으로 인해 그간의 의료분쟁 판례가 최소 기준으로 적용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결과적으로 간호법 제정이 무산됐는데   애초에 이 법안에 들어간 ‘지역사회’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초고령화 사회를 앞둔 시점에서 돌봄을 필요로 하는 어르신, 장애인과 만성질환자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어르신들이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 아닌 요양병원 등 의료시설에서 치료 중심의 서비스를 받으며 여생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살던 집에서 그대로 머무른 상태에서 지역사회의 다양한 돌봄서비스를 받으면서 주거·의료·요양·돌봄서비스를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커뮤니티 케어’ 일명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2026년에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보편적으로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게 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지역사회 돌봄은 선택이 아닌 필수 보건의료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역사회라는 용어가 간호법에 포함됐다는 이유로 간호법이 통과되면 안 된다는 말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간호법 반대의 명분이 되기 어렵습니다. 지역사회 재가 노인, 장애인 등에 대한 의료인의 돌봄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상황입니다. 모든 보건의료인이 지역사회에서도 의료기관과 연계해 돌봄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현 의료법은 1960년대에 만들어졌습니다.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됐는데요

우리나라는 현재 보건의료인력의 업무 범위에 관한 법의 범위가 매우 협소하고 제한적입니다. 앞서 지역사회 통합돌봄에 관해 말했지만, 이미 지역사회에서는 의료기관에 기반을 둔 가정간호 서비스, 보건소에 기반을 둔 방문간호 서비스뿐만 아니라 읍면동의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등을 간호사가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정부의 ‘읍면동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를 위해 취약 노인을 살피러 간 간호사가 혈압·혈당을 측정하는 것도 의료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보시라는 권유 정도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의료기관인 보건소 소속의 간호사는 그나마 보건복지부 업무 지침에 의해 혈압, 혈당 체크는 가능한 상황입니다. 의료법은 병원 내 의료행위 중심으로 업무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의료기관이 아닌 지역사회에서의 돌봄에 대한 업무 내용을 담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는 의료법에 의료인의 역할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은 문제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간호법 제정을 통해 그동안 의료기관에서 관행처럼 있었던 의료법 위반의 소지가 있는 역할 위임을 근절하고 합법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의료기관의 범위를 벗어난 지역사회 영역에서도 모호한 의료행위와 보건의료인력 간 역할 및 책임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취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의료법 개정과 간호법 제정을 통해 확장된 간호사의 역할을 반영한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요? 또한 방송대 간호학과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하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의료기관 중심의 의료법에서는 가정에 머무르면서 돌봄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요양병원, 요양원 등 삶의 터전이 아닌 시설에서 머무르면서 삶의 질에 대한 고려 없이 생을 마감하는 사례도 빈번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르신뿐만 아니라 보건의료인들도 분노, 무력감과 슬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택방문 의료 등 지역사회 돌봄서비스의 확대를 통한 국민의 선택 권리를 충족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간호계에서는 간호법을 환자 중심, 환자안전, 의료의 질 측면에서 더욱 재정비하여 입법을 시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정부에서는 보건의료 직역 간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한 논의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대학 간호학과 학부와 대학원에서는 초고령화 사회 보건의료 패러다임 변화에 발맞춰 전문성과 환자 중심의 공감역량을 갖춘 간호인을 배출하기 위해 더욱 힘쓰고자 합니다.


5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