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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고통을 피하거나 외면하려고만 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의지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삶의 진정한 구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요즘 프랑스 문학의 고전에서 배운 가르침이다.

 

얼마 전 친한 컴퓨터과학과 교수 한 분이 함께 산책 중 사람들이 왜 게임에 중독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냐고 내게 물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파스칼의 ‘오락’에 대한 단상이었다. 프랑스어에서 ‘오락’을 뜻하는 ‘divertissment’의 어원은 ‘방향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파스칼이 보기에 인간이 가야 갈 길은 자기 자신인데 사람들은 이 길을 벗어나려고 애쓴다. 그 이유는 자신을 직시할 때 우리는 불행한 인간 조건, 궁극적으로는 죽음에 마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유일한 행복은 “유쾌하고 새로운 열정, 도박, 사냥, 재미있는 공연 등 자신의 조건을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마음을 딴 데로 돌리는 데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박에서 얻을 수 있는 돈이나 사냥에서 잡을 수 있는 토끼를 그냥 준다고 해서 도박이나 사냥을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안수정등(岸樹井騰)으로 비유한다. 커다란 코끼리에 쫓긴 나그네가 절벽에 걸린 등나무 넝쿨에 매달렸는데 사방에서 독사들이 나그네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어서 아래로 뛰어내리려 보니 절벽 아래는 독룡이 시뻘건 입을 벌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등나무 넝쿨을 쥐들이 이빨로 갉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나그네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떨어지는 꿀물을 엉겁결에 받아먹으면서 그 달콤함에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독실한 기독교 교인인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방 안에 조용히 머물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고 말하는데, 그는 여기서 방 안에서 기도를 하며 신과 만나는 사람이야말로 오락 혹은 오욕에서 벗어나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고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파스칼보다 한 세기 앞선 시대에 살았던 몽테뉴는 우리에게 죽음을 다루는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몽테뉴는 참혹한 종교전쟁의 한복판을 살았던 철학자로 수많은 죽음을 직접 목격했으며, 서른 살에는 누구보다도 사랑하던 친우 라보에시가 서른셋에 요절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는 친구를 상실한 고통으로 인해 한때 난봉꾼으로 방탕한 삶을 살기도 했지만 이러한 오락이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는 사람들이 당나귀 꼬리에 굴레를 씌워 뒤를 보고 가면서 죽음을 외면하다가 막상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죽음이 닫치면 괴로워 울부짖는다고 탄식한다.


몽테뉴는 이러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으로부터 낯설음을 벗겨 내고 죽음과 친해지자고 말한다. 즉 죽음을 일종의 화두로 삼아 모든 순간에 특히 즐거운 순간에도 너무 쾌락에 휩쓸리지 말고 죽음을 상기하라는 것인데, 그는 이렇게 죽음을 미리 생각하는 것이 절망으로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자유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몽테뉴는 죽음이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을 안 사람에게 인생이란 나쁜 것이 없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모두 알다시피 수영할 때 몸을 물에 띄우는 데 가장 중요한 비결은 몸을 물에 잠기게 하는 것이다. 물에 잠기지 않으려고 퍼덕일수록 몸은 가라앉고 반대로 얼굴을 물에 묻고 조용히 몸을 펴면 몸은 물 위를 떠오른다. 슬픔과 고통의 바다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슬픔과 고통을 피하거나 외면하려고만 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의지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삶의 진정한 구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요즘 프랑스 문학의 고전에서 배운 가르침이다.


뜨거운 여름도 모자라 열받는 세상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와 함께 마음에 선선한 바람을 보내주는 고전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내게 게임 중독에 관해 물었던 선생님은 지금 파스칼을 거쳐 쇼펜하우어로 넘어갔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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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zop***
    늦게 베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걱정반 설레임이 공존하는 가운데 이렇게 이벤트도 있고 즐거움이 한층 더해진것 같습니다. 열심히 학교 생활에 적응하면서 따라가고 싶습니다. 모두들 화이팅! 입니다
    2023-08-14 23:18:42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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