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마로니에

며칠 전부터 엄마 생각이 나서 오늘은 점심시간에 잠시 틈을 내어 엄마한테 다녀왔습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온 집안이 적막했습니다.


“우리 엄마 어디 가셨나?”


엄마는 안방 침대에 누워계시다 나를 보고 깜짝 놀라셨습니다.


“아픈 건 어떻게 알고 왔어?”


“아침에 꽃집에서 엄청 많은 장미가 한 단에 만 원 하는 거야. 그래서 반은 연구실에 꽂고 반은 가져왔어.”


근데 엄마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위경련이 심해서 물도 못 드신다고 했습니다.


나는 우선 꽃을 물병에 꽂아 화장대 위에 두고, 주방으로 나와 이파리 떨어진 걸 치우고 있었습니다. 꼼짝도 못 하겠다던 엄마가 영어 노트를 한가득 꺼내 들고 와서 맞게 썼는지 확인해 달라는 겁니다.


재빨리 확인하고, 철자가 빠지거나 틀린 단어 몇 개를 체크해 드렸더니 엄마 얼굴이 환해집니다. 왜 병이 나셨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엄마가 영어 공부를 하는 건 나만 아는 비밀입니다. 과외선생님을 붙여 드린대도 절대 싫으시답니다. 엄마의 영어 노트 표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습니다. “죽기 전에 한 가지만 해 보자. 못 배워서 속상했잖아.”


‘나는 저렇게 절실하게 무언가를 배우고자 한 적이 있었던가?’ 하고 내가 누리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돌아보게 되는 날이었습니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내가 여든이 넘었을 때 나는 무엇을 배우고 싶을까요?


회사에 다니면서 대학을 다니거나, 퇴근 후에 공부해서 번역가가 된다든가, 이런 이야기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줍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기회도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 시절 배움이 없었던 사람에게는 장년이 돼도 기회가 주어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며칠 전, 입원한 가족이 있어서 병원에 머물 때의 일입니다. 병원 커튼 너머로 어느 노인과 그의 딸로 짐작되는 여성의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아마도 그림책을 가리키면서 동물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람쥐.”
“땡!
아까비~ ‘람쥐’는 맞아! 무슨 람쥐일까?”
“다람쥐?”
“딩동댕!”
“이건?”
“‘말’인데…”
“오, 맞아. 무슨 말?”
“……”
“얼룩말이잖아!”
“아, 알았었는데…”
“알긴 뭘 알아? 몰랐던 거지!”
“잊어버린 거야.”


오가는 대화가 너무 재미있어 소리 내어 웃을 뻔했습니다. 따님은 이따금 면박을 주면서도 시종일관 화를 내는 법은 없었습니다.


왜 아버님은 뒤늦게 한글을 배우겠다고 하셨을까요? 아마도 한평생 답답하셨을 테지요. 따님을 학교에 보내, 척척 글씨를 읽을 때 뿌듯하셨을 겁니다. 그런 따님에게서 글을 배우는 노인의 목소리에서 작은 행복이 느껴졌습니다.


사람이 배움을 원한다는 것은 꼭 어떤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그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삶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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