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터뷰는 사실 몇 달 전에 기획됐다.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3』 출판기념회 겸 제18회 동아시아 사랑방 포럼 학술대회가 열리던 5월 19일(금) 저녁으로 올라가야 한다.
당시 일본학과에 적을 둔 정청주 전남대 명예교수(사학)가 ‘노몬한(ノモンハン) 전쟁’에 관한 발표를 마쳤을 때, 초로의 한 남성이 일본어로 질문을 던졌다. 일본방송대 가나가와학습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모임인 ‘한국어동호회’ 회원으로 방송대와 교류를 쌓아왔던 츠유키 미츠오씨였다. 그는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1』(2021)에 「이름으로 보는 일본 역사 문화」 필자로도 참여했다.
며칠 뒤 이경수 교수(일본학과)가 마련한 작은 차담회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이번에는 그의 옆에 ‘김경숙’ 동문이 함께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부부라는 걸 알고는 8월에 8·15를 맞아 인터뷰를 하자고 제안했는데, 이들이 흔쾌히 수락했다. 인터뷰는 ‘파파고’로 번역기를 돌려 메일로 진행했다. ‘방송대’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이 부부가 생각하는 8·15의 의미와 방송대 공부를 들어봤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흥미를 가지고 즐거움을
만나게 되면, 보다 깊고 폭넓게
지식을 습득하는 힘을 발견하는 것 같아요.
어려움에 맞설 힘도 생기고요.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으니, 방송대 생활도
그렇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올해 74세인 츠유키 씨는 일본방송대를 두 번 졸업했다. 1998년 첫 입학해서 2013년, 2020년에 졸업했다. 교양학부 교양학과 ‘인간과 문화’ 코스와 ‘생활과 복지’ 코스다(일본방송대는 교양학부 단일 시스템으로, 교양학부 교양학과에 6개 코스를 두고 있는 체제다). 그는 지금도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김경숙 동문(66세)은 방송대 일본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전업주부로 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2013년이다. 가나가와학습센터 ‘한국어동호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츠유키 씨가 서울에서 열린 방송대 일본학과 교류 모임에 참석한 게 인연의 시작이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깊이 사귀게 됐다.
남편인 츠유키 씨는 “언어의 문제도 있었지만, 같이 대화하고 교류 모임을 다지는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신뢰감이 생겼어요. 솔직한 면에 반해서 결혼을 결심했죠. 아내는 성실하고, 진지하며, 속 깊은 정이 많고, 이해를 많이 해줍니다”라고 말했다.
나라는 다르지만 공부의 길은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인 츠유키 씨도 일과 공부를 병행하느라 힘들게 시간을 보냈다. 일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도 시간 내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의 개발 제조는 납품 기간이 정해져 있어요. 그러다 보니 방송 수업에 시간을 내기가 정말 어려웠죠. 어떤 때는 시간을 내는 것조차 아깝기도 했어요. 어머니 간병으로 방송 수업을 들을 수 없을 때도 있었고요.”
김경숙 동문은 2012년 일본학과에서 일본어 공부를 처음 시작했다. 실력이 앞선 친구들을 따라가기가 무척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했다. “생각보다 공부가 어렵더라고요. 포기하려고 했을 때, 이경수 교수님이 딱 1년만 참고 ‘열공하면’ 된다고 격려해주시더라고요. 교수님의 격려가 큰 힘이 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어요.”
츠유키 씨는 40대 중반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하면서 매니지먼트에 관한 지식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당시 사내연수도 있었지만, 좀더 폭넓게 배울 수 있고 수업시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곳이 방송대여서, 망설이지 않고 선택했다고 말했다. 역사나 철학 일반에도 흥미가 생겨, 배움의 재미를 지금도 만끽하고 있다고 한다.
김 동문은 퇴직 후 방송대에 입학했는데, 그의 입학 동기가 재밌다. “2010년 당시 방송대 총장님이 KBS TV 「아침 마당」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해 방송대를 소개하는 걸 우연히 보게 됐죠. 그래서 입학하면 제 인생도 멋지게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해 선택했어요.”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에서 살아왔고, 인생2막에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보니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가 강조하듯,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김 동문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며 받아들이고 있어서 부부간에 남들처럼 싸우는 일은 없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을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한 사람은 한일교류회 지도교수인 이경수 교수다. 츠유키 씨와 김경숙 동문은 한국에 오면 이 교수를 찾아 꼭 인사를 온다. 이 교수는 “인생은 60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로 환갑이란 말을 사용해요. 두 분은 인생 후반에 공부와 사랑 두 가지를 동시에 잡은 행복한 커플입니다. 한·일 방송대의 아름다운 사이처럼 상호 존중하며, 존중받는 이들 부부와 같이 한·일관계도 그렇게 변화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부부가 생각하는 8·15의 의미
이제 곧 8·15 광복절이다. 김경숙 동문은 8·15를 ‘해방을 기뻐하는 축제의 날’로 이해하고 있다. “저에게 8·15는 식민지에서 해방된 날로, 잊을 수 없는, ‘잊어는 안 되는 우리나라의 자주 독립을 되찾은 가슴 벅찬 날’입니다. 아픈 기억을 과거로 하고 일본과의 여러 가지 갈등 역시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이 아니라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 일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에서는 대동아전쟁 종결의 날인 종전기념일, 한국에서는 일제의 통치에서 해방된 광복절로 불리는 날”이라고 말하는 츠유키 씨는 자신의 ‘8·15’ 이해에 인식의 전환점이 있다고 귀띔했다. 1949년생인 그의 고향 요코하마에는 미군기지가 있어 늘 군용 지프차가 지나다녔고, 미군이 던져주는 초콜릿을 받아먹던 기억이 있다.
“제가 새롭게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의 역사, 특히 메이지 이후를 재검토했을 때입니다. 왜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시작했는지, 피할 수는 없었는지, 어떤 계기와 이유로 전후 일본 전체의 사고방식이 급격히 바뀌었는지를 생각하게 되면서부터였어요. 저에게는 좋든 싫든 ‘일본이 변화하기 시작한 날’이라는 뜻으로 ‘8·15’가 있습니다.”
두 나라가 불신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츠유키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을 식민통치하면서 일본은 ‘한국의 일본화’를 꾀했어요. 당시 한국인이 받아들이기 힘든 정책이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결과적으로 ‘상호 불신과 갈등’을 오늘날까지 남기게 됐을 겁니다. 지금 일본 역사교과서에서는 당시의 역사를 아주 간단하게만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한국에서는 한·일 관계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저는 오히려 한국의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역사는 바꿀 수 없지만,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불신을 넘어 직접 만나서 서로를 알고 신뢰관계를 쌓는 일은, 한·일 두 나라 방송대를 졸업한 우리 부부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방송대 생활, 흥미 가지고 즐거움 찾길”
나라는 다르지만 ‘방송대’라는
공통항을 지닌 두 사람은 후배들에게 덕담도 잊지 않았다. 부부는 일심동체인지 두 사람은 어떤 일에든 흥미를 지니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으라고 이구동성으로 조언했다.
“흥미를 가지고 즐거움을 만나게 되면, 보다 깊고 폭넓게 지식을 습득하는 힘을 발견하는 것 같아요. 어려움에 맞설 힘도 생기고요.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으니, 방송대 생활도 그렇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컴퓨터 시스템과 관련된 일을 해왔어요. 그것이 세상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니 이제는 ‘즐거움’이 됐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복 받은 환경 속에 있었다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경험은 자신을 크게 만든다, 실패에서 배운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라옵니다.”
김경숙 동문도 ‘石の上にも3年’이란 속담을 덧붙였다. 차가운 돌 위에 3년 앉아 있으면 차가운 돌이 따뜻해진다. 즉, 꾸준히 계속 열심히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