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8월 말에 퇴직하는 교수에겐 ‘마지막’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퇴직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이삼십여 년의 대학 생활을 마무리할 시간이다. 흔히 정년퇴직은 생전에 치르는 장례식이라고 하지만,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출발점이기도 하다.


자신이 이 별에 온 이유(業)를 증명하는 직(職)을 갖는 건 큰 행운이다. 게다가 교수를 직업(職業)으로 삼았다는 것은 특별한 은총이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듯이 생을 다 받칠 듯이 교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정년 후에도 생은 한참 남아 있다.


늙는다는 건 좋은 일이다. 세상이 자꾸 젊어지는 걸 바라보는 것을 낙으로 삼으면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늙는 만큼 세상은 역으로 젊어지고 새로워진다. 퇴직을 앞두고 선배에게 좀 더 잘해 드릴 걸, 후배에게 말 한마디 잘해 줄 걸 후회하지만, 가장 아쉬운 건 ‘내 시간을 좀 더 가질걸!’. 자기 시간의 퇴적층이 얕을수록 세상에 ‘내던져지는 걸(하이데거는 이를 피투성Geworfenheit이라 했다)’ 두려워한다.


퇴직 후에 만나는 사람이 ‘조만간 연락하겠다’라는 말을 했을 땐 지금은 만나고 싶지 않다는 부드러우면서도 가장 차가운 거절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이런 일에 애면글면하지 말아야 한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연락처가 많다고 자랑할 일도 아니다. 직위 때문에 맺어진 인간관계는 휘발성이 강해서 그 자리를 떠나면 금방 생명력이 증발하는 법이다.


늘 일정이 빡빡한 사람은 진정한 친구가 되기 힘들다. 1대 1 소통에 훈련되지 않은 사람일수록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한다. 인간은 45세를 정점으로 사회관계가 꺾인다고 한다. 이 나이는 새로 사귀는 사람보다 잃는 사람 수가 많아지는 네트워크의 변곡점이다. 자유인으로 살고 싶다면서 일정표 여백에 불안해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자유인의 자세가 아니다. 퇴직 후의 삶의 정수는 자유를 만끽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퇴직 후 전화가 걸려 오지 않으면 마치 내가 중요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뭔가 허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에게 중요한 연락이 오지 않아도 나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다. 삶의 열쇠를 나 자신에게 쥐여주어야 한다.


비어 있어야 생각이 모인다. 생각이 모여야 새로움이 생긴다. 저장된 전화번호부를 비우라는 게 어느 선배의 조언이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늙는다는 건 좋은 일이다.
세상이 자꾸 젊어지는 걸 바라보는 것을
낙으로 삼으면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늙는 만큼
세상은 역으로 젊어지고 새로워진다.


작곡가 브람스의 인생은 F.A.E.로 유명하다. ‘자유롭지만, 고독한(Frei Aber Einsam)’. 브람스가 요아힘에게 헌정한 곡이 「브람스의 F.A.E.바이올린 소나타」다. 홀로 고독하게 지내는 것은 자유 추구의 선결 요건이다. 요제프 요아힘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내가 아는 선배 교수님은 혼자 외국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행복한 고독’을 즐기는 걸 선호한다. 그의 삶에서 철저한 자유와 독보성을 엿볼 수 있다. 다독가이면서도 젊은이들과 소통을 낯설어하지 않고 처음 본 외국인 젊은이를 식사에 초대해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의 삶의 체험을 듣는 건 호사스러운 경험이다.


퇴직하면 ‘모드 전환’을 해야 한다. 읽기에서 듣기로, 말하기에서 생각하기로, 정지에서 운동으로, 다중 속으로부터 혼자 고독을 즐겨야 한다. 속박에서 자유로 이동해야 한다. 퇴직하고 나면 교수로서 몇십 년을 관성에 따라 살던 삶의 패턴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관성을 만드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신경 쓸 수 있을 만큼의 관계를 맺고,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일들을 하며,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욕심을 내어야 한다.


전직보다 현직, 현직보다 천직이다. 인생은 길고 현직은 짧다. 무엇보다 천직에는 정년이 없다. 서점 어슬렁거리기, 편한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기 등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도 의도적인 행복 만들기다. 제2의 본성 개발에 필수적인 모임, 기다려지는 모임, 회원이 된 걸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는 모임 중에서 일치되는 게 하나도 없다면 당장 탈퇴해 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단순한 삶을 사는 요령이다.


공자는 말년에 무언가 해야 한다는 마음,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마음, 고집을 부리는 마음,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마음, 이 네 가지를 끊었다고 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빨리빨리 하라’는 직선적 사고 틀의 발로다. 어쩌면 직선은 무신론적이며 비도덕적이라는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F. R. D. Hundertwasser)의 지적이 옳은지도 모른다. 철도, 고속도로, 기능주의 건축에서 보듯이 산업화의 철학적 기저에 자리한 직선의 모더니티(modernity)는 평균수명이 50세 때의 이데올로기인 셈이다. 빨리 죽으니까 서둘러야 했다. 100세 시대엔 ‘하면 된다’가 아니고 ‘되면 하는 거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부딪히면 돌아가는 걸 심리학에선 ‘관대함’이라고 한다.


나이 드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숨은 좀 가빠지지만, 경관은 훨씬 더 좋아진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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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nka***
    이 아침에 좋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07-03 10:46:06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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