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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방송대의 인연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대통령 해외 방문 시 문화사절단으로 활동하면서 미국, 일본, 중국을 50여 회 다녔다. 미국을 17회 다녀왔지만, 개인적 여행은 한 번도 없었다.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선진국의 문화의 수준과 그 나라 국민의 공중도덕을 몸으로 느끼고 정신적으로 갈증을 너무나 많이 받아 왔다.


생활환경 때문에 대학은 못 나오고 한 것에 자책감이 생겨 언젠가는 그 갈증을 풀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나는 한국 서예계에서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데, 못 배운 것을 채워야겠다는 마음에 방송대에 진학했다. 오랫동안 공부에 전념하지 않은 생활을 했던 탓에 처음에는 공부가 무척 힘들었다. 특히나 시험은 나를 엄청 괴롭혔다. 출제하는 교수님들을 많이 원망하기도 했다.


2학년을 마칠 무렵, 포기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시골 출신이라 어릴 때 콩나물을 기른 생각이 났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붓고 무명천을 덮어 두고 가끔 물을 주면, 어느새 물은 다 흘러내리고 콩나물은 자꾸만 자라서 식구들 먹을거리가 됐다. 그걸 생각하고는 공부한 내용을 금방 까먹으니, 남들이 한 번 보면 나는 두 번, 세 번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1학년 일본어 기초 교재를 꺼내 읽어보니 읽고, 해석도 가능했다. 다른 교재를 읽어보니 정말 쉬웠다. 2학년 공부를 했으니 1학년 과정이 어느 정도 용해된 것이었다. 아차! 3학년 올라가면 2학년에 공부한 것도 이렇게 축적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치가 머리를 스쳐 갔기에 2학년에서 포기할 생각을 하다가 3학년으로 진학할 수 있었다. 시골에서 콩나물 기르던 생각이 나지 않았다면 방송대는 ‘땡!’ 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서예를 하는 동료 중에 중어중문학과에서 2학년까지 공부하고 그만둔 분이 있었는데, 내가 간곡히 타일러서 3학년에 진학하도록 했고, 그렇게 해서 그분은 나보다 한 학기 늦게 졸업을 할 수 있었다. 가끔 그분이 ‘선생님 때문에 방송대를 졸업할 수 있었다’라고 말하면서 때때로 선물을 들고 찾아오니 미안해 죽겠고, 한편으로는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코로나로 인해 문화센터 강의가 끊어졌을 때,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해서 공부에 열중했다. 덕분에 장학금을 4회나 받을 수 있었다. 그때 받은 장학금이 미안해 꼭 후배들에게 돌려주겠다고 결심했는데, 다행히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50만원씩 장학금을 내놓을 수 있어 기쁘다. 처음에 4년은 하겠다고 했으니, 앞으로 2년 더 장학금을 내놓을 계획이다.


그동안 공부한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복지 모든 부분이 나의 삶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서예 예술을 전공하다 보니 늘 더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내년에는 대학원에도 진학할 계획이다. 주변 지인들도 다들 같이 가자고 난리들이다. 내 나이 82세인데, 대학원에서 더 공부하다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니, ‘할 일이 있으면 안 죽는다’라고 웃고들 있다.


방송대 졸업 후에는 서예 지도를 하면서 전자오르간을 배워 노래 공부도 함께 해왔는데, 어느덧 120곡을 작사했고, 50곡은 작곡까지 마쳤다. 유튜브에 ‘노래하는 서예가’를 찾으면 들어볼 수 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고 하지만, 지나 보니 공짜가 있는 것 같다. 하늘이 우리에게 허락한 시간과 세월, 이것은 공짜로 받은 것들이다. 그러니 지금 이 시간, 공짜로 받은 시간과 세월을 공부에 집중하다 보면, 큰 보상도 뒤따를 것이라고 후배들에게 감히 말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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