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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때 종이로 피아노 건반을 만들어서 피아노를 치는 흉내를 내는 것을 시작으로 음악대학에 들어가고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피아노에서 손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피아노랑 운전밖에 할 줄 몰랐는데, 결혼을 하고 피아노에 먼지가 쌓이기 시작 할 때쯤 나에게 방송대가 낯설음 그 자체로 다가왔다.


게다가 93학번에서 23학번으로 30년만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가는 발걸음은 기대 반 설렘 반이었다. 갈까 말까 수십 번 갈등하다가 남편과 아이들이 ‘같이 가겠다’며 지지해주었다. 덕분에 용기를 내 참석했다. 막상 마주쳐 보니 그동안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았고, 지금까지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앞으로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방송대는 1학년부터 4학년 선배님까지 모두 경쟁이 아닌 서로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하나라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어느 날 문득 공부가 하고 싶어져서 책을 읽고 도서관을 들락거리다가 인연을 만나 소개받게 된 방송대다. 다행히 코로나 시기 동안 아이들이 줌으로 수업했던 터여서 온라인 강의 수업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흔한 홈쇼핑 주문 한번 하지 않고, 인터넷 뱅킹도 안 하며 살았던 나에게 매일 방송대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공지를 확인하는 등 수강신청부터 모든 학교생활을 인터넷으로 해야 하는 건 정말 두려운 일이었다.


과제를 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켜고 미리 종이에 연필로 써놓은 것을 옆에 놓고 탁! 탁! 탁! 독수리 타법으로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다. 모니터 한번 보고 키보드 한번 보고 마치 처음 피아노 배울 때처럼 음표 한번 보고 피아노 건반을 찾던 시절이 떠올랐다. 반백의 나이에 다시 시작하는 걸음마이지만 한걸음 한걸음이 더욱 절실하게 마음속에 와 닿았다.


처음엔 두 손가락만 사용했지만 점점 손가락이 여러 개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속도도 조금씩 빨라지자 재미가 생기고 여러 가지 기능들도 찾아보게 됐다. 어느덧 과제물 제출기한 하루를 남겨두고 완성할 수 있었고, 그동안의 시간들이 그 어떤 것보다 뿌듯하고 성취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밖으로 뛰어나가서 탄천을 달리며 혼자서 기쁨을 만끽하곤 했다. 공부의 기쁨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작은 행복들을 다시금 되돌려 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지금은 긴 머리에서 짧은 머리를 하고 치마에서 바지를 구두에서 운동화로 핸드백에서 책가방으로 바뀐 내 모습을 보면 너무 자랑스럽다. 어떤 모습이 진짜일까 싶을 정도로 스스로 적응하게 됐고 근거를 알 수 없는 자신감 까지 장착하게 됐다. 평생 좋아하는 음식만 먹고 편식하는 사람에서 어느날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눈을 뜨게 된 것이다. 방송대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평생 편식만 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남편과 아이들, 부모님 가까운 주변의 지인들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졌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바뀌면 된다. 그렇게 쉬운 듯 어려운 피아노 건반에서 컴퓨터 건반으로 가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어두운 방에 들어 갈 때 불을 켜듯이 스위치만 누르면 된다. 그 스위치를 찾는 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불이 켜지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피아노가 아닌 컴퓨터 건반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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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a1***
    한지영학우님 축하드려요. 대단하셔요! 1학년 지리멸렬 같은 분위기에 깜짝 자존감이 솔솔..ㅎ 1학기 애쓰심에 감사드리고, 앞으로 쭈욱 열공, 유종의 미를 거둬요. 감사합니다!
    2023-08-07 19:20:24
  • pch2***
    지영 학우님 축하드려요. 음식도 공부도 편식하지 않을 비법 우리 방송대에 있었군요. 감사합니다~^8^
    2023-08-07 1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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