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마로니에

저는 편집자입니다. 예전에 누군가 제게 ‘편집자는 뭐하는 사람이야?’라고 물어본 일이 있습니다. 당시엔 두서없는 설명으로 넘겼지만, 지나고 나서 그 질문이 종종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러게, 편집자는 뭐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더 적절하고 명료한 표현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누군가 다시 묻는다면 저는 편집자를 ‘책을 짓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자가 글을 짓는 사람이듯 말입니다. 물론 책을 만들다·펴내다·엮다 등등 더 보편적인 표현도 있지만, ‘짓다’라는 동사가 저는 마음에 듭니다.


‘짓다’라는 것은 옷을 짓는 것, 밥을 짓는 것, 집을 짓는 것과 같이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만드는 행위를 묘사하는 말이며, 단순히 어떤 제품을 생산해 내는 것 이상으로 주체의 마음이 온전히 깃들어야 하는 일에 대한 표현입니다.


편집자가 하는 일도 결국 그러합니다. ‘책’은 글이 입을 옷이자, 글이 담길 집이며, 마음의 양식입니다. 다시 말해 편집자는 글의 맵시를 드러나게 할 옷을 짓는 사람이고, 글이 편안히 정착할 집을 짓는 사람이며, 아직은 날것인 글을 익혀 독자들에게 먹일 마음의 밥을 짓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편집자는 ‘책을 짓는 사람’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편집자가 뭐하는지’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편집 일은 원고를 받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따져 보면 더 이른 시작도 있겠지만, 저로서는 원고를 받는 순간부터가 가장 실감이 납니다. 완성에서 가장 먼 지점에 선 채 아득함을 마주하는 순간이자, 익숙했던 고단함이 다시 낯설게 다가오는 순간입니다. 초고를 토대로 디자인을 잡고 조판을 하고, 이후 본격적인 교정 작업이 시작됩니다. 원고는 각각 그 나름의 넓이와 깊이를 갖습니다. 교정은 초반에는 넓게 보기 시작해서 후반으로 갈수록 깊게 보는데, 넓게 보는 것은 흥미로 보고 깊게 보는 것은 애정으로 봐야 합니다.


넓게 볼 때에는 여러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지우고, 수정하고, 덧붙이고, 재배치합니다. 다만 깊게 보기 시작하면 애정 또한 깊어져 글을 빼거나 바꾸기가 힘들어지고, 망설임도 생깁니다. 그렇게 글이 단단해질 때까지 보다가, 인쇄소에 보내기 전에는 늘 믿음과 불안이 파동처럼 밀려와 저를 흔듭니다. 잘해 내고 싶다는 마음과, 실제로 잘해 내는 것의 간극은 언제나 영원처럼 멀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인쇄를 마치고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면, 저는 편집자로서의 주기를 한 차례 또 마감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주기 안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며 살아갑니다. 많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 떴다 지고, 끓었다 식으며, 채워졌다 비고, 솟았다 가라앉습니다. 그런 변화 속에서 허무나 피곤에 붙들리지 않고 어떻게든 열매를 맺어 세상에 내보내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삶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함께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늘 귀하고 어려운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방송대출판문화원도 어느덧 창립41주년을 맞았습니다. 교육은 사람에게 온전히 삶을 영위할 기회를 주고, 공동체의 운영에 기여하며, 사회가 품위를 갖추게 합니다. 출판문화원은 그런 교육의 가치를 추구하는 곳이며, 교재는 바로 그 출판문화원이 세상에 내보내는 귀한 열매입니다. 출판문화원은, 떴다 지고, 끓었다 식으며, 채워졌다 비고, 솟았다 가라앉는 41년간의 과정 속에서도 그런 교육의 가치를 ‘지어 온’ 곳입니다. 제가 저 자신에게 바라듯, 출판문화원의 그 귀하고 어려웠던 41년이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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