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프리즘

깜박 잊고 지냈던
주변 바다와 산의 싱싱함,
고즈넉한 산사의 애잔한 풍경, 들판의 바람소리를 접하고
있노라면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최근에 「오토라는 남자(A Man Called Otto)」(마르크 포르스터 감독, 톰 행크스 주연)라는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봤다. 영화 속 주인공 오토와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일상에서 벌어지는 나와 당신의 사연, 방송대 이야기와 겹쳐지며 흥미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영화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주인공 오토는 매사에 신경질적이고 깐깐한 노인이다. 주변 사람들이 규칙을 지키지 않거나 적당히 대충하는 것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올라 한소리 퍼부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토라는 남자’가 부담스럽다. 그와 말을 섞는 것이 불편해서 모두들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주인공 오토의 삶이 늘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오토는 전형적인 이과생이었다. 기계나 엔진 만지는 것을 좋아하고 또 그런 원리를 학습하고 적용하는 것을 한평생 즐겁게 여겨왔다. 청춘의 봄날 그에게도 아름다운 사랑이 찾아왔고 무색무취였던 그의 삶은 다채롭고 영롱한 빛깔로 생기있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오토 곁에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 6개월 전 아내가 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얼마 전에는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몸담은 직장에서도 밀려나야 했다. 그래서 오토는 뭔가에 쫓기는 심정이다. 사랑하는 아내 곁으로 하루라도 빨리 가는 편이 낫겠다고 결론짓는다. 이제 오토는 어떻게 되는 걸까. 여러분이 감독이라면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가겠는가. 감독이 영화를 솜씨 좋게 어떻게 마무리하는지는 직접 여러분의 눈으로 확인해 봐도 좋을 듯하다.


영화 속 오토의 모습을 접하는 동안 방송대에서 만난 여러 학우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60대 중반에 입학한 어느 학우는 입학식장에서 손녀뻘 되는 선배가 건넨 ‘왕언니’라는 호칭을 듣고 당황해 정색을 하며 꾸짖는가 하면, 70대 중반의 어느 학우는 오리엔테이션 시간약속을 어긴 선배들에게 호통을 치며 붉으락푸르락 일장 훈계를 늘어놓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웃으면서 회상하지만 저마다의 어색함과 긴장감은 가히 영화 속 장면에 못지않았다. 그렇게 어렵게 서로의 손을 잡고 동행길에 나선 학우들이 후일 방송대에서의 시간을 회상하며 ‘자신의 인생에서 다시없이 소중한 보물같은 시간’이었다고 고백하는 경우를 종종 듣는다. 방송대 교수로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8월이다. 아직 방학이 한참 남았다. 여러분이 ‘일상’에서 잠깐 벗어날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1997년 가을,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 생각이 난다. 어느 한밤중 아내와 나는 도쿄 근교의 하꼬네(箱根)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을 보았다. 뭔가에 홀린 듯 우리는 다음날 새벽 기차에 올랐다. 그때는 주머니가 얄팍해 매일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가던 시절이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하꼬네의 가을 풍광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가난한 만큼 간절해서였을까? 고원을 울리던 억새풀의 몸부림,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새벽 호수의 잔물결 소리. 공부와 고단한 일상에 지쳐있던 순간 그 짧은 탈주의 시간은 내 영혼이 위로받는 소중한 안식의 시간이 돼주었다.


그후 나는 바쁘고 지칠 때일수록 일상으로부터의 작은 탈출을 꿈꾼다. 깜박 잊고 지냈던 주변 바다와 산의 싱싱함, 고즈넉한 산사(山寺)의 애잔한 풍경, 들판에서 땀 흘리는 건강한 사람들, 그 사이로 스쳐지나가는 바람소리를 접하고 있노라면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3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