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환 총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에서 돌아본다면, 아마도 50·500 발전기금 모금 프로젝트의 변곡점은 7월 14일로 기록될지 모른다. 백만복 인천총학생회장과 김흥진 50·500 발전기금 사무총장의 물밑 노력과 함께 인천 학우들의 ‘십시일반’ 기금 기탁이 이어진 탓이다. 강영주 제39대 법학과 학생회장을 비롯해 임지환 대외협력부회장, 김혜정 기획국장, 김태희 여성국장, 최재선 정보통신국 차장, 전명숙 학우(법학과 학생일동), 심수정 학우(법학과 학생회 임원일동), 김인숙 법학과 3학년 부대표 등 법학과 학우들이 50·500 발전기금(이하 50·500) 모금에 동참했다. 최미자 국어국문학과 학생회장, 엄해림 유아교육과 회장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은 어째서 50·500 모금에 참여했을까? 7월 25일(화) 저녁 6시 부천의 한 카페에서 강영주·김인숙·김혜정·엄해림·임지환·최재선 등 여섯 학우를 만나 이들의 동참 이유를 들었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기부라는 게 부자들만 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일상에서 조금씩 아껴 쓰면서 모은 걸로 기부하면 되잖아요.
작은 뜻이 모이면 큰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모금에 동참했어요.
―김혜정 학우
무덥고 습했지만 저녁 6시가 되자 하나둘 약속 장소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들 학생회 임원을 맡고 있었지만, 자신의 본업을 유지하면서 공부하거나,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이들이 50·500에 기탁한 금액은 각각 100만 원.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결코 작은 액수도 아니다.
융합학과 신설, 듣자마자 설렜다!
인천 학우들이 50·500 소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일의 시작에는 백만복 인천총학생회장이 있었다. 인천총학생회가 호프데이를 열어 그 수익금 일부를 5월 23일 학교에 50·500 기금으로 기탁했을 때, 백 회장을 따라 강영주 학우도 함께 총장실을 방문했다.
“대학본부에는 그날 처음 방문했어요. 본부 1층 로비 벽면에 무슨 기부자들 명판이 보이더라고요. 이게 뭔지 물어봤더니 학교 발전기금 기부자들이라는 걸 알게 됐죠. 그리고 첨단 융합학과 신설을 위해 50·500 모금 프로젝트가 가동됐다는 것도 듣게 된 거죠. 그때 처음 들었어요. 우리 방송대가 앞장서서 새로운 학문을 국민에게 제공한다는 것인데, 가슴이 뛸 수밖에 없었죠.”
마침 4월부터 고성환 총장은 50.500 모금 안내와 총동문회·총학생회 활성화를 위해 전국 일정에 나서고 있었다. 인천 총학생회와 학우들은 서울, 인천 등 수도권에서 먼저해야 하는데 선수를 놓쳤다고 아쉬워하면서 총장과의 간담회에서 깜짝 선물을 내놓기로 단단히 준비했다.
유아교육과 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엄해림 학우가 동참한 데는 ‘법학과 학우들’에 대한 부러움과 동시에 학교에 대한 고마움이 작용했다. 엄 학우는 이렇게 말했다.
“유아교육과는 여성이 대부분이고, 또 젊은 학우들이 많은 곳이거든요. 잘 뭉치는 법학과가 부러웠어요. 학교에서 무엇인가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우리도 학교에 무언가 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강영주 회장의 제안을 듣고 우선 저라도 먼저 시작해보자는 마음에서 동참한 거죠. 4년 동안 학교로부터 장학금을 받아왔는데, 이제 반대로 학교에 환원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그동안 받은 장학금을 다시 기부한다고 생각해요.”
김혜정 학우가 동참한 데는 절절한 사연이 있었다.
“아들이 병약한 데다 심장 수술까지 받게 된 적이 있어요. 그때 정말 기도를 많이 했죠. 우리 아들 살려달라고. 이후 수술도 잘 마치고, 그래서 방송대에 진학했어요. 학교 들어와서도 그때 기도할 때 약속했던 ‘기부와 봉사’를 빠지지 않았죠. 이 기부라는 게 부자들만 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일상에서 조금씩 아껴 쓰면서 모은 걸로 기부하면 되잖아요. 작은 뜻이 모이면 큰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모금에 동참했어요.”
처음에는 어떤 내용이며, 어디에 쓰는지도 모르고 일단 동참하기로 먼저 결심했다고 말하는 김인숙 학우는 ‘마음의 빚’을 갚고 싶어서 참여했다.
“방송대 법학과 3학년에 편입해 이제 한 학기를 마쳤어요. 남자 부대표를 맡아 일하고 있지만, 학교에 해드린 게 없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항상 마음의 빚 같은 게 있었죠. 애가 셋인데다, 시간적인 여유를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학교 봉사도 할 수 없으니, 금전적인 것이라도 해보자 하고 모금에 참여한 거죠. 지금은 목적사업이란 걸 알게 됐고, 인천을 방문한 총장님 말씀을 듣고 참여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조금 늦게 자리에 합류한 최재선 학우는 유일하게 1학년에 재학 중인데, 그는 “회장님이 좋은 일이라고 권유해서 모금에 동참했어요”라고 말했다. 임지환 학우도 좋은 일이어서 두말하지 않고 참여했다고 쑥스러워했다.
방송대 선택한 다양한 사정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방송대와 인연을 맺게 됐을까. 방송대에 진학한 사정도 다양했다. 김인숙 학우는 첫째 애의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입학 동기’가 돼 주려고 방송대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처음으로 입학하는데, 그 입학 동기가 돼주고 싶었어요. 우리 함께 공부하는 거다, 이렇게 약속했죠. 나중에 애가 좀더 크면 아빠가 학교생활을 이렇게 했다는 것도 알려줄 수 있고, 이런 게 좋은 거 같아요. 아무튼 지금 무척 만족하고 있습니다.”
건축업을 하는 임지환 학우의 방송대 선택은 조금 별났다. 지난해 2학년 2학기에 편입한 임 학우는 법학과 제18회 연합수련회·총장배 변론대회가 계기였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위헌 여부가 주제였는데, 마침 출전해야 할 인천 법사모팀에 인원 한 명이 모자랐다. 강영주 학우가 바깥에서 유유자적하던 임 학우를 강제로(?) 법사모팀에 편입시켰다. 그렇게 출전해서 대상을 거머쥐었으니, 임 학우도 천상 방송대 인연인 셈이다.
김혜정 학우는 애지중지 키우던 아들이 독일로 음악 공부를 떠난 뒤 찾아온 ‘빈둥지증후군’으로 우울증을 심하고 앓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방송대를 만났다.
“병원에서 운동도 하고 요리도 배워보라고 권유하더군요. 요리 공부할 때 만난 후배가 방송대를 다니는 걸 알게 됐어요. 심리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없어서 ‘1등 학과인 법학과’를 지원한 거죠. 법학 공부가 어렵긴 하지만, 머리가 맑아지고 재밌어요.”
아동·인권 운동을 오랫동안 활발하게 펼쳐온 강영주 학우는 ‘왕성한 활동’ 때문에 주변의 시선이 왜곡되는 거 같아 방송대 법학과 공부를 선택한 케이스.
“주변에서 정치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는 눈총을 많이 보내더라고요. 너무나 견디기 힘든 상태까지 이르렀을 때, 지금의 강원 법학과 회장님, 김태희 학우님과 함께 법학과에 진학했어요. 처음에는 도망 오듯 도피처로 학교를 선택했는데, 학교 공부와 학생회 일을 하면서 정말 고마운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
40대인 엄해림 학우는 일찍 결혼해서 큰애가 2020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그때 딸애가 대학생이 됐으니 자신도 방송대에 진학하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그게 현실이 됐다.
“저희 애들이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키울 때, 할머니가 대학도 나오고 자격증 있는 할머니라는 걸 알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격증 가지고 봉사 활동도 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었던 거죠.”
“공부가 전부 아니다, 학교생활 즐겁게!”
보험설계사인 마당발 최재선
학우는 1999년 방송대 컴퓨터과학과와 인연을 맺었지만,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법학과가 두 번째 인연인데, 암 투병도 이겨낸 그의 말이 톡톡 튄다.
“학교생활은 역시 즐겁게 하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저는 과락만 아니면 된다, 이런 느낌으로 공부하고 생활해요. 제가 5만 명 정도 되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다 제 성적표(2.8)를 올려놨어요. 나름 시간을 내서 공부해 받은 첫 대박 성적표이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들 인천 학우들은 학교에 건의하고 싶은 것도 많아 보였다. 실제로도 다양한 제안과 건의를 밝혔다. 법학과 교수님들이 출석수업에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으면 좋겠다, 학과 사무실에 공용PC를 갖춰달라, 와이파이가 너무 느리니 속도를 높여달라 등의 말을 할 때는 학생회 임원이 아닌 대학 생활에 관심 많은 학우들의 표정 그대로였다.
인천 법학과 학생회는 자신들의 카페 게시판에 50·500 프로젝트 게시판을 하나 더 만들었다. 임원진이 1차로 모금에 동참했지만, 이어서 2차, 3차 뜻이 있는 학우들이 참여해주면 학교가 발전할 수 있다고 믿어서다. 이들의 동참이 앞으로 어떤 태풍을 만들어낼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