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는 유럽의 섬이라 불리기도 한다. 유럽 민족과 구별되는 튀르크계 이민족인 머저르(Magyar) 민족이 유럽의 중앙 지역을 근거지로 삼아 나라를 연 역사적 사실 자체가 특별한데, 헝가리의 민족기원신화에 성서 창세기의 사냥꾼 니므롯이 시조 노릇을 한다는 사실이 더욱 흥미롭다. 간략하게 내용을 정리한다.
① 대홍수 이후에 야벳의 후예인 거인신적 존재(니므롯/님로드/멘로트)가 ‘암사슴’의 뜻을 지닌 여인 에네드/에네와 결연했다. ② 둘 사이에서 후노르와 머저르(머고르)라는 쌍둥이 형제가 태어났다. ③ 후노르와 머저르가 암사슴의 인도로 메오티스 늪지대를 거쳐 비옥한 땅으로 갔다. ④ 그 지역 근처에서 암사슴을 기념하는 축제를 벌이고 있던 알란(Alan)족 둘러(Dula)왕의 두 딸을 만났다. ⑤ 두 공주를 납치해 혼례를 올렸다(약탈혼). ⑥ 후손이 번성해 스키티아(스키타이)의 108개 민족이 형성됐다. ⑦ 후노르의 후손은 훈족이 되고, 머저르의 후손은 머저르족이 됐다.

니므롯의 전승은 고대 근동아시아에 대단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어,
창세기 형성 이전에는 위대한 용사로,
고대 신앗시리아 왕국에서는 수도의 이름으로,
고대 코마게네 왕국에서는 신비로운 왕의 무덤과
판테온을 모신 성스러운 산의 이름으로 생명력을 갱신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성서를 비틀어 민족의 기원 설정
우리의 눈길이 가는 것은 성서 속 노아의 후손인 야벳의 아들로 니므롯을 설정하고 머저르족의 시조로 삼았다고 하는 점, 그리고 훈족과 머저르족을 형제 관계로 설정했다고 하는 점이다. 결국 성서를 비틀어서 민족의 기원을 설정한 연후에 훈족과의 친연성을 부각하는 신화적 전략을 구사한 셈이다. 헝가리의 역사학자들은 머저르족의 훈족 기원설을 부정하고 투르크계의 오노구르에서 기원했다는 논리를 전개하는데, 이는 헝가리 민족기원신화에서 훈족과 머저르족을 형제 관계로 설정한 양상과 어긋난다.
흔히 ‘신비의 사슴(A csodasarvas)’으로 널리 알려진 민족기원신화는 헝가리 왕실에서 대귀족들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왕실 사가(史家)들에 의해 1283년경 공식 사료로 편찬된 역사서인『헝가리사(Gesta Hungarorun)』에 기록하도록 하여 이 신화를 공식화했다.
이 이면에는 주변 유럽 국가들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5세기경 유럽 세계에 갑자기 등장해 강력한 힘을 과시하다가 홀연 사라진 훈족의 위대한 왕 어틸러(Attila)의 드라마틱한 역사를 필요로 했던 사정이 반영됐을 것이다. 훈족을 민족의 직접적 기원으로 설정하지 않고 머저르족과 형제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훈족과의 개별성과 친연성을 동시에 강조하는 이중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 이민족으로서 보편종교 문명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가톨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작업을 가속화하고, 한편으로 5세기경 유럽 세계에 큰 세력을 형성했던 훈족을, 신화를 통해 공식화함으로써 주변 민족에 대응하는 강력한 군사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양면 전략을 구사했다.
니므롯을 견인한 것은 머저르족의 역사적 경험과 가톨릭 문명권에서의 생존을 위한 더욱 정교한 전략의 결과로 추정된다. 니므롯(Nimrod)이 누구인가?
“오래전에 이 세상에 죄가 만연해 사람들이 야수처럼 살아가자 신은 그들을 벌하려고 지상에 큰 홍수가 나도록 했다. 홍수는 사람들을 모두 죽게 했고 오로지 노아와 그들의 가족만이 살아남았다. 노아에게는 셈, 함, 야벳이라는 세 아들이 있었다”로 시작하는 헝가리 민족기원신화의 설정은 성서를 다소 비틀어서 견인한 것이다.
야벳의 막내아들인 니므롯이 노아의 시절에 있었던 대홍수가 다시 발생할 것을 대비해 높은 탑을 쌓으려 했다고 하고, 그 일이 실패로 끝나고 각각 언어가 달라져 세상에 니므롯의 후손들이 흩어졌다고 했다. 이러한 양상은 기본적인 설정은 성서에서 가져오되 구체적인 내용은 성서와 달리 설정함으로써 보편종교인 기독교와 상충하지 않는 방식으로 신화를 재편한 결과다. 니므롯을 견인해 헝가리 민족의 기원을 자랑할 수밖에 없는 이면에는 니므롯이 페르시아 쪽으로 갔으며, 니므롯의 왕국이 후일에 페르시아가 됐다고 한 신화적 설정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헝가리 민족의 원류를 짚어보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역사적 경험과 신화적 전략
성서의 창세기 10장에 이미
니므롯에 관한 예사롭지 않은 전승이 기록돼 등장하는 것은 고대 근동지역에 니므롯의 전승이 대단한 전승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니므롯에 대한 성서의 평가도 부정적인 기술이 문면에 직접적으로 제시돼 있지는 않다. 바벨탑을 쌓는 행위는 노아의 후손들이 함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성서와 별개로 전승되는 히브리의 전설에 의하면 니므롯은 시나르(시날)의 왕으로 아담과 이브의 옷을 소유함으로써 세계의 통치권을 얻게 됐다고 한다. 니므롯은 신격화돼 숭배의 대상이 됐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하늘에 이를 수 있는 바벨탑을 쌓기 시작하면서 파탄이 생겨 야훼가 시나르(시날)의 언어를 뒤섞어 적대적인 집단이 되어 분쟁을 일으키도록 징치했다고 한다.
야훼를 유일신으로 하는 히브리 중심의 종교가 당시에 니므롯 전승을 배제하고서는 근동아시아 지역의 보편종교로 성립하기에는 불편한 상황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니므롯 전승이 오랜 구비전승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어서 이 지역의 여러 민족에게 널리 전승됐기에 히브리의 유일신 신앙이 보편종교로 확장하는 데 있어, 한편으로 포용하면서 한편으로 배제하는 양면적인 태도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니므롯의 전승을 포용하는 방편으로 니므롯이 세계 최초의 영걸(英傑)이요 특이한 사냥꾼이었다고 하여, 야훼 앞에서도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는 존재라고 하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런 대단한 영걸을 노아의 후손으로 견인해 니므롯이나 그를 신앙하는 머저르족 역시 야훼를 신앙하는 같은 민족이었다고 함으로써 니므롯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면서 한편으로 야훼의 아래에 두는 이중적 설정을 통해 니므롯을 배제하지 않고 인정하는 방식을 택한 셈이다. 히브리 전설에서 니므롯을 직접적인 징치의 대상으로 설정한 것과 달리 성서에서는 함축적인 방식으로 징치를 드러낸 것은 니므롯에 관한 전승력이 대단했음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성서에서는 니므롯이 야벳의 후손이 아니라 함(Kham)의 후손으로 되어 있다. 야벳의 후손은 브넥(Phenech), 셈의 후손은 욕단(Joktan)이다. 그런데 헝가리 신화에서 니므롯을 야벳의 후손으로 달리 설정한 것은 유럽 세계와의 관계 때문이다. 야벳의 맏이가 프랑스인의 선조라 설정하고 자신들은 야벳의 막내아들이라 설정해 프랑스와의 특별한 관계를 신화를 통해 드러냈다. 그런데 야벳은 그리스 신화의 거인족 야페토스(Iapetus)와 동일시되기도 하는데, 그에게서 프로메테우스가 나고 프로메테우스는 진흙으로 인간을 빚어 만들었다고 하는 내용이 전한다(그런 이유로 그리스인들은 야페토스를 인류의 조상으로 여기기도 한다).
한편 튀르크족의 기원을 성서적으로 해석한 이슬람의 구전(口傳)에 따르면, 이들 튀르크족은 자신들의 조상을 노아의 아들인 야벳과 연결시키고 있다. 이렇게 보면 니므롯은 머저르족의 조상인 동시에 튀르크인의 조상이면서 또한 프랑스인의 조상이기도 하고, 그리스인의 조상이기도 한 존재가 된다. 결국 현재 헝가리가 그리스, 프랑스, 튀르키예 등 주변 국가들과 하나의 조상에서 생겨난 같은 혈통의 후예가 되는 것이다.
니므롯 전승의 실체와 의미
구약성서 외에 역사적으로 니므롯이 확인되는 것은 신앗시리아 왕국의 앗수르-나시르-팔(Asshur-nasir-pal) 2세(B.C. 883~859) 시기다. 주변 민족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되면서 한편으로 성읍과 신전들을 건축하고 운하를 만들고 군대를 개편했는데, 특히 새로운 수도인 칼라흐-니므룻(Kalah-Nimrud)을 건설한 것을 보면, 이 시기에도 여전히 니므롯에 관한 신화가 대단한 전승력을 지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니므롯 전승의 실체는 고대 튀르키예 지역의 코마게네(Kommagene) 왕국의 안티오쿠스 1세(Antiochus Ⅰ theos)의 무덤과 신전 유적지에서도 확인된다. 이 왕국의 유적은 특이하게도 2천1 50m 높이의 네므룻산(Mt. Nemrud) 정상에 있는 안티오쿠스 1세의 무덤을 중심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네므룻 유적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다리우스 1세(Darius Ⅰ)의 피를 물려받은 안티오쿠스 1세는 네므룻산을 중심으로 자신이 만든 종교가 문명화된 세계 모든 곳에 퍼져나가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니므롯의 전승은 고대 근동아시아에 대단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어, 창세기 형성 이전에는 위대한 용사로, 고대 신앗시리아 왕국에서는 수도의 이름으로, 고대 코마게네 왕국에서는 신비로운 왕의 무덤과 판테온을 모신 성스러운 산의 이름으로 생명력을 갱신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민족기원을 니므롯에 두는 머저
르족의 신화적 설정은 결국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니므롯 전승과 연결되고 있는데, 이는 머저르족의 신앙과 문화적 기원을 신화적 설정을 통해 이어가려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신화를 통해 동방의 이민족이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중세 보편종교를 국교로 삼은 유럽의 다른 국가와 이질적이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 또한 헝가리 민족이 자신의 오랜 역사적 경험을 소중하게 여긴 결과 야벳과 니므롯의 혈통과 성격을 전략적으로 변화시켜 개별성을 드러내는 방식을 구체화한 특별한 신화의 여정도 확인하게 된다.
10회까지 연재 차례
① 설문대할망, 여신의 뚜렷한 자취
② 헝가리 민족기원신화의 훈족과 니므롯(Nimrod)
③ 건축의 축조와 인신공희의 눈물
④ 남매혼 전승의 프리즘 1
⑤ 남매혼 전승의 프리즘 2
⑥ 아프리카의 음윈도, 부친을 넘어서 영웅으로
⑦ 몽골의 장가르, 초원의 위대한 영웅서사시
⑧ 운남 이족의 긴 노래
⑨ 서로 닮은 신들의 인세차지경쟁 1
⑩ 자청비, 알탕 고르갈다이, 제우스가 마련한 신의 노정






